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여야합의로 총리추천하면 임명"…김병준 사실상 철회

[공감신문 박진종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정국 수습 방안으로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달라고 밝혔다. 따라서 차기 총리 인선은 국회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세균 의장에게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 분을 총리로 임명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를 전격 방문, 정 의장을 만나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해달라는 야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김병준 국민대교수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조치를 6일 만에 철회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정 의장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저의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의장님을 만나 뵈러 왔다"며 "고견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여전히 어렵다. 수출 부진이 계속되고 있고 또 내부적으로는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해서 경제를 살리고 또 서민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여여가 힘을 모으고 국회가 적극 나서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정세균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회가 적임자 추천을 하면 임명을 하고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차후 권한부여에 대한 논란이 없도록 깔끔히 정리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국회의 제 정당이 지혜를 모아 거국내각을 통한 위기극복을 해야 하며, 정치문제는 의장단 보다는 정당이 중심"이라며 "하지만 국가의 위기인 만큼 정당의 책임 있는 분들과 대화해서 지혜를 모으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김영수 국회대변인이 전했다.

또한 "지금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대통령도 안심하실 수 있으나 이런 인물을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당리당략을 벗어나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비우고 국민과 국가만을 생각한다면 해법이 나올 것이다. 사심 없이 잘 협의하겠다"고 밝혔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를 방문, 정세균 국회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추천 새 총리 후보군은…여야, 신경전

문제는 누구를 차기 국무총리로 지명하는지 여부다.

현재 여야와 청와대가 구상하는 총리의 공통분모는 '책임총리'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위원 제청권을 포함한 내치의 전권을 넘겨받아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총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새로운 총리의 최고 덕목은 안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이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가정해야 하는 만큼 박 대통령의 무너진 리더십을 메우고 국정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이 있으면서 정치적 색채가 옅은 원로급 인사가 추천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추천할 것이냐를 놓고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여야 간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최우선 순위가 보수적 가치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수용할 만한 인사다. 이 때문에 야당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도 후보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이면서도, 이들 가운데서도 진보 노선으로 한쪽에 치우친 인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기류다. 여당이 '김병준 카드'를 꺼내기 전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군으로 입에 올린 것도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여권에 몸담은 전력이 있어 보수적 색채도 가진 데다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내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을 지녔다.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출신으로 여권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데다 중도적 이미지도 강하고, 경기도지사를 지내 행정 경험도 가졌다.

야당 내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후보군을 놓고 조금씩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온 국민의당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친노·친문이 주류인 민주당 쪽에서는 정체성 등을 이유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김종인 전 대표와 손 전 대표는 개헌에 적극적인 만큼 친문 진영에선 껄끄러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미 차기 총리 후보를 놓고 여야 간 신경전도 시작됐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동교동계 인사를 총리 후보로 접촉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야당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비선실세 국정 개입 파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논의를 하기 위해 국회를 전격 방문하고 있다. 앞에 정의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총리' 국회 추천 절차와 방식은?

그러면 앞으로 어떤 절차와 형식을 거쳐 총리 인선이 이뤄질 것인가.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실질적으로' 총리를 뽑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다.

국회가 여야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새로운 총리를 추천하더라도 헌법적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처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대통령에 추천하는 방식으로 총리 후보를 실질적으로 지명하고 대통령은 형식적인 지명권을 행사하는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 경우 결국 국무총리 지명절차의 완성은 국회에서 이뤄지는 만큼 '여야 동의'가 후보자 추천의 제1기준이 된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 국무총리 후보자를 추천하기 전에 아예 국회 본회의 표결 절차를 거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의 헌법 권한을 훼손해 불가하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몇 명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추천하느냐는 것.

가령 단수후보를 추천할 경우 국회에 추천을 요구한 대통령으로서는 거부할 명분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지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의회 권력 지형상 야당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고, 새누리당은 추천 인물이 지나치게 당파성을 띄지 않도록 견제하는 소극적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야당으로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약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심각한 흠결이 발견될 경우 추천한 야당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3명 정도의 복수후보를 추천하려 할 경우에도 어려움이 있다. 후보자들은 대통령 지명에 앞서 언론과 여론의 사전 검증에 그대로 노출되고 지명도 받지 못하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후보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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