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조병수칼럼] 아이가 미국에서 유치원(Kindergarten)에 다닐 때였다. 아내가 아이의 등교준비를 하며 부엌에 있는데, 갑자기 집 밖에서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것이 보이고 연이어 현관 벨이 울렸다.

놀라서 문을 열어보니, 경찰관 3명이 허리춤의 권총 위에 손을 얹고 일촉즉발의 자세로 경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 뒤로는 여러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까지 포진해서 불빛을 번쩍이고 있으니, 기가 찰노릇이었다. 

경찰관이 아내에게 "당신의 아이가 911에 신고를 했다. 무슨 일이냐? 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위층에 있다."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있던 아이가 불려 내려오자, 경찰관은 즉각 아이의 윗도리를 벗겨보고 손발도 내밀게 해서 무슨 상처가 없는지부터 면밀히 살폈다. 

아이 몸에 학대의 흔적이나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경찰이, 그제서야 경계를 늦추며 아이에게 물었다. 

"왜 911에 신고를 했느냐?" 

"어제 학교에서 배웠는데, 911에 신고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준다고 하길래 한번 걸어보았다."

"요즘 학교에서 911에 전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시즌이라서 종종 이런 일이 있다. 이번에는 허위신고에 대한 벌금은 면제하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앞으로는 장난전화를 하지 마라”는 당부도 남겼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경찰이 들이닥치며 어디 영화에서나 볼수 있을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부터 자지러지듯이 놀란 아내가, 아이로부터 들은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 전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화재나 무슨 일이 생기면 911로 전화하면 다 도와준다'고 했고, 빨간색 전화기로 전화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래서 아침에 집에서 다이얼을 한번 돌려보았는데, 갑자기 사람이 나와서 말을 하길래 겁이나서 그냥 끊어버렸다."

퇴근 후에, 그때까지도 놀란 마음이 가시지 않은 아내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자칫하면 큰 봉변을 당할 뻔한 가족들이 별일 없었음에 안도했다. 동시에, 유치원에 갈 정도의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사회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있음이 놀라웠다.

그리고 아이가 말도 하지 않고 끊어버린 그 전화번호 하나로, 집까지 찾아 신속하게 대응 팀을 보내고 확인하는 공권력의 비상출동시스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유아원 졸업식>

그로부터 20여년이란 세월의 간극(間隙)이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갖가지 어린이 학대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간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지난해 들어서야 처음으로 ‘미취학·장기결석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 같은 얘기들이 오르내렸다.

지난 1월 중순에는, ‘김해의 한 초등학생이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112신고를 했을 때, “엄마한테 연락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경찰이 출동하지조차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일이 있은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식은 없다. 누구를 문책하고 어쩌고가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개선한다’는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또다시 그냥 ‘일어났던 일’, 수많은 다른 일들 중의 하나로 파묻혀 가는 듯하다.

앞서 이야기한 외국에서의 체험과 사례가 우리나라에 꼭 맞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항상,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그런 사회적 체계와 자세만큼은 우리가 시급히 본받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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