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모두에게 전염된다

▲ 정미경 의원(새누리당, 경기 수원을)

  검사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여직원 인사 이동으로 여직원이 바뀌었다. 그리고 며칠 후 계장들이 내게 여직원을 다시 교체해야겠다고 의견을 모아왔다. 이유를 들어보니 전에 있던 여직원은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사무실 정리도 하고 차도 한 잔씩 각 책상 위에 올려놨는데, 새 여직원은 사무실 정리는커녕 커피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계장들이 새 여직원을 불러 매일 아침 커피를 타 달라고 말했더니, 업무 규정에 있느니 없느니 하며 따져서 서로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거친 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이런 일로 검사실 분위기가 엉망이 되면 일 또한 제대로 될 리 없다. 나는 일단 여직원의 말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직원은 업무 규정에 나와 있지도 않은 일은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 또한 커피 타는 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자 직원들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차(혹은 커피)’ 심부름에 반발심리가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그 일이 자신과 자기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해치는 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러나 계장들의 입장도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여직원의 편을 들 수는 없었다. 여직원이 차를 타는 일이 꼭 해야만 하는 여직원의 일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미 상호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잘잘못을 따진다면 양쪽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것이다.
  나는 여직원에게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여직원은 다른 검사실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여직원에게 앞으로 차를 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아울러 검사실의 수사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녀는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계장들에게는 앞으로 차를 마시고 싶으면 매점에서 주문해서 마시고 비용은 우리 방 실비로 처리하라고 했다. 표면적으로는 해결된 듯했지만 여직원을 바꾸지 않은 것에 대해 계장들은 내심 불만이 컸다.
  나의 일, 너의 일을 구분짓는 것은 팀플레이 원칙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차를 타는 일이 누구의 일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커피를 탈 수 있다.
  나는 일단 내가 차를 마시고 싶을 때, 매점에 시키지 않고 직접 커피나 녹차를 탔다. 그리고 계장들에게도 여직원에게도 한 잔씩 대접했다. 처음에는 그들도 당황해했지만, 점차 고맙다는 말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계장들도 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직원에게도 차를 타주었다.
  어느 날 나와 계장이 힘들게 조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여직원이 말없이 차를 타서 나와 계장들 책상 위에 놓고, 조사를 받고 있던 피의자에게도 주었다. 순간, 나와 계장들의 눈이 마주쳤고, 서로 미소를 날려 보냈다. 우리는 훌륭한 팀으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구성원들 간에 믿음이 없다면, 배려하지 않는다면 일을 잘 해낼 수 있겠는가.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이미 상처를 받은 채 검사실로 들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 대해줄 수 있을까. 상처받은 자에게 또 상처를 주는 검사나 계장, 여직원이 되지 않을까.
  리더의 성공이란 리더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 스스로 행복하다면 모두에게 행복은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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