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자세를 되새기는 주말추천 교양공감 포스트

[공감신문 교양공감] “미안하지만 내 사정도 이해해줘”, “미안하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사과할 일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안하다” 등. 우리가 살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보통은 ‘잘못한 일’이 있는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

헌데, 이런 종류의 사과는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사과’인 건 맞는데, 어째 그 화자에 대한 화를 누그러뜨리기엔 부족하달까? ‘미안’이나 ‘사과’는 그저 수식어에 불과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이 핵심인 것처럼 느껴진다.

"미안하긴 한데,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쿨하게 이해해줄 거지?" [photo by havankevin on flickr]

잘 와 닿지 않는다는 분들이라면 한 번 생각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피해를 입혔는데, 그 사람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얘길 한다면? 과연 그게 정말로 사과처럼 느껴지실까? 대인배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어쩔 수 없었다면 뭐, 이해할게!”라 대답할 수 있을까?

진심을 담은 사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희귀한 것일지 모른다. 무슨, 그리스 신화에 나오던 ‘헤라의 황금사과’도 아니고 말이지.

사실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 진심이 담긴 사과를 들어본지도, 직접 말해본지도 꽤 오래됐다. 차라리 책상에 금이나 긋고 땅따먹기를 하던 어린 우리가 그나마 사과를 ‘제대로’ 잘 했던 것 같다. “정말 미안해. 내가 너에게 피해를 주게 될 줄 미처 몰랐었어!”라는, 다소 교과서적인 사과는 말 그대로 ‘바른 생활’ 교과서에서나 본 것 같다.

어릴 때는 "미안해"라 또박또박 적은 쪽지를 건네본 적도 있었다. [photo by leyram odacrem on flickr]

왜인지 모르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잊어-아니지, 방법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사과하지 않게 됐다. 만약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미안함을 간신히 쥐어짜내 억지로 사과를 한다. 또 때로는 이번 포스트의 맨 윗부분에 적어둔, 꽤나 지저분하고 구구절절하며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한다.

미안하지만 우리, 그러니까 여러분과 에디터가 하는 사과는 잘못됐다. 오늘은 에디터와 함께 제대로 하는, 상대방도 수긍할 수 있는 사과를 다시 알아보자. 어려울 건 없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고, 그것을 보기 좋게 선물 포장하면 되는 거니까.

■ 깔끔하고 담백한 사과

맨 처음에 에디터가 언급한 것처럼 사과를 지저분하게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미안한데 나만 잘못한 건 아니다’라는 식, 아니면 ‘미안하긴 한데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사과. 만약 여러분이 직접 듣게 됐다고 생각해보면 어떠신지? “그래서 미안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지 않나.

사과를 하려거든, 자신의 잘못에 타당성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는 나중의 일이다. 자신이 어째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따위의 말은 감정적으로 흥분한 사람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변명’으로 느껴질 뿐.

사과하는 순간에 등장하는 해명은 해명이 아닌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차라리 조금 더 있다가 하는 편이 낫겠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조금 과격한 예시일 수 있겠으나, 형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떠올려보자. 어느 생계형 범죄자에게 아무리 가슴 절절한 사연이 있다고 해도, 어쨌거나 일은 저질러졌으며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됐다.

‘생계를 위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누가 “아, 그래? 그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며 그 범죄자를 용서할 순 없는 일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를 바란다. 가해자는 응당 피해자에게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 하고. 그건 문명사회를 유지시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응어리를 남기지도 않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사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 담백한 사과가 ‘좋은 사과’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분명한 잘못임을 인정합니다, 다음부턴 더 조심하겠습니다. 변명과 핑계로 점철된 사과(또는 사과문)는 상대의 화를 돋울 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 잘못에 책임지는 사과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공용화시키는 패턴의 사과도 자주 보인다. ‘난 정말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남들도 다 그러니까…’, 혹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 잘못을 저지른 원인은 네 행동 때문이야’라는 사과.

