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김창호 칼럼니스트] 팍팍한 세상살이에 치여 좋은 벗들, 아름다운 친구들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주식지우천개유(酒食之友千個有) 급난지우일개무(急難之友一個無). 술을 마시고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많으나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에게 맞는 말일 것이다. 

성대중(1732~1809) 선생은 감동적인 명저(名著) 《청성잡기》에서 “눈독을 들이는 미인에게는 천금을 주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지만 가난한 친구에게는 백금을 주는 일도 드물다. 준마(駿馬)를 사는 데는 반드시 수백 금을 들이지만 마부를 사는 데는 수십 금을 넘지 않는다. 친구가 미색(美色)보다 못하고 사람이 가축보다 못하단 말인가.”고 한탄했다. 참된 친구는 어려운 친구를 돕는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는 옛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친구가 기뻐하니 함께 즐거워한다는 송무백열(松茂柏悅)의 경지를 다시 되새긴다. 우리는 과연 이런 우정을 나누고 있는가. 

필자가 아는 어떤 친구는 어려운 형편의 친구나 지인이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는 경우, “나중에 형편이 허락하면 갚고, 영 형편이 안 되면 안 갚아도 된다.”고 말하고 빌려 준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돈을 빌려주고 언제 받을까를 걱정하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그냥 주어버리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니 그렇게 빌려 준 돈도 자신에게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잠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나중에 고맙다는 감사까지도 진실로 받게 되고, 원치 않았던 좋은 평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얼마나 고민하다가 어렵게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겠느냐”는 그 친구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었고, 결국 자신도 금전적으로 손해를 본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어느 해인가는 어렵게 사는 어떤 친구가 자기 여동생이 결혼을 하는데 형편이 도저히 안 되니 2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 친구는 “우리 사이에 뭘 빌려주나. 그냥 축의금 받았다고 생각하고 보태 쓰라”고 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잊고 있던 그 친구가 상가(喪家)에 찾아와 “지금은 형편이 아주 좋아졌고, 어쩌면 죽을 처지에 있던 그 때 참으로 고마웠다”며 당시 빌려준 돈보다 훨씬 많은 1천만 원을 부의금으로 내놓고, 살던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박제가[朴齊家]. 18세기 후반기의 대표적인 조선 실학자. 호는 초정(楚亭).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전통적인 양반 교육을 받기는 했으나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전개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궁핍한 날의 벗>이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진 명문(名文),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에서 박제가(1750~1805) 선생은 서울에서 살기가 힘들어 강원도 산골짝으로 떠나는 벗 백동수(1743~1816)에게 서로의 가난을 토로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어야 진정한 친구라고 한다. 우정의 깊이는 사유(私有)한 재물을 서로 논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쌀이나 돈을 꾸어달라고 할 때 반드시 드러난다고 한다.  

오래 전의 잊지 못할 실화(實話)다. 병상에 누워있던 어떤 할아버지가 친구에게 2억 원을 빌려달라고 갑자기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흔쾌히 빌려줄 것을 약속했다. 그 분이 부인과 자식들에게 병원에 입원중인 김 사장에게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하자, 모두들 깜작 놀라 반대를 했다. “내일이나 모레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분에게 어떻게 그런 큰돈을 어떻게 빌려주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가족들을 설득하며 말했다. 

“그 분은 너희들이 아직 어리고 내가 무척 가난하던 젊은 날, 어려울 때마다 나를 크게 도와주셨던 분이다.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 어쩌면 모두 그 분의 덕이다. 생각해보면 자식들이  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된 것도 그 분이 없었더라면 아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집 사람이나 너희들이 반대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 분의 작은 아들이 부도(不渡)가 나 매우 힘든 처지에 빠진 것 같으니 이 때에 그 신세를 갚아야 한다. 그 분의 성품으로 봐서 집안의 재산 정리가 되는대로 빌린 돈은 반드시 갚으실 분이니 걱정을 하지마라. 이런 아비의 뜻을 알고 너희들은 앞으로 두말을 하지 않도록 해라.”며 돈을 빌려주었다. 

▲ 무하마드 유누스 / 출처 : 세계경제포럼

흔치않은 미담의 주인공인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친구를 웃게 한 자는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소액대출의 사회적 기업, 착한 <그라민 은행>을 세운 무하마드 유누스(2006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의 조국 방글라데시의 속담이다. 2억 원은 지금도 큰돈이다. 돈을 초월한 두 분 사이의 깊은 우정과 높은 신의(信義)에 뒤늦게나마 지면(紙面)을 통해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어려울 때, 이런 좋은 친구를 가지지 못한 우리는 자책을 넘어서서 오히려 더욱 참담해지기까지 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전망 좋은 방>, <인도로 가는 길>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1879~1970)는 “만일 내가 내 나라를 배반하는 것과 내 친구를 배신하는 것 가운데 골라야 한다면, 나는 내 나라를 배반할 만한 배짱이 있기를 바란다.”고 진정한 친구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

세상살이가 뜻같이 아니 하여 낙향, 남도 섬진강 근처에 살며 서울을 때때로 오가는 어떤 친구는 도로에서 로드 킬(road kill)된 야생동물들을 보면 가능한 한, 꼭 차를 세우고 그 사체를 수습해 인근의 숲 속에 묻어주고 잠시 명복을 비는 기도까지 한 후 자기 갈 길을 간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길가에 처참하게 버려진 동물을 보고 그 마지막을 보살피는 친구가 착한 심성을 가진 뛰어난 벗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벗을 사귀는 방법을 감히 여쭙습니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덕(德)을 벗하는 것이다....한 고을의 선사(一鄕之善士)는 한 고을의 선사를 벗할 수 있고, 한 나라의 선사(一國之善士)여야 한 나라의 선사를 벗할 수 있으며, 천하의 선사(天下之善士)라야 천하의 선사를 벗할 수 있다. 천하의 선사를 벗하는 것을 만족하지 못해 또한 과거로 올라가 옛사람을 논하는 것이니 그 시를 외우며 그 글들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지 못하면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 시대를 올라가 벗하는 것이니 이는 과거로 올라가 벗하는 것이다. -《맹자》 <만장 하>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