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대학가가 성(性) 문제로 얼룩지고 있다.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잇달아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작년 한 해에만 연세대, 청주교대, 서울교대, 충북대 등에서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심지어 서울교대는 현직 교직원까지 성희롱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작년 9월, 연세대에서 무려 남학생 30여 명이 참여한 단체 카톡방에서 성희롱과 성폭행을 암시하는 내용의 대화가 오고 간 것이 공개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에 비슷한 내용이 교내 대자보를 통해 또 다시 공개됐다.

경희대 의과대학 남학생들은 단톡방에서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환자를 상대할 예비 의료인들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년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남자 간호학과 학생 단체 카톡방 내 성희롱, 간호사가 되지 못하게 막아주세요’라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끊이지 않는 단체 카톡방 성희롱 논란, 지성의 공간이 되어야 할 대학가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가해 학생들에겐 어떤 처벌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교내 단톡방 성희롱 논란’에 대해 다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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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은 성희롱 처벌이 안 된다?

단톡방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화방에 동기나 선배 여학생의 사진을 올리며 ‘면상이 도자기 같다’, ‘재떨이 아닌가’ 등 외모 품평을 일삼았다. 또 특정인을 언급하며 '핥고 싶다', '잘 대준다'는 등의 저급한 성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특정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성관계를 맺은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화 중 언급된 피해자들의 SNS사진을 캡처해 주고 받았으며, 이모티콘의 용도로 사용하기 했다. 

정준영·최종훈을 비롯한 남자 연예인들이 단톡방으로 성희롱 발언을 하고 불법촬영물을 돌려보고 특수 강간 모의까지 한 혐의로 엄중한 처벌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같은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일부 가해 학생들은 농담이었다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농담'에는 피해자가 존재한다. 단순한 농담에 불과해 처벌을 피해간다면, 피해자들이 느낀 성적 수치심은 누가 책임 진단 말인가?

다행히도 우리나라 법상, 단톡방 성희롱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여러 사람이 참여한 채팅방에서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떨어트릴 만한 발언을 한 경우, 모욕죄 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형법상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모욕죄는 친고죄로 피해 학생들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이는 학교는 물론, 회사나 종교 집단, 단체, 동아리, 친교 집단 등 모든 곳에서 해당이 된다.

가해 남학생들은 자신들의 단톡방 내용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증거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화방 참여자들에게 문제의 내용을 다 같이 삭제하자고 회유한 것이다. 그들 스스로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감신문 시사공감] 끊이지 않는 ‘교내 단톡방 성희롱 논란’에 대하여/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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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일삼던 의대생, 의사 되는 데 불이익 없을까

누구도 성희롱을 일삼던 이에게 진료를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 사건의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는다 해도, 이후에 의사가 되는 데엔 아무 지장이 없다. 의료법 위반 혐의가 아닌 이상 형사 처벌을 받아도 결격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8조에 따르면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정신질환자. 다만, 전문의가 의료인으로서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2.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3. 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

4.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않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되지 않은 자

위 내용에 해당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으며, 합격하면 의사로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성범죄 이력이 있는 의료인의 경우 약간의 제한은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범죄자’는 법원이 명령한 기간 동안 법에서 정하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으며, 여기에 의료기관이 해당된다. 현재 법률상 그들은 최대 10년까지 취업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학교 측의 강경한 대응

논란이 거세지자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던 가해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각 대학 교내 학생 자치기구인 `인권침해사건대응위원회`(대응위)들은 가해 학생들에게 공개 사과문 작성, 동아리 회원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교직원 및 학교 측 역시,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 강구에 발벗고 나섰으며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는 등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배움의 꿈을 품고 입학하는 새내기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학교 측의 꼼꼼한 조사 및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 강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톡방 십계명 /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모임 MEKA
단톡방 십계명 /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모임 MEKA

단톡방 십계명

논란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모임 MEKA는 ‘단톡방 십계명’을 공개했다.

0. 음담패설을 사생활로 변명하지 말 것

1. 타인을 따돌리거나 괴롭히지 말 것

2. 소수자의 정체성은 개그 소재가 아님

3. 성폭력 피해자의 신성정보를 캐지 말 것

4. 성폭력 불법 촬영물 시청 및 공유 또한 범죄임을 알 것

5. 차별, 혐오, 폭력을 방관하지 말 것

6. 타인의 외모를 품평하지 말 것

7. 파트너와의 성생활을 떠벌리지 말 것

8. 성 구매 경험과 정보는 자랑거리가 아님

9.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갈 것

10. 우리는 모두 단톡방 성차별, 성폭행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단톡방 십계명을 읽다 보면, 하나같이 너무 당연해서 부연 설명도 필요 없는, 상식 수준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말은 즉,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미투 운동 및 연예인 단톡방 논란 등으로 성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알려져도, 유사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판 또한 날로 강해지고 있다.

단톡방이 존재하는 한 성희롱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가 ‘농담’, ‘우리끼리 한 얘기’ 등의 핑계를 인정·방관하지 않고 문제를 직면한다면, 사회는 점점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가해자에게 엄격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것이 당연한, 그런 사회가 빨리 도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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