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나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의 표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신성대 동문선 대표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아기가 태어나 눈을 뜨면 엄마와 눈맞춤 하려고 본능적으로 애를 쓴다. 상대가 자신과 소통 가능한지를 눈맞춤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입과 귀로, 언어로 소통하는 건 나중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차츰 자라면서 어른의 눈길을 피하게 된다. 눈 깔어! 봉건적 관습으로 강요된 때문으로 인간 존엄성 면에서 보자면 이는 분명 잘못된 매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말이 있다. 그러려면 반드시 눈이 성해야 한다. 헌데 어린이를 제외하곤 한국 성인들 중 성한 눈을 가진 사람 백에 한 명 찾아보기 힘들다. 눈치로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인에게 무슨 황당한 말씀?

한국의 전철을 타면 가장 불편한 게 바로 앞자리에 마주 앉은 사람과 눈 마주칠 때의 어색함이다. 해서 대부분 눈을 감고 조는 척하거나 딴전을 피워야 한다. 다행이 요즘은 모두들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바람에 앞 사람과 눈길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람들 눈이 너무 무섭다고 한다. 다들 화가 잔뜩 나있고 적개심으로 가득해서 쳐다보기 겁난다고 한다. 또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획하고 눈길을 돌려버리는 바람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단다. 혹여 영어로 길이라도 물어보면 어쩌나 싶어 피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불친절을 넘어 무례함으로 오해받기 딱 알맞다.

물론 한국인들끼리도 낯선 사람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랬다간 상대를 불쾌하게 하거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눈길을 피한다? 오랜 봉건시대, 피식민지배, 독재정권, 권위주의에 의한 피해의식 내지는 자격지심 때문에 생긴 자기방어적 인상쓰기라 하겠다.

 

외국인이 너무 무서운 한국인, 모두 자폐아?

얼마 전 유럽에서 MBA과정을 공부하는 유학생에게서 메일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현지인과 눈을 바로 보고 대화하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어쩌면 유학 마칠 때까지 지도교수와 식사하면서 편하게 대화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오는 친구들도 허다할 것이다. 한국의 대학에 와 있는 외국인 교수들도 하나같이 낯설고 힘들어 하는 게 바로 학생들의 눈인사 기피라고 한다.

유럽 OECD 등 국제기구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이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 당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습관 때문이다. 특히 엘리베이터 탈 때 한국인은 도무지 인사를 안 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실은 못하는 것이다. 배운 적도 없다. 한국에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먼저 탄 사람에게 반드시 인사를 하는데, 그것도 일일이 눈맞춤을 하면서 해야 한다. “봉쥬르, 마담(복수의 경우, 메담) 에 무슈(메시유)!” 몇 명이든 그 짧은 인사말 하는 시간에 스치듯 빠짐없이 눈맞춤을 해줘야 한다. 이것 안하면 바로 야만인 취급당해 그는 그곳에서 할 일이 없게 된다. 외국어를 배울 때 이왕이면 원어민 강사에게서 배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겠다.

백악관 공식 사진사의 외교 도우미 활동 모델 폼. 네덜란드 방문 일정 중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림 앞에 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소통의 의미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그림, 그리고 사진. /백악관
문은 사회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계

서양 남성들의 경우 건물 현관이나 사무실 문을 열 때는 자동적으로 뒤를 돌본다. 혹시 누가 뒤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때 만약 누군가 뒤 따라오면 반드시 문을 열어 그 사람부터 먼저 나가게 한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열 사람, 스무 사람이라 해도 똑같이 그렇게 양보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오히려 더 배려심이 많다.

그럴 때 손은 문고리를 잡고 눈은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이게 습관이 되면 사무실에서 상대에게 자리를 권할 때나 어디로 안내할 때, 손으로는 의자나 방향을 가리키면서 눈은 상대를 바라보는 정품격 매너가 절로 가능해진다.

