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캠핑 그리고 카누잉

[피터신(Peter Shin) 칼럼니스트] '기쿠지로의 여름' 이라는 제목의 기타니 다케시 감독의 동화같은 영화가 있다. 기타니 다케시는 잘 알려진 냉혈적이고 다소 엽기적 캐릭터의 일본 배우 인데 그가 한물간 건달 역할로 나오는 이 영화에선 어른의 눈으로 보는 기쿠지로란 아이가 그려지고 그 얼간이 같은 건달 어른은 어떻게든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추려 자신을 낮추며 비워 나간다. 엊그제 감상한 또 다른 일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은 요즘 일본을 대표하는 신세대 감독 고레이다 히로가츠 가 그려가는 아이들의 생각과 모습들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눈높이가 어른들 생각처럼 그렇게 낮거나 미성숙적이지 않다. 아이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보다 철없고 무책임 하며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만 상영된 '아들과 함께 한 여름 2016' 이라는 나만의 도큐멘타리를 통해 난 내 아들과 나 스스로에게 뭘 남기고 싶었을까.. 벌써 스물한살이나 되어버린 아들이지만, 난 녀석의 어린 시절로 눈 높이를 낮추려고 했을 것이고, 아빠 보다 더 커지고 힘이 세지고 있는 아들 녀석은 벌써 아빠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여유 있는 성인의 입장이었던것 같다.

일년만의 아들의 귀환은 우리 부부를 들뜨게 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는 녀석이 지옥 훈련과 같은 이곳 캐나다 대학의 일년을 무사히 잘 끝낸 안도감과 반가움도 있었지만 부모 입장에서 다 큰 자식이 찾아오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 아이와의 카누잉과 캠핑, 그리고 호수 낚시를 위해 관련 장비와 기구들을 구입해 놓고 강가에서 실전 낚시 준비까지 잘 마친 상태에서 녀석이 오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토론토에서 출발하는 아이가 공항에 늦는 바람이 공항에서 밤새 다음날 아침까지 다음 비행기를 기다렸고, 우리 마을에서 세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곳 리자이나(Regina) 공항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우리는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 묶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건 한두번씩은 비행기를 꼭 놓치곤 하는 우리 가족의 내력은 어쩔수 없었다.
 
캠핑 당일 아침 우리 부자는 서둘러 카누와 카약을 차 지붕에 얹었다. 카약도 무겁지만 삼인승 카누는 장정 두사람이 차 지붕까지 올리기가 만만치 않았다. 아들이 오기 일주일 전쯤 미리 답사를 해 놓고 모든 예약을 마쳤던 이곳 주립 공원에서 가장 한적한 캠프 사이트에 장비들을 내려 놓고 텐트를 쳤고 주변에서 울부짖는 늑대들의 합창이 반가웠다. 이곳 주립 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캠프 사이트가 있는데 수백명을 받아 들일수 있는 대형 캠프장에는 주로 버스 크기의 캠핑카 혹은 캠프 트레일러들이 들어차 있어 텐트와 침낭등을 이용한 고즈넉한 고전적 캠핑을 즐기기에는 적절하지가 않다. 이 호젓하도고 클래식하며 나무들로 둘러쌓인 완벽한 캠프 사이트에서의 삼시세끼는 통나무 장작을 패서 불을 지펴 해먹어야 되는데, 아들은 도끼로 장작 뽀개기에 심취하여 삼일밤낮을 틈만 나면 도끼질을 해댔다. 대학 시절 오대산이나 지리산등지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하던 시절, 겨울 아침에 텐트에서 밖으로 얼굴을 내미면 그 깐깐한 겨울의 냉기가 확 느껴지곤 했고 밤에 해먹었던 물 누릉지는 꽁꽁 얼어있곤 했었다. 아마 당시 부터 나중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아들과 꼭 캠핑을 다닐것이라는 마음 속 다짐을 한 것 같다. 이제 그 꿈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일인승 카약(kayak)은 이미 아들과 나, 그리고 아내와 딸까지 몇년간 즐겨 오고 있었지만, 삼인승 카누와 텐트, 침낭등 다른 모든 캠핑 도구들은 이제 막 그 쓰임새를 테스트 받는 중이다. 큰 도끼와 작은 도끼 역시.. 대학을 다니며 토론토에 혼자 아파트에 사는 녀석은 일년 새 너무 말라 있었다. 밥해 먹을 시간조차 내기 힘들고 거의 매일 밤을 세워가며 과목별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강행군의 학사 일정에 녀석은 피골이 상접해 있는 몰골이라 우리 부부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의 이번 방문을 준비하며 주로 고단백 스테이크들과 녀석이 좋아하는 튜나와 연어 사시미로 준비는 잘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말라서 왔는지..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 볼수록 마음이 아렸다.

카누 낚시에서 돌아오자 마자 아들아이는 일인승 카약을 끌고 다시 호수로 나갔고 난 모닥불에 옥수수를 제대로 구워 먹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옥수수는 정말 맛있다. 특히 sweet corn 은 달면서 쥬이시(juicy)해서 먹으면서 계속 감탄을 하게 된다. 어이구 맛있어.. 근데 이 맛있는 옥수수를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따와서 파는 농부 아줌마에게 사와 모닥불에 구웠으니 얼마나 더 맛있었겠는가.. ㅎ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지 어언 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 토론토 공대 졸업을 앞둔 딸아이는 세계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서 엔지니어 생활을 시작하면서 벌써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가고, 아들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해 학기를 마친 후 즐겁게 아빠와 놀고 있고, 아내는 그런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고.. 열심히 살아온 보람이 있구나, 정말 감사하구나.. 라는 생각 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저 행복한 멍 때리기 라고나 할까.. 얼굴에 부드럽게 열기를 전달하는 장작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저 계속 멍 때렸다..

