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여수의 섬들 ③...섬의 하루는 포구에서 문을 연다

詩詩한 여수의 섬들 ③

 

'팽나무 큰 어른'  우동식 시인

여수 물꽃시낭송회

회장 우동식 시인

 

 

 

 

 

 

 

 

섬의 하루는 포구에서 문을 연다

문의 열쇠를 갖고 있는 팽나무는

깊숙이 뿌리 내린 실핏줄로

바다의 움직임을 깐깐하게 예보 한다

실눈을 틔워 보이기도 하고

작은 이파리들을 살랑거리기도 하고

햇살에 고슬고슬 말려 놓기도 하면서

어떤 날은 몸을 마구 흔들다가

고집불통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제 몸을 뒤틀어 가지를 쭉 찢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파도가 섬을 꿀꺽꿀꺽 삼키었다

갓 잡아 올린 멍게 빛 아이들도

갯벌 닮은 할머니도

헐거워진 그물망을 깁는 노부부도

모두 팽나무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데

팽나무는 넉넉히 품을 내어주곤 했다

풍어제를 올리고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도

그 어른의 그늘 아래 서였다

시장바구니에 담긴 수다가 왁자지껄할 오후에야

뭍을 향해 풀어 두었던 밧줄을

팽팽하게 당겨 묶는다

여자도에는 여자도선船을 운항하는

선장어른 한 분 포구에 서 있다.

 

* 여수시 소라면 서쪽 6.4km 지점 여자만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섬.

 

詩詩한 여수의 섬 이야기③

 

우동식시인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의 바다를 여자만(汝自灣)이라 한다. 여자만 중앙에 여자도(汝自島)가 위치하고 있다. 얼핏 듣기에 여자도에는 여자들만 사는 섬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여자도의 어원은 넘자도에서 왔다. ‘넘’은 넘는다는 뜻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고어이다. 즉 섬의 높이가 낮아 파도가 산을 넘는다는 말로 풀이 할 수 있는데, 바다가운데 있는 표고가 낮은 섬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먼데서 보면 파도가 섬을 넘는 것처럼 보였다한다. 여수시 소라면 섬달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면 여자도 선착장에 이르고 포구 마을 귀퉁이에 팽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지난주 오동도 등대에 이어 이번 주에는 팽나무에 주목 하고자 한다. 제목부터 ‘팽나무 큰 어른’이다. 여기서 팽나무는 마을의 지주(支柱)요. 선장(船長)이다. 하루의 문을 여는 포구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섬사람들은 바다의 기상을 깐깐하게 예보하는 팽나무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했다. “실눈을 틔워 보이기도 하고 작은 이파리들을 살랑거리기도 하고 햇살에 고슬고슬 말려 놓기도 하면서 어떤 날은 몸을 마구 흔들다가 고집불통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제 몸을 뒤틀어 가지를 쭉 찢기도 했다” 그럼으로 갓 잡아 올린 멍게 빛 아이들도 섬에서 태어나 평생 갯것을 하면서 섬에서 늙어가는 갯벌 닮은 할머니도 헐거워진 그물망을 깁는 노부부도 모두 팽나무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데 팽나무는 넉넉히 품을 내어주곤 했다. 풍어제를 올리고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도 그 어른의 그늘 아래 서였다. 마을 사람들은 들어 갈 때도 나올 때도 팽나무에게 인사를 하며 근황을 물었다. 팽나무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

여자만에 노을이 물들고 하루가 잠길 때면 풀어 놓았던 밧줄을 팽팽히 담기고 하루의 문을 닿는다. 여자도는 파도에 잠길 듯 잠길 듯 위태위태한 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항해를 하는 것은 자기 몸을 찢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 길을 안내 했던 큰 어른 팽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더욱 큰 어른이 그리워지고 똑바로 서 있는 팽나무의 존재가 존엄해 보인다. 이 시에서 강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어디서나 어떤 상황이나 사람이다.

제 위치에서 제 격에 맞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는 팽나무 큰 어른들이 방방곡곡 처처에 서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자도에는 여자도船을 운항하는 선장이 깊게 뿌리 내리며 포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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