만약 이런 사과의 말을 준비했다면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는 편이 낫겠다. 특히나 후자의 경우는 더더욱. 저 말은, 결국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라는 뜻이다. 사과를 하려는 것인지, 공격을 하려는 것인지 듣는 입장에서는 화만 더 날 뿐이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있는 법! 책임회피하려 들지 말자.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잘못에는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지는 건 결국 사과하는 주체다. 남에게, 또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과는 비겁하다. 책임져야 할 실수가 있다면, 그때 우리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 크다”, “내가 더 신경 쓰지 못해서 실수를 했구나”다. 각종 언론보도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을 보고 혀를 쯧쯧 차면서,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진 않았나?

우리가 살면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실수들, 그까짓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지자.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타인의 화를 누그러뜨릴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실수를 저지르면, 그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조심하게 되기 마련이니까.

■ 공감하는 사과, 동의하는 사과

갈등 상황에서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라는 말을 종종(어쩌면 꽤 자주) 들을 수 있다. 보통은 크건 적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보통은 “내가 실수하기는 했는데 사소한 일 아니냐”는 속뜻을 담고서 이 말을 한다.

하지만 여러분, 다들 잘 알고 계시다시피 잘못의 크기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임의로 판단할 수 없다. 타인이 받았을 상처의 크기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타인에게 입힌 피해의 크기를 멋대로 재단하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건방진 행동이었는지 부끄러워지지 않나.

누가봐도 진짜 사소한 걸로 머리끝까지 화를 내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여러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러진 않을 것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물론 세상에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도 많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사회통념상 있을 수 있는 실수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드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사과에 너무 야박하지는 않았나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그 일 때문에 그렇게 화낼 줄은 몰랐네, 어쨌든 미안해”라면서 무책임하고 건성으로 사과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태도로 사과를 할 바엔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기본적으로 ‘사과’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흥분한(혹은 상처를 받은) 상대를 진정시키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시키려 하는 행동이란 얘기다.

타인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공감’과 ‘동의’가 필요하다. “나라도 많이 섭섭했을 것 같다. 정말 미안해”라는 말, “너의 속상함이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가. 다음부턴 조심해볼게”라는 말로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동의해보자. 사과의 과정이 훨씬 쉽고 간단해질 것이다.

■ 올바른 사과의 자세

-무례한 사과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사과하는 행위는, 당신이 베푸는 '호의'가 아니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식의 사과는 무례하기 짝이 없다! 사과는 예의바르게!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흥, 미안하게 됐네요!” 보통 드라마 등에서 무례한 부잣집 ‘싸모님’이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 이런 대사를 내뱉는다. 거참, 대단히 불쾌한 사과다. 교양과 품위가 넘치는 우리의 교양공감 구독자분들 중엔 이런 분은 없으리라 믿는다. 사과는 예의있게, 무례하게 사과한 건 ‘사과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해명, 굳이 지금 해야만 하는지…

분명 억울할 때도 있다. 사과를 하긴 하는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경우. 아무리 눈물 나게 억울하더라도 사과와 해명의 시간은 구분 짓는 것이 좋다. 당연히 사과의 시간이 먼저 오며, 충분히 사죄의 뜻을 전한 뒤에 해명해도 늦지 않는다. 사과와 해명을 동시에 하려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당연한 말이지만 부드럽게 사과해라

“아! 미안하다고!!” 이거, 이거. 절대 사과로 들리지 않는다. 보통 가까운 사이에서 이런 식의 사과가 빈발하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사과 방식이다. 가까우니까 예의를 갖춰 사과하기 어렵다고? 오히려 가까운 만큼 더 예의를 갖추고, 최선을 다해 사과해야 하는 법이다. 사과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도 ‘쏘 스윗’하게. 아무리 앙숙인 사이라도 죄책감을 느낀다면 부드러운 태도로 사과하자.

