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김창호 칼럼니스트]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이 있어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라는 《송사》 <유일지전>의 가르침이나,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데는 몇 십 년이 걸리나 그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는 옛말을 그 어느 때보다도 실감을 한다.  

정관지치(貞觀之治)의 명신(名臣) 위징은 “녹대의 보의가 불타고 아방궁이 전소하는 데는 횃불 하나로 충분했다.”고 했고, 《효경》에서는 쟁신칠신(爭臣七臣), “천자에게 직간하는 신하 일곱만 있으면 아무리 무도해도 천하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1인 손님을 위한 샤브샤브 / 출처 : 한국관광공사

혼밥을 즐겼다는 독신의 여성 대통령 곁에 오래된 지인(知人)은 있었으나, 유능한 참모도, 청렴강직한 부하도, 좋은 친구도, 혈육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유붕(有朋)은 거의 자원방래(自遠方來)하지 않았다. 대신 무자격, 부적격, 함량 미달을 넘어서서 독버섯, 암적 존재라고까지 보이는 숱한 인물들이 국회 청문회나 특검의 수사대상 등으로 언론에 대거 등장하고 있다. 장기판의 졸(卒), 있으나마나한 계륵(鷄肋), 사족(蛇足) 정도의 인물들이 요직을 맡아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오도하고 국정(國政)을 자의적으로 주물렀다는 개탄할만한 증거들도 줄을 잇고 있다. 면종복배, 구밀복검, 호가호위했다는 그들의 작태에 국민들의 분노가 식을 줄을 모른다. 

권세와 이득, 권력의 양지를 누린 해바라기 같은 출세지상주의자들의 변명들도 구차스럽고, 처신 또한 크게 실망스럽다. 스스로를 기라성 같은 재사가인(才士佳人)으로 생각했을지는 모르나, 모두들 화실불겸(花實不兼), 재승덕박, 재승성핍(才勝誠乏)의 비판을 피해 가지 못한다. 황금을 보기를 돌과 같이 하고, 부귀영화를 발아래 짓밟고, 권력과 출세를 냉소하는, 꼿꼿한 물줄기나, 맑고 푸르른 바람이나, 송백(松柏)과 같은 인재들이 7명은 있었다고 어느 누구도 감히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소년등과, 입신양명했다는 추요기근(樞要機近)의 인물들도 대부분 비참하게 추락해 사실상 정치적·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평가다. 개인적인 불행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실패이기도 하다. 

벼슬을 거절하며 <을묘사직소>를 올린 남명 조식(1501~1572) 같은 직언하는 인물 하나 주변에 없었던 것도 불운(不運)을 더했다.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떠나버렸습니다...낮은 벼슬아치는 술과 여색에 빠져있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물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전께서는 신실하고 뜻이 깊다고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는 아직 어리시니 다만 돌아가신 임금님의 한 고아에 불과합니다.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리는 하늘의 재앙을 어떻게 감당하며 억만 갈래로 흩어진 민심을 어떻게 수습하시렵니까...

▲ 명종은 상소문의 본질은 외면한 채 신성불가침적인 존재인 자신을 ‘고아’와 대비(문정왕후)를 ‘과부’라고 표현한 것에 격노하며 조식을 ‘불경죄로 처벌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 출처 : 네이버캐스트

창업과 수성, 둘 다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집권에 성공한 초기에 그동안의 참모와 주변 인물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토사구팽의 결단이 있어야 했다. 비록 함께 풍찬노숙을 했더라도 군주의 망은(忘恩)은 미덕(美德)이다. 한 고조 유방이나 명 태조 주원장 등의 경우 창업 이후에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개국공신들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제거했다. 오늘의 대통령학은 대통령 취임 이후 100일 동안을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본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처럼,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새로 탄생한 정권의 성패와 운명이 사실상 결정된다고 한다. 임기 초반에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등용하는 인사(人事)의 문제는 정치의 요체다. 썩어가는 고인 물을 일찍 정리하지도 못했고, 고물 창고에서 꺼낸 낡은 인물들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우대하며 중용하는 등의 인사 실패도 반복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도 없었고 잘못을 철저히 가리는 읍참마속도 고집스럽게 외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적절한 인사이동은 매너리즘과 측근비리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참담한 처지는 자승자박, 자업자득의 결과다.

올바른 지인이나 좋은 친구는 정치에도 필요하다. 좌우에 둔 사람들로 인해 선악(善惡)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이 갈린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유유상종이고 근묵자흑이다. 주위에 나쁜 사람들이 많으면 일종의 동료효과처럼 나쁜 길에 접어들기가 쉬운 법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줄 몰랐다는 말로 면책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가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벗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참다운 벗이 있었던가를 되돌아본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지란지교(芝蘭之交), 삼인행(三人行) 필유아사(必有我師)의 교훈을 깊이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