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새 정부의 역사적인 출범을 맞아 적폐의 청산 등 개혁 드라이브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시국이다. 개혁의 성공을 추진하는 새 정권의 의욕과 자신감이 넘치는 가운데 국민 통합과 인사의 탕평을 크게 부르짖는다. 자화자찬 격의 용비어천가도 어느 시기까지는 요란한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개혁의 동력은 결국 국민 다수의 확고한 지지와 폭넓은 응원에서 준비되고 나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개혁되어야 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정치, 검찰, 재벌, 국회, 공직문화 등에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광화문과 전국적인 촛불시위에서도 충분히 표출되었다. 개혁의 과제는 많으나 과연 새로운 정부가 착실한 준비를 했거나 충분한 역량을 가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탄핵 사태 이후 오늘의 대통령 선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개국을 했거나 전쟁을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짧은 시기에 천지개벽을 하거나, 너무 많은 것을 순간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다. 또한 개혁에 대한 너무 높은 요구 수준과 의욕의 과잉은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부에서는 전광석화, 속전속결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으나 일각에서는 급하게 먹는 떡이 체한다고 완급이 필요함을 우려한다. 칼자루를 진 집권세력의 냉정함과 겸허함이 더욱 필요한 타이밍이다.

정의와 진리를 독점하는 정치 엘리트의 오만함은 결국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삼일천하로 끝낸 1884년 구한 말 갑신정변의 실패는 압도적인 외세의 침탈과 의존도 큰 원인이었지만 일부 개화파 엘리트 제외한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것도 주요한 한계였다. 정권의 완장을 찬 친위대나 홍위병들이 발호한다면 개혁은 역부족이 되어 끝내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참으로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용비어천가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누구나 바라는 개혁은 우선 개혁의 주체와 개혁의 대상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기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편 가르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갈등과 분열의 소지가 있다. 결국 개혁의 칼날은 누군가에게로 향해야 한다. 

시스템보다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편이냐, 다른 편이냐를 묻고 나는 진짜 너는 가짜를 따지고, 너는 까마귀 나는 백로 등 아군과 적군, 결과적으로 피아의 명쾌한 이분법에 휘말리는 진통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친노, 친문, 반문, 비문, 진보와 보수의 해묵은 대결의 재연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것은 우리 정치의 고질화된 버릇이다.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서산대사(1520~1804)도 《선가귀감》에서 우리를 깨우친다. “이치는 단박에 깨칠 수 있다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셔지지 않는다.” 우리 정치의 현실과 오랜 과거를 보면, 이런 패거리들의 해악과 위선이 전쟁보다 심하지 않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특히 새 정부나 집권당 주변에는 노심초사 때를 기다린 뜻이 깊은 인물 외에도 어용 지식인, 어용 교수라는 평가를 받는 경박한 인물들이 발탁을 기대하며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이익과 권세, 지원을 언감생심 바라는 권력의 양지를 찾는 해바라기와 같은 세력들도 대거 줄을 서서 아연 활기를 띠는 조짐이다. 이런 현상은 소위 적폐라는 과거와 별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이런저런 연줄로 새 정부에서 논공행상과 벼락출세를 기대하는 것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라고 다르지 않다. 개혁의 대상이, 오히려 개혁의 주체로 부상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시경》 <소아>에서는 “저마다 제가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겠는가.”라고 회의하고, 박학다식했던 실학자 이덕무(1741~1793) 선생은 <우음>에서 “세간의 옳음과 그름, 까마귀의 암수처럼 분간이 어렵네.”라고 자탄했다.

이덕무의 글씨. /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의 사례로 과거의 경우를 참고하면, 어느 시대나 만연했던 붕당은 뜻을 같이 하는 일군의 집단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무리로도 해석된다. 붕당을 결성해 조정을 어지럽히는 경우도 많았고, 일당집권을 위해 사활을 건 일진일퇴의 공방도 자주 벌였다.

