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은 상속 개시 시 상속인이 상속의 효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등을 선택하여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상속의 효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속의 단순승인이라고 하고, 상속의 효력을 소멸하게 할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하는 것을 상속포기라고 한다.

이에 대해 민법 제1026조에서는 법정단순승인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사유가 있을 때에는 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 즉,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해 처분행위를 하거나 상속인이 상속승인 등의 고려기간 내에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하지 않은 때’, 그리고 ‘상속인이 한정승인 또는 포기를 한 후에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소비하거나 고의로 재산목록에 기입하지 않은 때’에 단순승인한 것으로 본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끈다. 피상속인 사망 후 피고 A씨를 포함한 상속인들이 1월 26일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였고, 법원은 3월 14일 그 신고를 수리하는 심판을 하였다.

그런데 상속포기 수리심판일 이전인 1월 30일 A씨는 피상속인이 생전에 소유하던 화물차량 6대를 폐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도록 한 후 2월 6일 B씨로부터 대금 2천여만 원을 수령하였다. 이에 대하여 C씨는 A씨를 상대로 대여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C씨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법승은 “민법 제1026조 제1호와 제3호의 적용 기준이 되는 상속 포기를 한 시점의 해석과 관련하여 상속인이 상속포기 신고를 한 때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상속포기신고에 대해 수리심판을 한 때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원심법원에서는 민법 제1019조 제1항이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내에 포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민법 제1026조 제2호에서 “상속인이 제1019조 제1항의 기간 내에 포기를 하지 아니한 때”에는 “상속인이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위 조항들에서 말하는 ‘포기’는 상속인의 상속포기신고를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민법 제1026조 제3호의 ‘포기’ 역시 상속인의 상속포기신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속의 포기는 실체법상으로는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이므로 그 포기의 의사를 표현함과 동시에 법률요건은 달성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법원이 그 포기의 의사 표현, 즉 상속포기 신고를 수리하는 심판을 하는 것은 단순히 절차적인 처리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는 상고심에서 원심파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환송했다. 상고심에서 법무법인 법승 이승우 대표변호사는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에는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상속의 한정승인이나 포기의 효력이 생긴 이후에는 더 이상 단순승인으로 간주할 여지가 없으므로 이 규정은 한정승인이나 포기의 효력이 생기기 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2003다63586판결)”고 주장했다.

또한, 법무법인 법승의 김낙의 변호사는 “상속의 한정승인이나 포기는 상속인의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법원에 신고를 하여 가정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심판은 당사자가 이를 고지 받음으로써 효력이 발생한다”면서 “이는 한정승인이나 포기의 의사표시의 존재를 명확히 하여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가 획일적으로 처리되도록 함으로써 상속재산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공동상속인이나 차순위 상속인, 상속채권자, 상속재산의 처분 상대방 등 제3자의 신뢰를 보호하고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상속인이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의 신고를 하였다고 해도 이를 수리하는 가정법원의 심판이 고지되기 이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하였다면 이는 상속포기의 효력 발생 전에 처분행위를 한 것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따라 상속의 단순승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변호사는 “이에 대해 원심은 상속인이 상속포기 신고를 한 이상 그 신고를 수리하는 심판이 있기 전에 상속재산을 처분했더라도 민법 제1026조 제1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A씨가 B씨에게 화물차 대금을 받은 시점이 상속포기 신고를 한 이후이기 때문에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지만, A씨의 상속포기 신고 후 대금을 수령함으로써 상속재산을 처분한 것은 A씨의 상속포기 신고를 수리하는 법원의 심판이 고지되기 이전이므로 민법 제1026조 제1호에 따라 상속인인 A씨가 상속의 단순승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C씨 측 변호인단의 주장을 인정하여 대법원에서는 “원심에서 상속재산을 처분한 시점이 상속포기 신고를 한 이후라는 사정만으로 단순승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이는 민법 제1026조 제1호의 법정단순승인사유 및 상속포기의 효력발생시기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하였다.

김낙의 민사전문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포기(심판)의 효력이 생기기 전에 처분행위를 한 경우에만 적용된다”면서 “즉 상속포기(심판)의 효력 발생 시는 상속포기심판이 당사자에게 고지된 때이지 상속포기(심판) 신고 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례는 민법 제1026조 1호와 3호의 경계 기준점에 대한 고등법원의 법적인 논거 오해와 잘못된 판결에 대해 상고심에서 꼼꼼하고 일목요연한 법리분석으로 판결을 뒤집은 사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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