군사력·경제력등 하드파워 지양하고, 문화·이념등 소프트파워로 설득해야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2002년 4월초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조셉 나이(Joseph Nye) 교수를 방문하러 보스턴을 다녀온적이 있다. 그때 그는 로마 제국이 망한 이유로 ① 외부(야만족)의 공격과 ② 내부의 부패등 두 가지를 들었다. 미국은 9·11 테러를 겪었고, 에너지 그룹 엔론을 비롯, 연이은 회계부정사건이 터졌으니, 나이 교수의 정의에 따라 미국은 쇠퇴기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나이 교수는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하드 파워(hard power)’의 사용을 지양하고, 문화와 이념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많은 나라를 설득함으로써 세계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지만,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패러독스를 설명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 지식인들 사이에 제기된 논쟁은 아무도 대적할수 없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그 대표적인 논쟁이 미국이 절대우위의 힘을 일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일방주의(Unilateralism)’와 우방의 협조를 얻어 세계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대결이다.

이 논란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한반도와 중동문제등 세계 문제를 중요한 변수로 되었다. 나홀로 주의와 다자주의의 논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 제기됐으나,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국정연설에서 이라크ㆍ이란ㆍ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후 본격화되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 안보담당보좌관등 강경 보수파들이 일방주의를 고집하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다자주의를 주창했다.

미국에서 일방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차있고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증오심이 높은데다 ▲전쟁 수행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온적으로 협조한 것등을 꼽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지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월스트리트 저널의 로버트 폴락 등 컬럼니스트들은 일제히 ‘악의 축’에 대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방주의자들은 반미 국가에 대한 방임적 태도가 테러를 초래했으며, 유럽등 우방국가의 협조가 미온적이기 때문에 테러 온상지가 되고 있는 지역에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 개입을 역설했다.

이에 비해 다자주의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 민주당과 공화당 온건파에서 제기됐다.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경쟁자로 지목된 고어 전 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한 부시 대통령을 전폭 지지하지만, 우방국가와의 협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나홀로주의를 경계했다.

하버드대의 나이 교수는 저서 「제국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American Power)에서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 우위를 차지했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모든 국제문제를 해결할수 없기 때문에 각국과 협력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독자주의는 유럽과 우방국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독일 외무장관은 “우리는 미국의 위성국가가 아니다”며 비난했고, 유럽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전쟁 악화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수상도 미국 우월주의에 견제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부시 정부는 전임이었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보다 미국의 힘을 강조했다. 공화당 보수파들이 대거 행정부에 진출한 탓도 있지만, 테러 이후 공화당 정부는 미국만의 힘으로라도 테러리스트의 온상을 제거하고, 악의 국가를 처벌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처음에는 완강한 일방주의에서 출발했다가 나중에 다자주의로 돌아서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부시 행정부도 미국의 대외정책이 우방국의 협조를 얻어낼 때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① 2002년초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이 이스라엘 시민 주거지역과 상가에 들어가 자살 폭탄 공격을 하고, 이스라엘이 무차별 보복 공격을 단행할 때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미국의 태도에 대한 국제 여론이 나빠질 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군 철수를 요구했고, 부시 행정부는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했다.

② 2002년 1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미국을 방문, 체니 부통령을 비롯, 보수파 지도부의 환영을 받았다. 그후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볓정책이 구름에 가려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2002년 2월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에 많은 것을 양보, 햇볕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③ 이라크 침공 여부를 놓고 미국 국방부 강경파들은 우방국의 지원이 없더라도 미국만의 공격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다자기구인 유엔을 통해 해결할 것을 주장했고, 부시 대통령은 결국 유엔 안보리의 만장일치를 얻어 이라크 무기사찰단을 파견했다.

④ 9·11 직후에 미국 보수세력들은 당장에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자고 했지만, 다자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과거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파키스탄을 끌어들임으로써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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