계몽군주 정조(1752~1800)는 “이익이나 쫓아다니고 권세 있는 자에게 달라붙어 조변석개하는 소인들은 당黨라고 할 가치도 없다”고 일갈하고. “위로 과인의 잘못과 시정의 득실로부터 아래로 백성의 고락과 전대 제왕의 치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말함으로써 위아래가 서로 보탬이 되게 하고자 함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주자(1130~1200)는 군자와 소인의 명확한 구별을 주장한 유명한 <인군위당설>에서 “붕당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지 않는 풍조야말로 망국의 길이니 그것을 깨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붕당에 적극적으로 들어야 하며, 나아가 장차 군주를 붕당으로 이끄는 것도 꺼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송팔대가의 문장가 구양수(1007~1072)는 <붕당론>에서 “군자는 군자와 더불어 도道를 함께 하고, 붕朋을 이루며, 소인은 소인끼리 이利를 같이 하여 붕朋을 이루니...군주가 소인의 위붕僞朋을 물리치고 군자의 진붕眞朋을 쓴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 질 것이다.” 여기서 소인이나 위붕은 이득이나 탐하는 세상의 속물들을 말하고 군자나 진붕은 덕량이 크고 세간의 사사로운 이익을 초월해 공익과 정의의 큰길을 걷는 인물들을 일컫는다.
율곡(1536~1584)은 <논붕당소>에서 “붕당이 문제가 아니라 군자와 소인의 분별이 문제이고, 지금은 사림士林이 바로 군자당”이라고 옹호했다. 이이는 분열한 사림 모두에 시비是非, 군자·소인이 있을 수 있고, 조정과 보합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른바 <조제론調劑論>이다.

왕안석.

개혁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혁주체의 사고방식이나 인간성이 문제라고 지적된다. 따라서 정치도 이제는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에게 인격을 팔거나 인품으로 감동을 주어야 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면 과연 과언이 될 것인가. 

개혁의 성공과 실패가 정치인의 인격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크게 그른 것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도 정치의 명분과 의리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에 집약되어 있다고 했다. 정치에서나 가정에서나 합당한 인격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급진적 개혁을 무리하게 시도했던 송나라 왕안석(1021~1086)의 신법당이 실패로 끝난 것은 개혁주체들의 인간성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왕안석은 재주는 많았으나 소인이었고(조선 세종의 평가), 원칙에 치우친 이상주의자(북송 신종의 인물평)로 대화와 타협을 아예 무시하고 공안정국까지 조성해 배척과 숙청을 일삼았다는 등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의 포용력 없는 독불장군 스타일, 고집불통의 면모에 실망과 염증을 느낀 사마광을 비롯한 당대의 인재들인 한기, 구양수, 소동파 등도 정적政敵이 되어 그를 간신이라고 극언하며 모두 등을 돌렸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결국 신법당과 구법당의 심한 당파싸움에 따른 분열과 탄압은 국력을 약화시키고, 당시 북방의 강국으로 부상한 금나라의 침공을 유발해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는다.

정암 조광조(1482~1519) / 사진출처=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목도된다. 퇴도(1501~1570) 선생은 실패한 개혁정치가 정암(1482~1519)에 대해 “어찌 바둑 두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한 수를 잘못 두면 온 판을 그르치게 됩니다. 기묘년의 영수 조광조가 도를 배워 완성하기도 전에 갑자기 큰 명성을 얻자, 성급히 경세제민을 자임하였습니다.”라고 토로한다.

율곡 이이 선생 또한 비판적이다. <동호문답>에서 “조광조가 출세한 것이 너무 일러서 경세치용의 학문이 아직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이름나기를 좋아하는 자도 섞이어서 의논하는 것이 너무 날카롭고 일하는 것도 점진적이지 않았으며...겉치레만을 앞세웠으니...” 등으로 애석해하기도 한다.

개혁에 실패한 후 유배 중이던 정암은 <능성적중시綾城謫中詩>에서 자신의 처지를 활 맞은 새, 경궁지조驚弓之鳥나 독 안에 든 쥐의 신세에 비유하고 비통한 심정에 빠진다. “누가 활 맞은 새와 같다고 가련히 여기는가. 내 마음은 말 잃은 마부 같다고 쓴웃음 짓네. 벗이 된 원숭이와 학이 돌아가라 재잘거려도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 독 안에 들어있어 빠져 나오기 어려운 줄 누가 알리오.”

과연 개혁은 만병통치약이 될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절대선, 절대악이라는 것이 종교가 아닌 현실정치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나 차악에 만족해야 하는 것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대안이다. 때로 구악舊惡을 척결하고 나니 신악新惡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개혁이 오히려 개악改惡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그래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속담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개혁을 명분과 의리로, 청산해야 할 기득권이라고 보이는 세력을 타파했으나 그 빈자리에는 어느 새 현재와 미래의 기득권들이 밀고 들어온다. 또 다른 기득권의 탄생이다. 사람만 바뀌었지 결국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는 반성이 낯설지가 않다.

모든 원한은 저 멀리 강물에 띄워 보내고, 작으나 크나 은혜는 금석金石에 새기는 슬기와 금도襟度가 새삼스럽다. 국민통합을 주창하는 문재인행정부의 앞날에 행운과 영광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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