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지해수 칼럼니스트] 그런 상황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더욱 어려워지는 거겠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불편한 식사 자리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것. 사실 어릴 때는 언니 오빠들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졸래졸래 따라가서 먹곤 했는데 이제는 정말 편하거나 친한 사람들이 아니면 싫다. 심지어 난 가끔 뮤직비디오나 광고에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면 촬영 후 밥 먹자는 자리에도 빠질 때가 많다. 진짜 칼럼 마감 코앞이라 그럴 때도 있지만, 같이 밥 먹기가 불편해서일 때도 있다. 물론 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끼리 수고했다고 모이는 자리인거 나도 안다. 그런데 그런 거 있잖아, 저기서 밥 먹으면 소화 안 될 것 같은 거! 그래, 내가 그 일에 대해 절실하지 않아 그런 거지 뭐.

‘음, 난 차라리 집에 가서 책 볼래.’

사실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나의 소중한 한 끼! 내 위장에 음식물을 넣어서 필요한 에너지원을 만든다, 단순히 이런 개념이 아니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요, 그 시간 자체가 굉장히 쾌락적이며 보람되지 않나! 체중 조절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하루 2-3회의 쾌락적이고 보람찬 행위를 잃어버리니 당연히 예민하거나 우울해질 수밖에. 그렇다. 식사는 쾌락이자 유희적 행위다.

흔히들 ‘섹스하다’를 ‘먹는다’에 비유할 때가 있다. 그 두 가지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당연한 욕구인지 말해 뭐하겠나. 사실 ‘섹스하다’나 ‘먹는다’ 모두 생존, 더 나아가 자손 번식을 위한 행위다. 하지만 이젠 섹스는 단순히 자손 번식이 아닌 쾌락의 행위로도 받아들여진다. 그러하기에 인류는 피임의 기술을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임신과 아예 상관없는 성적인 유희들을 발전시켜왔다. 덕분에 다양한 취향들이 존재한다. SM(Sadism/Masochism)이나 역할놀이 같은 것에서부터 수간, 격하게는 시체 성애까지! 하지만 취향-즉 어떻게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섹스하다’와 ‘먹는다’를 비유하려한다. 과거 인류는 먹을 것이 부족했기에, 먹을 기회가 생기면 많이 먹어서 체내에 저장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대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병에 걸린다. 현대의 우리는 덜 먹어야 되지만 몸은 옛 사바나 습성대로라 자꾸 입맛이 당긴다. 그러나 단순히 영양분 저장 때문일까? 아니다, 쾌락을 느껴서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바로 매운 맛! 사실 아시다시피 우리가 느끼는 매운 맛은 맛이 아니요, 통증이다. 우리 인간은 이 통증을 통하여 쾌락을 느낀다.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우린 변태들이다. 최진기 강사님의 인문학 강의를 보다보니 이런 말이 나오더라. 인간이 매운맛을 원하는 건, 안전한 불안을 원해서라고.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는 거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다른 동물들은 항상 사냥 당할 것에 노출되어있기에 굳이 그런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심심해서, 이런 안전한 불안을 추구한다는 거다. 안전한 스트레스! 오, 정말 쾌락적인 맛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식사도 생존을 넘어 유희의 개념에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섹스의 취향처럼 누구나 입맛이 다르다. 누군가는 육고기보다 물고기,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빵보다 밥! 아, 그런데 메뉴만큼 중요한 건? 그렇다, ‘누구와 하느냐’는 것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 중에서)

그래서 난 아무나랑 식사하기 싫다는 거다. 식사와 섹스를 이런 식으로 비유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음, 예를 들어 스와핑을 즐기는 사람이 인터넷에서 (급)취향만 대충 맞는 사람을 찾아서 하는 것과, 내가 굳이 오늘은 스시 오마카세를 먹을 건데 2시간을 도저히 혼자 먹질 못하겠으니 친하지 않은 누군가라도 함께 하겠어? 이 둘이 난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물론 섹스와 식사 상대의 문턱의 높이는 완전히 다를 테지만, 최소한 불편한 사람과는 식사도 싫다는 거다.

