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측 “제2의 브렉시트 될 것”…폴리티코 “샤이 트럼프는 신기루”

[공감신문 김대호 기자]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민주당에선 흑인후보였던 토머스 브래들리((Thomas Bradley)가 출마해, 공화당의 백인후보 조지 듀크미지언(George Deukmejian)과 경쟁했다. 브래들리는 선거전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더 높은 지지율을 얻었고, 선거날 출구조사에서도 앞섰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브래들리는 1.2%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선거의 결과가 여론조사와 달리 나오는 것을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만, 막상 투표장에서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를 찍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선거에서 백인층 상당수가 지산의 인종젹 편견을 숨기기 위해 여론조사에서 브래들리에 응했지만, 투표에선 자신의 인종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오는 8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20개월의 대선 레이스가 8일 0시 뉴햄프셔 주 작은 마을 딕스빌노치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차례로 열리는 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가운데 한 사람이 제45대 대통령이 된다.

힐러리는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늘 트럼프를 앞서 왔다. 이번 선거는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레이스 시종일관 저질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막장극', '가장 추잡한 선거'가 거듭됐다. 트럼프의 음담패설과 성추행 의혹,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에 더해 FBI의 '대선 개입' 논란까지 끼어들며 미국은 반쪽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힐러리의 이메일 사건을 재수사한다는 폭탄선언으로 양측의 지지율이 급변동했다.

FBI 재수사 결정이 나온 이후 이달 4일까지 나온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의 전국단위 추적 여론조사를 보면, ▲29일 클린턴의 2%포인트 우세 ▲30일 클린턴의 1%포인트 우세 ▲11월 1일 트럼프 1%포인트 역전 ▲2일 동률 ▲3일 클린턴의 2%포인트 우세 ▲4일 클린턴의 3%포인트 우세 순으로 이어졌다. 여론 조사만 보면, 힐러리가 멀찌감치 앞서 달리던 구도에서 '이메일 재수사' 결정이 나온 이후 격차가 급속히 줄다가 결국 역전까지 허용한 끝에 다시 서서히 우위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각종 전국단위 여론조사를 평균한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4일 현재 클린턴이 1.7%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집계했다.

대선 승부를 결정짓는 선거인단 경쟁의 경우, CNN은 클린턴이 268명, 트럼프가 204명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선거인단 270명을 넘기는 후보가 대선 승자가 된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는 클린턴 208명, 트럼프 164명으로 추정했다.

마지막 변수는 트럼프의 '숨은표'다. 즉 브래들리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 여부다.

트럼프측은 여론조사가 그의 지지층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국 그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숨어 있는 트럼프 지지표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예상과 달리 브렉시트 결정이 났던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힐러리 우위 구도의 여론조사 흐름과 달리 자신이 결국 승리, 또 다른 브렉시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빗나간 여론조사 예측의 한 원인을 '숨은 보수표', 이른바 '샤이 토리'(shy Tory) 유권자에서 찾았는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샤이 트럼프'(shy Trump)'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샤이 토리'는 1992년 영국 총선 직전 최종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1% 포인트 차이로 노동당에 지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7.6% 포인트 차로 이긴 데서 나온 말이다.

인기 없는 정당, 정치적 올바름과는 거리가 있는 정당을 찍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실제 표를 던질 때까지는 여론조사원은 물론 경우에 따라 스스로에게도 어느 쪽을 택할지 입장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유권자를 말한다.

트럼프가 그동안 각종 인종, 종교, 여성 차별적 발언과 막말, 음담패설 파문 등으로 끊임없이 논란을 빚었다는 점에서 그의 지지자들 역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꺼릴 것이라는 추측인 셈이다.

하지만 폴리티코와 모닝컨설트가 공개한 조사 결과, 여론조사에서 감지되지 않은 숨은 트럼프 지지층이 선거일에 대규모로 출현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원이 직접 질문하는 전화 여론조사와 대인 접촉 없는 온라인 여론조사를 동시에 한 결과,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통계적으로 중요한 수준의 격차는 없었다.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52%로 트럼프(47%)를 5%포인트 앞섰다.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이 51%, 트럼프가 48%로 그 격차가 3%포인트로 줄었다. 폴리티코는 "샤이 트럼프 유권자는 일종의 신기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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