아들과의 캠핑 첫날, 어머니 자연은 화창하기 그지없는 하늘과 적당한 산들 바람, 그리고 밤하늘의 끝없는 은하수와 별똥별들을 선사하며 다정히 우리를 환영했는데 다음날은 그녀의 전혀 다른 모습을 잠시 우리에게 선보이며 그 강력함과 변화무쌍함을 실감시켰다.

둘쨋날 역시 우린 아침부터 카누를 타고 호수를 돌며 낚시를 했고 오후 두세시쯤 캠프 사이트로 돌아와 장작을 패며 식사 준비를 하는데 하늘 저편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 오기 시작했고 이내 사방이 컴컴해져 갔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늘어져 있던 각종 도구들과 음식 재료들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장대비가 쏟아 지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후두둑 소리는 투다닥 소리로 바꼈고 그것은 캐나다에서 익히 들어왔던 우박 쏟아지는 소리였다. 갑작스런 폭우에 아들과 아내는 텐트로 들어가고 난 차량 안으로 피신했는데 우박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차 유리창이 깨질것을 염려한 나는 나무 밑으로 차를 몰아 직접적 피해를 줄이려 했다. 캠프 사이트는 순식간에 거센 폭우와 우박소리, 그리고 바로 머리위에서 들리는 꽈광거리는 천둥소리에 묻혔고 우리는 그저 조용히 숨죽이며 이 광경을 바라다볼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난리에 당황하긴 했지만 차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이러한 광경은 정말 대단하다, 아름답다, 장쾌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박이 차량의 본닛과 천장, 그리고 차창에 부딪는 소리는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비록 큰 전나무 밑으로 숨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우박 때문에 차량 유리가 깨지는 일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이 굉장한 자연 현상을 맞이할수 밖에 없었다.

3박 4일, 아비와 아들의 둘만의 시간에서 우린 별로 말이 없었다. 서로에게 요구되는 만큼의 일들을 서로가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고 필요한 만큼의 대화만 오갔다. 서로간의 믿음과 애정이 두텁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우린 가벼운 일상적 대화만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아들과 함께 했던 자연은 주로 혼자만 즐겨 왔던 그것과는 너무도 많이 달랐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었으며 아름다웠다. 천지에 가득찬 검은 구름과 천둥 소리, 그리고 가득한 폭우와 우박, 그리고 한밤중 텐트가 날아가라 불어댔던 검은 탬페스트는 장중하고 근엄한 서사곡이었고 세상의 모든 디테일들을 일깨우며 우리 부자를 흥분하게 했던 한낮의 태양와 소나기, 그리고 고요히 내려 앉던 노을은 천상의 서사시 였다. 찬란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기도 했던 어머니 자연은 우리 부자를 더욱 결속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아들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졌던 거대한 잠자리를 바라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빨간 머리의 튼튼한 부리와 다리를 가진 딱다구리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 바로 앞 나무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나무를 쪼는 모습을 바라 보기도 하며 우리 부자는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바라보며 낄낄 거리거나 모닥불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끼며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찬 맥주를 나눠 마실 뿐이었다.
 
아들과 아비는 나흘 내내 장작불을 꺼뜨리지 않고 피워냈다. 텐트로 잠자러 들어가기전 아들은 가능한 많이 통나무를 패어 장작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던 아비는 하얀 재가 내리며 밤새 거의 다 타버린 모닥불을 아들이 지난 밤 솜씨 좋게 패놓은 적당한 크기의 장작으로 다시 불을 활활 살리고 나서 아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우박에 껍질이 깨져버린 달걀들을 삶기도 하고, 기름이 쪽 빠지도록 베이컨을 굽기도 하고, 키다리 자작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 길을 다녀 오기도 하며 아비는 아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느긋한 행복감과 함께..
 
아이들과 어렸을적부터 많은 시간을 보내며 바람직한 아빠의 역활에 충실했던 이들은 모른다. 나 같이 소위 나쁜 아빠였던 이들에게 이 같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애비로써의 자기 보상적, 자위적 만족일지라도 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never too late.. better late than never.. 아니.. 설사 너무 늦었더라도 내 앞에 지금 아들이 있다. 오롯이 아빠와 함께하며 말없이 즐거워 하는 내 자식이 있는데 어찌 이리 호들갑스럽게 즐겁지 않을수 있을까..

아들이 혼자 배를 타러 나간 지금, 홀로 캠프 사이트의 모닥불을 지피며 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역시 감사함이다. 한때 방황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곧게 자라준 아들 녀석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자식이지만 동시대의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인간애,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아빠를 친구처럼, 동료처럼 대하며 수많은 은하수와 별들 아래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나누는 아들이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것이다.

토론토로 돌아가기 위한 수속을 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 보는것이 이번엔 크게 아쉽지 않았다. 아마도 아들과의 이번 캠핑에서 말없이 다져진 부자간의 유대감이 더욱 든든했기에.. 
 
사랑하는 아들아 안녕.. 내년에 다시 볼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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