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와 역사, 일본과의 관계 그리고 '왕벚나무'에 대해

[공감신문] 유안나 기자=겨울엔 하얀 눈이 거리를 덮었다면, 봄을 알리는 벚꽃시즌에는 여린 벚꽃잎들이 거리 곳곳을 누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눈’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짧고,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들은 벚꽃 개화 시기가 시험 기간과 겹쳐 더욱 아쉽다.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고 불릴 정도니, 불편한(?) 마음을 갖고 봄을 즐길 중고생과 대학생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겠다. (참고로, 공식 벚꽃 꽃말은 ‘순결·절세미인’이다) 

개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번 봄에도 어김없이 ‘벚꽃축제’는 우리를 설레게 할 예정이다. 분명 우리 주변에는 벚꽃 개화시기를 이미 빠삭하게 알고, 여행 계획을 세우신 분들이 더러 계실 테다. 

한강과 놀이공원, 남산 등과 함께 벚꽃풍경을 자랑할 서울을 비롯해 인천, 대구, 부산, 제주도 등지에 추억을 쌓고 싶은 남녀노소 연령대 불문 많은 이들이 방문을 앞두고 있다. 따뜻한 봄기운에 주변 지인들은 벌써부터 벚꽃축제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보니, 이번 벚꽃축제에도 관광객들로 가득 찰 듯 하다. 

세계최대 벚꽃축제로 꼽히는 진해군항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을 상상해보시라. 벚꽃잎을 사이에 두고 일렬로 줄 지어진 벚나무, 또는 산·숲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벚나무, 규칙 없이 세워져 자연스러운 벚나무 등을 다양한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다. 

낮과 밤 상관없이 빛에 따라 색다른 풍경을 보이는 벚꽃, 그리고 이 벚꽃잎을 활짝 피어내는 데는 ‘벚나무’가 있다. 

다가오는 봄, 오늘 교양공감에서는 화려한 꽃잎 사이에 가려진 ‘벚나무’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너무나도 익숙한 식물이지만, 또 몰랐을 그런 이야기 말이다. 

■ 역사 속 벚나무 

벚나무는 역사적인 배경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팔만대장경’이 있다. 팔만대장경은 11세기 초 고려 때 몽골의 침입을 받자 부처의 힘을 빌려 북방 적들의 공격을 막고자, 불경을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다. 판수가 8만여 개에 8만 4000개의 말씀이 실려 있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팔만대장경이 벚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는지?

팔만대장경의 규모는 280톤 가랑이며, 글씨를 새기는 데 동원된 연인원만 해도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재료와 기술의 우수성이 꼽힌다. 그리고 이 목재로 벚나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이 벚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구체적으로 산벚나무가 65%, 돌배나무가 15% 이외 박달나무, 거제수나무, 단풍, 후박나무 등이 조금씩 섞여 있다. 산벚나무는 계곡이나 언덕배기 등에서 잘 자라는 등 장소·재질이 목판인쇄의 재료로 알맞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팔만대장경의 보존성을 단정 지을 수는 없는 터. 여기에  벚나무를 3년간 바닷물에 담그며, 대패질과 옻칠, 구리판 장식 등의 기술이 함께 어우러져 지금의 팔만대장경이 된 것이다. 

산벚나무를 비롯한 벚나무들은 다른 나무와 달리 껍질 표면이 거칠지 않고 매끄럽다. 또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고, 잘 썩지 않아 가공하기가 쉽다. 

뿐만 아니라 벚나무는 탄력이 있으며 견고하고 치밀해 썰매와 낫자루 등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올벚나무의 껍질은 다른 벚나무보다도 더 매끄러워 활에 감으면 손이 아프지 않아 활, 화살을 만드는 데 재료로 쓰였다. 

■ 벚꽃의 상징은 일본일까? 

벚꽃이 휘날리는 풍경을 상상하면 일본을 떠올리는 분들 꽤 계실 터다.

일본의 2대 교통중심지 오사카와 함께 교토는 이미 일본의 인기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고, 매년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또 벚꽃을 감상하면서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는 '하나미' 행사가 열리는 등 어느새 일본과 벚꽃 풍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아름다운 벚꽃 풍경으로, 매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Expedia Travel blog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벚나무는 일본의 상징이며 대표하는 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식적으로는 아니다.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애정하는 꽃일 뿐, 국화(國花)는 아니다. 

일본은 헌법을 보면 공식적인 국화가 없다. 대신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菊花)가 있다. 즉 법적으로 정해진 국화는 없지만, 일본의 상징으로서 벚꽃과 국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그런데 최근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자생지를 두고 있다는 최종적인 결과가 나왔다. 100년 가까이 이 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둘러싼 논란의 배경을 함께 살펴보자.

■ ‘왕벚나무’ 기원 논쟁, 종지부 찍다

한국과 일본의 벚나무는 비슷하지만, ‘왕벚나무’는 별개의 기원을 지닌 완전히 다른 종임이 밝혀졌다. 왕벚나무 기원을 두고 시작된 쟁점은 19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다. 

자생 왕벚나무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08년 4월 15일이다. 당시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발견, 독일 베를린 대학 코헤네 박사에게 보내면서 제주도가 재싱지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일본은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라며, 일본의 벚나무가 제주도로 옮겨왔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일본 교토대학의 고이즈미 박사는 1932년 제주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후 일본 학자들은 과거 왕벚나무 자생지가 일본 내에도 있었지만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159호 왕벚나무

이후 마쓰마라 진조 도쿄대 식물학과 교수는 왕벚나무를 일본식 이름인 '소메이요시노'로 식물학회지에 등록했고,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들은 소메이요시노가 한국산 벚나무와 접목 과정을 거쳐 전국 곳곳에 심어진 것으로 보며, 이 과정에서 벚꽃의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알려졌다고 추정한다. 

이어 1962년 박만규 식물학자는 실제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연구자로서는 처음이었으며 그는 "벚꽃은 우리 꽃-한라산이 원산지"라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한일 양측의 왕벚나무 원산지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긴 쟁점 속에 결국 최근 국내 연구진은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는 일본 왕벚나무와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해 9월 산림청 국립 수목원은 세계 처음으로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의 전체 유전체를 완전 해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완전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보통 벚꽃잎보다 다소 늦게 피는 겹벚나무 꽃잎은 분홍빛을 가득 담는다.

과학적인 근거로 살펴보면, 제주도 왕벚나무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해 생성된 1세대(F1) 자연 잡종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즉 유전체 비교 분석 결과, 제주도 왕벚나무는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일본 왕벚나무와 뚜렷하게 구분됐고, 서로 다른 식물임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제주에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왕벚나무는 그대로 '왕벚나무'로, 우리나라 공원·가로수 등 널리 심은 일본산 벚나무는 일본 표기법을 따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왕벚나무의 ‘고향’으로 밝혀진 제주도에서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숲속에서는 ‘산벚나무’, 5월까지는 분홍빛꽃잎의 ‘겹벚나무’ 등을 조만간 즐길 수 있다. 

완전한 흰색도, 분홍색도 아닌 벚꽃잎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그만큼 아름답기에 우리는 매번 봄을 기다리는 지도 모르겠다. 이번 봄에는 오늘 알아본 벚나무 이야기를 떠올리며, 황홀경에 빠트릴 벚꽃 풍경, 벚나무와 함께 색다른 추억 남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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