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느리게 걷기] 내 머리속의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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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느리게 걷기] 내 머리속의 지우개
  • 피터신 칼럼
  • 승인 2017.01.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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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삶이 열리고 있거늘..

[피터신(Peter Shin) 칼럼니스트] 방금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이 자꾸 사라진다. 그저께는 언제나 벨트에 차고 다니던 수십개의 각종 열쇠가 달린 호텔의 열쇠 뭉치를 잃어버려 하루 종일 탐정 놀이를 했었다. 아침에 은행에 다녀온 다음 차를 주차시킨 직후까지 내게 존재했던 열쇠 꾸러미가 감쪽같이 사라진 후, 그날의 모든 행위들을 모두 되짚어가며 찾고 또 찾고 결국 어둠이 내린 밤까지 계속되었는데 결국 밤 열한시가 넘어 호텔을 마감하며 레스토랑의 키친을 정리하면서 해동을 위해 꺼내 놓은 1.5kg 치킨 윙 포대자루 밑에서 발견되었다.

노화에 의한 생리적 현상은 이제 매일 매일 벌어지는 친구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노안에 의해 가까운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은 눈앞에 있기보다는 머리위에 걸쳐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지금 내가 뭘 가지러 이곳에 왔는지가 생각이 나질 않아 연역적, 추론적, 가정적 방법을 동원해 겨우 알아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또 엊그제 처럼 중요 물건들을 어디다 뒀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short-term memory 의 access 가 잘 되지 않는 현상은 노화의 대표적 증상일 것인데, 서글픔이 치밀어 오르기 보다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리고 조물주의 조화스러움에 경탄을 금치 못할 따름이다. 이젠 숏텀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매일 매일의 다급한 일상에서는 벗어날 때다. 이젠 빠르고 정확한 flash memory 가 필요한 dynamic 한 job 에서 역시 벗어나야할 시간이 다가 온거다. 네 안타까움과 성가심, 그리고 회한등은 내 알바가 아니다 ㅋ.. 라는 조물주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조물주의 이러한 짓궂은 속삭임이 내 귓가에 맴돌며 그의 또 다른 생각을 읽어 보게 되는데, 내 경우 이러한 생리적 노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단기 기억의 잦은 상실 현상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장기 기억들, 즉 long-term memory 집단들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전보다 더욱 또렷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기억들이 살아남과 동시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 그에 관련되었던 나의 물리적, 정서적 반응들의 집합체 들이 연상과 연합등의 작용으로 이야기가 되어가고, 이해가 되어가고, 종합이 되어가는 다분히 신비한 작용의 연속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치열한 일상의 모든 일에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가며 살아왔던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은 이젠 좀 부드럽게, 실수도 인정하면서, 망각과도 함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모드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이러한 삶의 전환기, milestone 앞에 서있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산 것이 자랑스럽고, 또 이제 까지의 삶을 반추하며 떠오르는 그 많은 이야기들, 신화적 생각들, 그리고 심장까지 덜덜 떨리던 극치의 감정들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엮어지고 꿰어져 옛날 이야기 화 되어져간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고마운 것이다.

stay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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