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단면, 시는 치유하는 언어이자 마음의 서글픈 언어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시간이란? 균질한 것이다. 가끔 시간을 구간별로 구획하여 하루 24번의 선을 긋고 일년 365번의 선을 긋는다. 나누고 또 나눠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의미 추구로 존재하는 까닭이다.

가끔 새해가 되면 새 다이어리를 사고 새로운 낙서장을 꾸미고 새로운 펜까지 구매하여 새롭게 채울 것들에 대한 환희를 느끼곤 한다. 가끔 있는 모임에 가면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고 안부를 묻고 그 안부 때문에 울다가 웃다가 한다. 이 또한 시간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시간이 주는 엑스터시에 웃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 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간이기에 이질적으로 섞이는 시간 그 시간이 가고 있다.

<사진출처: 시에 대한 고찰>

얼마 전 한가롭게 달리던 차 안 라디오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는 앙케이트가 있었다. 그 중 단연 1위는 현금, 2위는 상품권이었다. 더불어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이 뭐냐는 질문에 1위가 책이었다. 순간 “그래? 책을 가장 받기 싫은 건가”라는 혼자말을 했다.

갑자기 스스로에게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 끝에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긴 장편 소설을 밤새워 읽다가 마저 읽지 못하면 다음날 또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다 싶었다. 영화 한편을 보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는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 생각.

얼마전 너무도 좋아하는 교수님의 인문학 강의를 듣다가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입문하는 작가의 작은 시집 한권에 대해서 그 시집이 요즘 같은 시기에 베스트셀러란다. 대학 선배가 췌장암으로 투병중인데 그 선배는 하루종일 병상에서 시집만 읽는다고 한다. 시집을 읽는 것이 항암치료를 하는 것 보다 훨씬더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프거나 힘이 들때 어릴적 놀던 곳을 찾아가 보고 그 곳에서 그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하곤 한다. 유년시절 상상의 나래를 펴던 곳. 친구들과 조건 없는 웃음에 헤너미를 보곤 했던 곳. 어떠한 이익 추구도 용납되지 않았던 곳이다.

 그 곳은 시간을 늘어지게 하던 곳이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아니 많은 이익을 가져 가면서 세상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늘 뺏아가곤 한다. 그렇게 스스로가 가난해지고 배고파 지면 비로소 조건 없는 공간인 시의 공간으로 돌아가곤 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스스로의 내면의 착한 그 세계로 말이다.

80년대 격변기를 살아오면서 그 때는 한 권의 시집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그 시집을 읽으며 혼란한 시대에 울분을 토하고 그 시는 노래가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과 육체를 다스렸다. 그렇게 불려졌다. 시가 바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는 아픈 사람의 상처를 알게 했고 세상과 자신이 연결되는 고리가 되어 주었다.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내재된 설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저너머의 세계로 전해지길 바라며 우리는 노래를 한다. 시는 인간의 결핍과 패배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아픈 글자이자 노래이다.

시가 갖는 운율 속에는 거대한 리듬이 회전하고 있다.
읽혀지는 한줄 한줄의 운율이 리듬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다시금 자신만의 노래로 불려진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혼자만의 노래가 되어 퍼진다. 

<사진출처: 영화 '동주'>

사람들은 그 불려진 시를 통해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귓가에 치유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곤 한다.
시가 울면 나도 울고 시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내 몸이 들썩거리는 시와 함께 할때 내 설움도 고양된다.

어릴적 어머니가 생각나는 노래, 어릴적 친구들이 생각 노래 그렇게 많은 것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바로 시다.

가슴이 뚫린 듯한 세밑, 시간은 속절없이 그리고 허망하게 그것도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사람들이 힘들다고 말하는 요즘 씁쓸한 희망이라도 떠올리며 안고 있고 싶다. 
짧은 글귀의 한권이 시집, 윤동주의 각별한 시 ‘서시’ 한 편은 어떨까. 식다만 미지근한 커피 한잔에 시 한 떨기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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