물론 이때에도 허리 곧추 세운 바른 자세로 모든 사람과 일일이 눈맞춤-방긋 또는 “애프터 유!” “먼저 들어가시죠!”하며 인사를 건넨다. 호텔 도어맨처럼 굽신거리지 말고 당당한 포스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때 배려를 받은 사람 역시 눈맞춤-방긋 또는 “익스큐즈미!”라고 인사를 한다. “댕큐!”라고 하면 큰 실례다. “댕큐!”는 호텔직원으로서 당연히 그 일로 먹고사는 호텔 도어맨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일본인은 “도오죠!”하면 “스미마셍!”이 되겠다.

문은 사회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계 즉, social interface다. 따라서 문고리 즉, 사회적 공간으로 들어가는 매개체 social media를 잡는 순간 사적 공간에서 사회적 공간으로 위상이 바뀐다는 인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누가 오거나 말거나 자기만 휙 열고 나가버려 으레 문을 열고 양보해줄 줄 알고 뒤따라오던 사람이 “쿵!”했다가는 그걸로 완전 아웃이다.

 

상대와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해야

한국인들은 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하거나, 건배를 할 때 자동으로 머리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힌다. 이는 어쩌면 누천년 동안 몸에 밴 사대주의에서 나온 근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한국인의 혈관 속엔 사대의 피가 흐르고 있음이다. 하여 속으론 자존심 상해하지만 몸은 절로 구부려진다. 특히 갑(甲)이나 큰 나라 사람을 대할 땐 더욱 그러하다. 하여 저도 모르게 눈길은 손이나 잔에 가 있어 상대의 시선을 놓치고 만다. 악수하다가 혹여 상대방의 손을 놓쳐 더듬거리지나 않을까, 건배잔을 제대로 못 부딪치거나 샴페인을 쏟지나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명사회에서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거나 기피 혹은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의례적 인사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대화는 입으로 하기 때문에 귀만 열어두면 된다고 여긴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건 감히 맞먹으려 드는 걸로 여겨 불경하게 생각한다. 여기서 서로 치명적인 오해가 생긴다. 기실 말로만 소통할 거면 굳이 만날 필요가 없겠다. 편지나 이메일, 문자 메시지, 전화로 얘기하면 그만이겠다. 대면(對面)이란 눈맞춤이다.

하여 서양인들은 눈에 무게 중심을 두고 소통한다. 말은 입으로 하지만 소통은 눈으로 한다는 말이다. 눈길을 통해 상대의 본심과 그 강도를 짐작하기 때문에 서로가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말을 하는 도중에 상대가 딴 데 시선을 두는 것을 모욕으로 여긴다. 음식은 물론 커피, 차, 술, 물을 마시는 그 짧은 순간조차 상대와의 교감을 위해 시선을 상대에 두고 바른 자세로 집중하는 것이다. 소통에 장애가 될 뿐인 구시대의 의례는 내다 버린 지 오래다.

회의나 상담을 할 때 상대방의 표정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해야 상대방에게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출근길 지하철 입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의 필살기 역시 상대와의 눈맞춤이라 한다. 눈맞춤이 되면 절반 이상 전단지를 받아든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상대와 눈맞춤을 못하는 건 현실(사건, 진실)을 직시할 자신감이 없음을 뜻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선 자폐증 환자로 인식될 수 있다.

화자(話者)를 주목하는 것이 글로벌 정격 소통매너!
우리 안에서 불통! 아무도 화자(話者)와 눈맞춤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 소통의 의미, 소통 매너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이처럼 광고(홍보)의 기본도 모르니 글로벌 광고시장이 한국기업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서울지하철 광고판

 

상관을 쳐다보면 불경죄?

“눈 깔어!”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건달들이 상대를 협박 굴복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다. 그저 권투선수들이 시합 직전 링 위에서 서로 기(氣)싸움할 때나 눈을 똑바로 째려봐야 하는 줄 안다.

대화를 할 적에도 여간해서 상대를 주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회의를 할 때도 상대, 즉 화자(話者)를 쳐다보지 않는다. 청와대에서의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는 말 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기관의 회의 모습이 동일하다. 높은 사람이 입을 열면 나머지는 일제히 고개 숙이고 받아쓰기 한다. 감히 왕이나 주인님 앞에 고개 못 들고 허리까지 굽혀 고하거나 하명 받던 봉건적 하인근성에서 생긴 버릇이겠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선진 문명사회에선 토픽감이다. 경청(敬聽)! 눈으로 귀담아 듣는 것이다.

