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신 칼럼니스트

[공감신문=피터 신(Peter Shin) 칼럼니스트] 지구상의 빵공장 이라 일컬어지는 북미 대륙의 대평원(The Prairie) 곡창지대에 살고 있는 나지만, 전후 좌우 지평선만 보이는 거대한 대지의 어느 곳에서도 발목 정도 깊이의 논물이 살랑대며 익어가는 벼가 넘실대던 한국에서의 정겨운 농촌 풍경은 찾아 볼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고 비옥한 이 들판엔 수억이 넘는 몬스터 트랙터와 컴바인들만이 간혹 눈이 보일  뿐이고, 농부라 해봐야 그 비현실적 모양새의 기계들을 다루는 미케닉들에 다름 아니다. 이곳의 쌀은 주로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된 것이라 한국의 쌀처럼 쫀득하지 않다. 이젠 입맛도 바뀌어 그런데로 먹을만 하지만, 가끔 아내가 좋아하는 한국 쌀로 밥을 해 먹을때는 아.. 우리의 밥이 이렇게 다르고 맛있구나.. 하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벌써 나이가 50 중반을 넘고 있는 우리 세대에서 김이 무럭 무럭나는 정성스런 밥에 대한 추억은  참 많을 것이다. 어렸을적 나라 전체에 쌀이 궁해 원조 받은 옥수수 가루와 밀가루로 대신했고, 그 수제비 시대를 지나, 보리와 콩등을 섞어 잡곡의 시대도 거쳤는데, 건강상, 입맛상의 이유가 아닌 단지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러한 대용 곡식을 이용하던 시절.. 그럴수록 그 하얀 쌀밥은 귀함과 탐스러움의 이미지가 가득했었다. 아마 그래서 흰 쌀밥을 짓는데 더욱 정성을 쏟았을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흰 쌀밥이 예전과 같지 대접을 받지 못하고 다양한 모양과 색의 잡곡밥과 현미나 흑미등이 밥상에 오르겠지만 빵과 고기가 주식을 이루는 이곳에서 살다보면 가끔 해먹는 그 흰쌀밥의 맛은 거의 환상적인 것이다. 
 
 
진부의 어느 이름 모를 밥집. 한국 방문 중 동생네 가족과 함께 한 강원도 여행 중에 들렀었다. 아마도 한국에 있을 적에 진부의 용평 스키장을 오가며 몇차례 들렀던 곳임이 분명한데.. 한두가지가 빠져도 그만이겠건만 스물가지가 넘는 저 정성스런 반찬을 준비했을 쥔장 내외를 떠올리니 왠지 짠한 마음이다. 어여쁘게 쌓아올린 한상 한상의 반찬들은 어느 레고 블럭 작품보다 더 예술적이다.
 
 
그 밥집 방 아랫목의 따끈함, 정겨운 밥 짓는 냄새, 깨끗한 두부.. 그리고 날듯 말듯한 건강하고도 소박한 향기의 산나물들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 왔었다. 한입 한입 밥과 찬을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는 것 자체는 하나의 의식 이었다. 
 
동양에서의 두부의 창조는 인류의 음식생활사의 한 획을 긋었던 것일게다. 아직도 서양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콩의 변신을 전혀 알지 못한채 살아갈 것이고, 이러한 특별한 맛과 식감을 알지 못한채 살아감은 인생의 크고 작은 행복을 매개시켜주는 맛 문화의 풍성함을 더욱 즐기며 살수 있는 기회가 줄어듦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치즈가 빠진 서양 음식 문화를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 처럼, 두부가 없는 우리의 음식 문화도 생각하기 힘들다. 
 
밥을 짓는 일. 커다란 장작들로 불을 지펴가며 우직한 가마솥에 한가득 쌀을 넣고 물을 부어 밥을 지어 내는 일.. 불을 조절해 가며 뜸을 들이고, 오랜 동안의 숙달된 경험이 쌓여가며 제대로 완성해 내는 밥, 그 위에 정성이 더해져 밥은 소위 steamed rice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고생스러움과 정성스러움의 오랜 반복을 통한 숙달된 의식의 산물인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밥 한 그릇을 먹는 행위 역시, 고마움과 경건함의 의식일 수 밖에 없다.
 
이제 내 호텔의 주방장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음식들을 준비하고 정갈하게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자신의 음식을 남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하물며 그 음식들에 가격표를 붙여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건강함을 제공해야 하는 음식점의 입장에서는 자부심을 넘어선 어떠한 소명 의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오랜세월 이러한 멋진 밥상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피터 신(Peter Shin)>
 
- 현재 캐나다에서 호텔 운영. 요리사이자 목수.
 
- 전 휴렛팩커드 아태지역 관리자
 
- 전 한국 휴렛팩커드 컨설턴트
 
- 전 카이스트 시스템공학 연구소 연구원
 
- 서강대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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