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김중경의 보이차 이야기] 억조풍호(億兆豊號)

남곡 김중경 | 기사입력 2016/04/22 [12:03]

[김중경의 보이차 이야기] 억조풍호(億兆豊號)

남곡 김중경 | 입력 : 2016/04/22 [12:03]

 

 

▲ 남곡 김중경

억조풍호(億兆豊號)

 

아래의 링크는 최근 이 차의 존재에 대해 보도한 언론의 기사입니다.

 

http://www.ajunews.com/view/20130731000591

 

 

 

이 차에 대해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내용을 들어온바 제가 개인적으로 직접 소개 받은 내용은 대개 이러합니다.

 

 

 

1. “200년 전 청나라 조정에 진상했던 차로 황제가 마시는 고귀한 차라서 종이가 아닌 양피로 고급스럽게 포장을 했다. 중국에서 1통을 구해 여러 사람이 나눠 가졌는데, 이 차가 정말 200년 된 차가 맞는지 감정을 좀 해 달라.”

 

 

 

2. “내가 2,000년 된 보이차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에서 2,000년 전의 고분을 도굴하는 과정에 도자기와 함께 출토된 차이다...이하 생략...

 

 

 

2,000년 전이면 대략 삼국지의 배경이 된 漢나라 시대 아닌가요?

 

삼국지에 보면 건흥 3년(225년) 봄 남만(南蠻)의 왕 맹획(孟獲)이 침략전을 일으키자 제갈량이 군사를 이끌고 정벌에 나섭니다. 여기서 유명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지략을 발휘해 남만의 항복을 받아내게 되지만 먼 원정길에 지친 병사들이 두통과 안질 등 풍토병에 시달리게 되는데, 제갈량이 나뭇잎을 삶아 병사들에게 먹이자 풍토병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이 나뭇잎이 차잎으로 밝혀져 오늘날 운남지역에서는 제갈량을 차조(茶祖)로 숭앙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잎을 삶아 먹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도 아직 긴압된 보이차는 없었음을 알 수 있지요.

 

 

 

당나라 함평 4年(서기 863년) 번작(樊綽)이란 사람이 쓴 만서(蠻書)에서 운남 지역의 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오는데, “산차(散茶)로 거두고 찻잎을 따는 방법이나 차를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기록된 내용으로 미루어 당나라 때도 역시 긴압된 보이차는 없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2,000년 전의 보이차가 원차[병차]로 긴압되어 있다니요?

 

2)번 사례자는 제게 차를 판매하고자 할 목적으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만 1)번 사례자는 다른 사람에게 팔기 전 제게 감정을 의뢰해 왔기에 약간의 차를 떼어내서 시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음 전 육안이나 후각을 통해 이미 마실 수 없는 차, 아니 전혀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정체 파악을 위해 우려 보았는데 가죽 썩는 악취가 뒤섞인 쓰레기 국물에 경악을 금할 수 없어 한 번으로 시음을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이차는 흡취성이 강해서 주변의 냄새를 강력하게 흡수해 버립니다. 야크나 양 등의 가죽은 시간이 가면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죽으로 포장한 차는 우려서 마실 수 있는 상태가 못 되는 건 당연하지요. 그리고 몇 차례 찻잎이 담긴 개완에 물을 부어 엽저를 확인해 보니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엽저를 보니 명백히 생차가 아닌 숙차였습니다. 숙차가 개발된 것이 1973년도인데 200년 된 보이차의 원료가 숙차라니요?

 

 

 

여기까지의 설명으로 이 차에 대한 평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수학실력을 갖춘 이가 갑자기 수능 수준의 문제를 풀 수 없듯이, 좋은 차를 드시려면 믿을 수 있는 곳에서 믿을 수 있는 정품을 구입하여 각자의 수준에 맞는 차를 음용하며 점차 그 단계를 올려감이 마땅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