우리 일상에서 먹는 행위가 ‘음식 섭취’인지, ‘식사’인지가 굉장한 삶의 질을 결정한다. 당신은 오늘 쾌락적으로 식사했는가? 아니면 그냥 진부하게 음식 섭취했나?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매 끼니마다 쾌락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선택지가 주어질 때가 있다. 굳이 불편한 누군가와 괜찮은 식당을 갈 것인가, 아니면 단출하게 먹더라도 혼자 편안히 먹을 것인가. 나라면 당연히 후자다. 요즘 ‘혼밥 레벨’이 유행이던데 나는 이미 ‘혼밥’ ‘혼술’이란 말이 유행하기 몇 년 전에 레벨9까지 다 찍었다. 혼자 회전초밥집에 자주 갔고, 음악 좋은 바에서 술 한두 잔씩 마시는 건 나에겐 엄청 즐거운 일이다! 오히려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그 시간이 전혀 외롭거나 처량하지 않다. 혼밥 메뉴를 고를 때처럼 내가 뭘 먹고 싶은지 정말 진지하게,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 적이 또 있나 싶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자 마음먹게 된 건,

‘왜 나는 식사 약속을 자꾸 피하지? 왜 어느 순간 친한 사람들하고만 밥을 먹게 됐지? 같이 밥 먹는 게 뭐 대수야? 난 왜 이러지?’ 에서 시작됐다. 근데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다들 자존감이 너무 낮아졌다. 왜들 그렇게 남들을 못 까서 안달이 났을까? 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같이 밥 먹기 싫다.
누군가는 나에게 ‘넌 사랑을 해보았니?’, ‘니가 사랑을 아니?’라고 묻는다. 정말 2016년도에 이 질문을 최소 5명이상에게 들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냐고? 그들은 내가 곧 시집을 가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짜 맙소사!) 이런 나름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뿐이겠나? 다른 주제에 대해선 정말 방대하게 묻는다. 물론 상대방과 나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럼 다르구나, 하면 되는데 다들 자꾸 ‘평가’하려 든다. 네가 한 건 사랑이 아니야, 왜 결혼 생각을 안해? 너는 20대를 잘못 보내고 있어, 너네 회사 좀 이상한데?, 너 그거 잘 믿고 산거 맞아?

... 자기가 자기 숙제를 안하고 있으니 나에게도 숙제를 주는 거다. 난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던 것들에 대하여! 그러면 본인 나름의 위로를 받을테니까. 

그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나에게 묻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내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당연히 대화하기 싫어진다. 
‘내 이야기 듣지도 않을 거면서! 나중에 내 생각이 궁금해지거든 칼럼이나 읽으시오!’ 하고 싶지만 그냥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그게 무슨 같이 밥 먹는 거야? 아, 내 소중한 한 끼가 날아가 버렸다, 흑흑!
 
밍밍한 상대와 섹스를 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푸는 게 낫고, 음식 맛과 시간을 헤치는 상대와 식사하느니 차라리 혼밥이 낫다는 거다. 식탁은 침대만큼 섹시하기 때문이다.
암, 그만큼 신성하고 쾌락적이지! 그러니까 인류가 그렇게 뼈 빠지게 농사짓고, 돈 벌고, 구애하고, 딴 족속 여자랑 농토 뺏으려고 목숨 걸고 전쟁까지 한 거 아냐!
 

그래서 요즘엔 포르노를 보며 성적 욕구를 해소하듯이, 어떤 이들은 인터넷 방송BJ들이 하는 ‘소맥’ 먹방을 보며 집에서 혼술을 마시더라. 솔직히 난 좀 이해가 된다.

어제와 오늘, 생각해보니 연 초부터 이틀 연속 매 끼니마다 혼밥을 먹었다. 당연히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나도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근데 그걸 누가 평가하는 거지? 그저 각자도생 상황에 따라 혼밥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이유로 혼자 밥 먹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재차 말하지만 식탁은 침대만큼 섹시하고 신성하니까! 사실 그러하기에, 상대방이 정말 훌륭하면 다양한 메뉴를 ‘같이’ 맛보고 싶어진다.


어떤 언어의 문학 작품에서도 룸서비스 메뉴만큼 시적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햇볕에 말린 크렌베리를 곁들인 연한 채소.
삶은 배, 고르곤졸라 치즈,
진판델 비네그레트 소스로 무친 설탕 절임 호두
석쇠에 구운 따뜻한 치킨 조각,
훈제 베이컨, 아삭아삭한 상추,
바다 소금을 뿌린 감자튀김 위에 따뜻한 치아바타 롤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중에서)

이 시를 읽고 당신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맙소사, 정말 그 어떠한 시라도 역시나 사랑을 노래하는구나.
새해엔 그런 사람과 유희적인 ㅅㅅ를 하는 일들이 많아지시길, 아 식사, 식사!(ง ㅅ_ㅅง).


(p.s. 2016년 한 해 동안 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7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사랑이 넘치는 한 해가 되세요. 지해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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