기실 메모하는 것도 그렇게 머리박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자세로 고개를 바로 세우고 상대(話者)에게로 상체를 틀어 상대의 눈을 주시하면서 종이를 보지 않고 한 손으로 요점을 메모하는 것이 정격이다. 두어 번만 연습하면 메모지를 안 보고도 얼마든지 받아쓸 수 있다. 아무튼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기본 매너. 그걸 ‘주목(注目)’이라 한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 최악의 매너는 곁눈질이다.

테이블에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한국인들은 곁눈질 하거나 고개만 돌려 상대를 바라보는데 이 역시 무매너다. 그런가 하면 국제 회의나 세미나에서 연단의 외국인 강연자들은 다른 강연자들이 발언할 때 모두 그를 주목하지만, 한국인 강연자들은 예외없이 앞만 보거나 고개 숙여 제 원고를 들여다본다. 대개들 그게 바른 자세인 줄 알고 있다. 이는 고의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위로 선진국에선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반드시 상체를 틀어서 연사를 바라 봐야 한다. 서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처럼 걸으면서 이야기할 때에도 상대방과의 눈맞춤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또 대화 중 상대방의 긴요한 말을 듣는다고 귀를 갖다 대기 위해 몸을 옆으로 기울이는 것도 나쁜 버릇 중의 하나이다. 반드시 상대방 쪽으로 몸을 돌려 정면으로 다가가 먼저 눈으로 소통해야 한다. 귓속말조차도 바른 자세로 이마를 맞댈 만큼 눈을 가까이 가져가 듣는 자세여야 한다. 귀로만 담지 말고 눈으로 담아야 한다. 글로벌 선진문명사회에선 상대를 놓치지 않고 바로 주목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인식한다.

한국인들의 이런 무매너 버릇은 작품이나 광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많은 광고에서 고객과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모델끼리의 눈맞춤 사진조차 극히 드물다. 광고주는 물론 광고전문가들조차 소통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이다. 하여 외국에서라면 제작비 다 변상하고 쫓겨났어야 할 엉터리 광고가 연일 방송과 신문, 잡지를 도배하고 있다. 글로벌 광고시장이 한국 기업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그같이 글로벌 매너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터진다. 선진국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후진국 신흥시장으로만 나가지만 그도 결국 오래 못 간다. 한류가 아래로만 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받침 접시를 들고 바른 자세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정격 모델폼.
잔만 든 무매너에 시선은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어 소비자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제멋에 겨운 일방적인 광고. 어차피 모르기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여서 우물 안에선 그럭저럭 통한다. /인터넷 판에 떠 있는 어느 패션회사의 광고 이미지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배워야 할 개미귀신 화장법

글로벌 무대에서 뛰어 본 사람이라면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는 물론, 정치, 교육, 연예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대개 눈빛이 강하다.

눈맞춤을 기피하는 한국인들의 무매너 습관은 여성들의 화장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상대의 시선이 자기 눈에 집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요란한 화장을 하게 된다. 하여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급 여성들 중에는 화장을 연예인 흉내 내는 경우가 많은데, 비즈니스 매너 측면에서 보면 문제점이 많다.

스튜어디스, 백화점 점원 등 사회구조에서 하부층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화장법, 예쁜 유니폼에 예쁘게 보이려는 하층민 세계관 스타일 고유의 화장법은 주인마님, 주인아씨 그릇 만드는 여성 리더십 교육 때는 절대 원용하면 안 된다. 주인마님은 입이 아니라 눈으로 사람을 다룬다. 진정한 리더십 내공은 눈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사막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움푹 들어가게 만든 다음 지나가는 개미나 작은 벌레가 미끄러져 들어오길 기다리는 거미를 개미귀신이라 부른다.

비즈니스 무대에서는 복장보다는 얼굴, 그 중에서도 자신의 눈에 상대의 시선이 집중 되도록 끝까지 붙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상대의 시선은 자신의 다른 부분을 훑으며 약점을 찾기 시작한다. 따라서 연예인처럼 복장이 화려해서도 안 되며, 귀걸이 목걸이 등 액세서리가 너무 튀어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입술색이다. 강한 색은 상대의 시선이 눈길을 아니라 입술로 끌어가기 때문이다. 해서 진한 색은 피해야 한다. 옷 역시 지극히 평범한 정장이어야 한다. 대신 눈과 눈썹 화장은 진하게 하여 상대의 시선이 절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대화에 집중하여 소통이 잘 이뤄진다.