※ 사과의 시간에 말하면 안 되는 금기어들

  • 고작 이 정도로 왜 그렇게까지
  • 그건 네 착각(오해)이야
  • 그래, 내가 죽일 놈이지
  • 너도 예전에 그랬었잖아
  • 나만 잘못한 거 아니야
  • 흥분하지 마시고
  • 유난 떨지 마

※ 사과의 시간에 해도 되는 말들

  • 내가 많이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어
  • 나라도 정말 화가 났을 것 같다
  • 앞으로 좀 더 신경 쓸게
  •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 정말로 미안해

■ ‘진심어린 사과’란 스스로를 갈고닦는 것

사과를 하면 괜히 지는 것 같고, 양보하는 것 같다. 어쩐지 고갤 숙이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특히나 손윗사람이 손아래 사람에게 사과하는 건 더 어렵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하는 건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도 아니고, 난이도도 높달까.

사과 아끼다 사람 잃었다는 이들도 많다. 남발할 필요도 없지만, 필요할 때 아껴둘 필요도 없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뻔뻔하게 나가는 것, ‘사과하면 손해’라는 태도는 ‘더 좋은 미래’를 퇴보시킨다고 볼 수 있겠다. 모두가 사과를 아끼고 아끼는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앞서 언급한 사례들, 그러니까 학생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선생님, 부하 직원에게 변명 않고 제대로 사과하는 상사, 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바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많은 것들 중 하나랄 수 있다.

상대에게 진심을 담은, 납득할 수 있는 사과를 받길 원한다면 나 자신부터 그런 사과를 해보자. 마이클 잭슨도 “세상을 바꾸려거든 거울 속의 사람부터 바꿔보세요”라 하지 않았나. 만약 우리가 잘못한 일로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어쨌든 당당하고 뻔뻔하게 굴 수 없는 타이밍이라면 ‘제대로’ 사과를 해보자. 미안해, 네게 상처가 됐다니 마음이 안 좋다. 나라도 많이 속상했을 거야.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해볼게.

진심을 담은 사과는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영화 '인턴' 장면]

에디터도 사실 반성할 점이 많다. 에디터 역시 제대로 사과해본 기억이 그리 많진 않기 때문이다. 사과를 하면 괜히 상하관계가 생겨나는 것 같고, 뭔가 보상을 해야만 할 것 같고. 그래서 사과를 아끼고 아껴왔다. 그러다 문득, 한 친구가 지독하게 사과를 아끼는 것을 보면서 반성하게 됐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래왔겠지’하고.

그동안의 생각들이 착각이었다. 사과는, 결코 ‘패배선언’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납작 엎드리는 것도 아니고, 굴복하는 것도 아니고, 귀한 걸 내어주는 행위도 아니다. 사과는 그저 사과다. 그걸 간과해왔던 것이다.

세상엔 단 1cm도 물러서지 않으며, 절대로 양보 않는 사람들이 있다. 뭐, 그런 태도도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때로 양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실은 당신이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상대는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자신의 잘못에 비해 상대방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물론 있겠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건 온전히 잘못한 사람의 몫이다.

여러분과 가까운 누군가가 아주 가벼운 실수 때문에 부당할 정도로 화를 낸다면, 우선은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서자. 가족, 친한 친구, 연인 등. 여러분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들이라면, 잠시 감정을 추스른 후 분명 여러분에게 “내가 좀 심했던 것 같다”면서 태도를 반성할 테니까.

제대로 사과하기! 작지만 언젠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이다! [photo by kate ter haar on flickr]

우리 주변의 인연이 소중하다면, 이제는 잘못된 사과 습관을 고쳐야만 한다. 진심을 담아서, 좀 더 제대로 사과하자. 소중한 인연은 한 순간의 실수로 영영 돌이킬 수 없지만,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그 일에 책임을 지고, 실수를 바로잡아 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좀 더 적극적이고 진중한 태도로 사과를 한다면, 세상 모두가 ‘같잖은 사과’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은 없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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