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가’가 아닌, ‘왜 인간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독자여러분은-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살기위해 했던 노력이 뭐였다고 생각하시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기 위해, 사회의 보호를 받고 또 책임을 지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해내야 했던 ‘훈련’말이다.

우리는 길들여져야 했다. 갓난아기를 떠올려보자. 갓난아기가 가지는 세계관은 매우 편협하다. 그러기에 아기가 마구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성인인 우리는 이해해줄 수 있다. 이제 막, 태어났기에. 그리고 우리는 아기가 장차 사회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응원한다. 매우 기특하다는 감정도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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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회에 어울리기 위하여 했던 첫 번째 노력은, 바로 ‘배변 훈련’이다. 아기는 아무 곳- 아무 때- 아무 상황- 누구 앞에서나 마음대로 용변을 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자세로 용변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금에와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당시엔 무지 힘들었을 것이다. 반려견을 키워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것은 함께 살기 위해 ‘길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하다는 성선설, 그 반대인 성악설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 본성에 매우 동물적인 모습이 존재하더라는 것이 중요하다.

사춘기 이후, 나는 누군가와 아예 치고 박고 싸운 적이 없다. 엄청 화가난 적도 많았는데, 일단 내가 질 것 같았나보다. 하지만 쌓인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 나는 나에게 그 분노를 풀어냈다. 못 이길 정도로 술을 마시거나,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운동을 하는 등- 나 스스로를 벌주었다.

나는 날 이겨낼 수가 없던 거다. 나약한 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여기서 나약하다는 건, 단지 어떤 일에 대한 ‘의지’나 ‘용기’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용기들은 대체적으로 말도 안 되는 무모함을 수반할 때도 있다. 가미가제 일본군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물론 여기엔 이성을 넘어서는 용기를 불어넣는- 화학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어쨌든....

영화<시계태엽 오렌지>중에서

영화<시계태엽 오렌지>를 보면 화학적 방법으로 범죄 행동을 억압하는 ‘치료’장면이 나온다. 지금으로 치자면 화학적 거세 같은 거다. 주인공 알렉스는 10대의 나이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며, 지금 말하는 ‘싸이코패스’들처럼 일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나도 그의 악행 장면에서 아예 고개를 돌린 적도 많았다. 그런데 1인칭 주인공 시점인 이 영화나, 원작 소설에서 그가 풀어내는 ‘자기 이야기’들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생각이 복잡해지더라. 그가 치료 받는 장면에서 나온 소설의 구절이다.

브래넘 박사가 아주 거룩한 목소리로 말했지.

(중략)“...지금 너한테 일어나는 일은, 악의 힘에 따르는 행동이나 파괴의 원리를 실행하려고 고려중인 정상적이고 건강한 인간의 신체에 당연히 일어나야 할 것이란다. 넌 정상이 되는 중이고, 또 건강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지.”

“전 그런 걸 원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선생님들이 하고 있는 일은 저를 아주 아프게 만들 뿐이에요.”

“지금도 아프니?” 얼굴에 친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놈이 묻더군.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고 친구와 조용히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몸이 나아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니?”

확실히 알렉스는 어떤 면에서 공감 능력이 우리와 다르고 어떤 식으로는 훈련이 덜 된 사람으로 보인다. 우린 누구나 ‘성적 취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 행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쾌해할 거라 느낀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사회성이다. 마치 우리가 아무데서나 배변하고 싶던 걸 참아낸 것처럼!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훈련되었지만 이러한 이기적인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거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강력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것을 훔치던 때와 다르다. 먹을 것이 있어도, 남의 것을 탐낸다. 인류의 전쟁사를 보면, 먹을 게 없어서 남의 땅을 침략한 것만 있지는 않다. 있든 없든, 싸운다. 더 많이 원한다, 그게 인간들이다.

범죄심리학에 대한 강의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서, ‘왜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가’가 아니라, ‘왜 인간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가’에 대해 연구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에 정말 많이 공감했다.

인간이 악해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영화<마더>에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어머니는, 악하기만한 사람일까... 그녀의 범행은 매우 잔혹하고 나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죄책감... 그리고 이기적인 모성애는 좀 이해할 수 있다.

영화<마더>중에서

인간을 ‘악하다’ ‘선하다’는 틀로 이해할 게 아니라, 인간 자체가 매우 나약하다-는 걸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들은 수많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지는 희망이고, 또 그렇게 생존해왔다. 물론 발전은- 좋은 쪽으로도, 또 나쁜 쪽으로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아니, 아닌 지 오래되었다. 범죄를 연구하는 다각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사회에서 사회의 구성원을 길들이는 것이며, ‘인간적인 사회의 구성원’을 양성하는 건 우리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 이것을 잘 해내는 것이야말로, 정말 배타적이고도 상당히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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