다시 말하자면 클레오파트라는 지도자다. 지도자는 굳이 예쁠 필요가 없다. 예쁘다고 권위가 더 올라가는 것 아니다. 눈언저리를 검게 화장해서 상대의 시선을 빨아들여 눈만 기억되게 한다. 마치 개미지옥처럼. 그래야 눈썹만 까딱이는 걸로도 의사소통을 해내고 상대를 하인처럼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처럼 레이저 눈빛으로 상대가 감히 쳐다보지 못하게 하거나 요란하게 튀는 옷으로 상대의 눈빛을 흩트리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도 매너도 아니다.

정장을 강조하는 이유가 반드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예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의 시선을 눈으로 끌어당겨 보다 효과적으로 소통 교감에 집중하여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다. 리더라면 평소 평범한 정장에서 글로벌 매너 내공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나 머리가 검은 동양계에게 강한 유색옷은 대략 난감이다. 여간해서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상대의 시선집중을 방해한다. 진정한 프로는 원포인트(눈)만 유광(有光)으로 두고 나머지는 철저히 무광(無光) 처리해서 품격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다.

클레오파트라의 개미귀신 눈 화장법. /인터넷 캡처
눈맞춤 기피는 주인의식 부재

아래로 처진 안경 역시 상대방을 갑갑하게 하여 소통을 방해한다. 안경점에 들러 느슨해진 안경테나 코걸이를 원상으로 다잡는 수리를 받아 밥맛없는 ‘쨉(일본놈)’ 꼰대 이미지를 제거해야 한다.

다음, 자신의 얼굴에 상대방 시선이 모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깻잎머리는 과감히 자르거나 벗겨 올려야 한다. 유럽 점잖은 중상류층 사람들이 가장 재수 없어 하는 게 삐딱이 깻잎머리다. 요괴머리다. 상대는 자신을 잘 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신은 은폐물 뒤에 숨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요괴와의 눈맞춤에 기분 좋을 사람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선 바로 아웃이다.

전체적으로 얼굴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채식을 많이 해 턱과 입술에 힘을 주는 버릇이 있다. 하여 입장이 난처하거나 결심을 할 때에는 일본 하급 사무라이처럼 입에다 잔뜩 힘을 주는 데 그런다고 상대가 사정을 봐주거나 겁먹는 일 없다. 오히려 속내가 들여다보여 더 느긋하고 잔인하게 나온다. 한국인들은 평소 무심히 있어도 자칫 몽니부리는 모습으로 비친다. 한국의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글로벌 광고모델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게다가 고개를 끄덕여 의사 표시를 하면 주인마님 말씀(명령)에 동의하는, 즉 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평생 하인 취급당한다. 해서 협상에선 상대가 제 밥으로 본다. 모나리자처럼 눈과 입은 항상 스위트스마일, 눈썹 빼놓고 아무 것도 움직이면 안 된다. 눈이 곧 마음이다. 주인장으로서의 리더는 눈으로 소통한다. 얼굴에 긴장 풀고 먼저 눈썹으로 긍정 부정의 의사를 표시한 다음 입(말)이 나가야 한다. 물론 그것도 최대한 느리게!

아무렴 한국인들의 눈맞춤 기피는 글로벌 비즈니스 소통매너 학습에 최대의 장애 요소다. 이것 고치지 못하고서 우물 밖에 나가면 모조리 아웃이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이것 하나만 고쳐도 “한국인이 달라졌어요!”란 소리 듣는다. 주인의식 회복의 지름길이다.

스위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습관적으로 상대와의 눈맞춤을 피하고 엉뚱한 곳을 보며 이야기 한다. /연합뉴스
백악관 국빈환영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옳지 못한 굴욕적 건배 자세. 고개를 똑바로 들고 상대와 눈맞춤 상태에서 건배해야 정격.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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