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과 대체복무자의 형평성과 징벌성...균형 맞춰낼 수 있을까

[공감신문] 고진경 기자=병역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온도가 뜨겁다. 논의의 시작점은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종교적 신념 등의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사람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판단이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중대하게 다룬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첫 번째 처벌은 지난 1953년 이뤄졌다. 65년 만에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한 처분이 달라진 것이다.

이어서 대법원 판결 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첫 무죄 선고가 이뤄지면서 사회적 파장은 더욱 커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보는 여론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찬성 측은 인권이 크게 진전됐다며 대법원의 결정을 환영했다. 인권단체 등은 그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교도소에 보내짐으로써 평생 사회적 차별에 노출돼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반대 측은 현역 군인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국방력 약화를 문제 삼았다. 소수가 양심을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는다면 누가 군대에 가려고 하겠느냐는 비판도 잇따랐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사회적 갈등이 커지자 대체복무제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헌법재판소 역시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포함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다. 대체복무제의 실시 방안을 두고 여러 의견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는 안은 크게 두 가지다.

국방부의 대체복무 안에 따르면 복무기관으로 교정시설과 소방서가 거론된다.

국방부는 대체복무기간으로 36개월 또는 27개월을 제시했다. 복무기관은 교정시설과 소방서가 거론된다.

이중 국방부가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36개월 교정시설 안이다. 다른 병역복무자들과의 형평성을 유지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려면 대체복무기간이 현 복무자들의 최대 복무기간인 36개월 선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현역병은 육군과 해군, 공군이 각각 18개월, 20개월, 22개월씩 복무하고 있다. 산업기능요원은 34개월, 전문연구요원과 공중보건의사는 36개월씩 근무한다.

36개월 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복무 분야를 교정시설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찬성하며 합숙 근무만 허용할 것을 주장한다.

합숙을 하지 않을 경우 현행 사회복무요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대체복무 시설로 거론되는 소방서에 합숙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근거로 삼는다.

전문 지식이 부족한 대체복무자들이 소방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36개월 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체복무기간을 현역의 1.5배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징벌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체복무기간을 현역의 1.5배 이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징벌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체복무제를 운영하고 있는 대다수의 국가들은 현역복무 기간의 1.5배 이하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도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들에 따르면 대체복무가 1.5배를 넘어갈 경우 징벌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36개월 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나라 현역복무 기간이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길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체복무 기간을 2배로 둔 핀란드나 프랑스는 현역 복무기간이 각각 6개월과 10개월로 매우 짧다.

또한 처음에는 교정시설 복무가 추진되더라도 향후 사회적 필요가 존재하는 소방과 사회복지시설 등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대체복무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급여를 받으며 복무하는 이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지난 1949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한 독일은 대체복무기간을 일반 군복무기간과 동일한 9개월로 뒀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을까.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1949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했다. 신청사유와 시한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인상 깊은데, 대체복무 기간 역시 일반 군복무기간과 동일한 9개월이다.

대체복무자들은 병원이나 공공복지분야에서 출퇴근 형식으로 근무한다. 지난 2011년 징병제 폐지에 따라 오늘날에는 운영되지 않고 있는 제도다.

대만은 지난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군복무기간(22개월)의 1.5배인 33개월로 시작됐다.

그러다 군복무기간이 단축되면서 대체복무기간도 동일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복무 분야는 소방역, 사회역, 환경보호역, 교육서비스역, 경찰역, 문화서비스역의 6종류에서 시작해 16종류까지 늘어났다.

대만 역시 2018년 모병제로 전환됨에 따라 오는 2021년에 대체복무제를 폐지할 예정이다.

위 사례들에 빗대어 우리나라의 대체복무제의 모습도 조금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다. 복무 기간은 줄고 복무 분야는 늘어나는 것이 대체적인 양상이다. 36개월 교정시설 안이 채택되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무 기간이 줄고 투입 영역이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다.

대체복무제 논란을 풀어나가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나는 비양심적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체복무제를 이제 막 시행하려는 단계에 있다. 처음인 만큼 당연히 모든 사회구성원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36개월 안을 채택하든 27개월 안을 채택하든 반발은 생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한 이들, 또는 수행할 이들이 ‘나는 비양심적인가’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대체복무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일도 중요하다. 사실 이 문제는 현역들의 박탈감이나 형평성 논란의 핵심이다.

대체복무자들이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을 정당한 사유를 가진다면 반발이 생길 이유가 없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국방부는 현역병의 복무환경 개선이나 합리적인 심사제도 도입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형평성과 징벌성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내 대법원이 쏘아올린 병역 변화의 공을 무사히 안착시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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