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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관계와 기대
  • 지해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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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타인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말들을 종종하곤 한다. 사실 한편으론, 맞는 얘기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이기적인 성격의 것들이 많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이득을 보거나 행복하게 될 가능성을 상상해내는 것이다. 물론 타인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고, 그냥 그 상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시간이 꽤 괜찮다고 느끼면, 모호한 그 기대들을- 점점 좋은 쪽으로 ‘구체화’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망할 확률도 매우 크다. 비교를 잘 하기 위하여 실망이 큰 것을 살펴야 겠다. 실망이 크려면 기대가 커야 한다. 기대가 큰 관계엔 언제나, 사랑이 있다.

<The Kiss> Pablo Picasso, 1969

연인이 처음 만나면, 서로에 대한 생각과 기대로 하루하루를 채우게 된다. 함께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상상한다. 다음에 만나면 무엇을 하자고 말한다. 그 계획 속엔 이미 상상이 있고 약간의 기대가 있다. 물론 이런 약속들을 모두 ‘상대방에 대한 기대’라고 볼 수는 없다. 이를 테면 연인이 아닌 누군가와 ‘영화를 보러간다-’는 행위에는 ‘상황에 대한 기대’가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경우,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 상황인지는 사실 1순위가 아니기 쉬운 것이다.

연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실망할 수 있다. 이건 상대방 잘못이 아니다. 바람을 피운다던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널 실망시켜 미안해’라는 말을 하는 상황이 올 수는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상상한 모습과 상대방이 달라 실망하는 것은 본인 탓이다. 상대방이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는 여인> Pablo Picasso, 1937

이러한 실망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게 ‘부모-자식’관계다. 2018년 연말, 대한민국의 겨울을 뜨겁게 했던, 아니 겨울보다 더 차갑게 잔혹했던 드라마<SKY캐슬>을 떠올려보자. 학력고사 전국 수석 타이틀의 강준상 교수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딸인 예서가 공부를 잘해서 3대 째 의사 집안 타이틀을 완성해주길 바란다. 아니, 학력고사 전국 수석의 딸인데- 당연히 공부를 잘하지 않겠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주같이 예쁜 예서의 성적은, 아빠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그것을 알고... 그래서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옆집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법시험을 최연소로 합격했던 차민혁 교수는 직접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려 든다. 이 집 애들은 친구를 나서서 도울 줄 알고,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렇게 차갑고- 한편으로 비인간적인 ‘SKY캐슬’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진짜 ‘잘 살줄 아는’ 그런 애들이다. 당연히 교우 관계도 제일 좋다. 공부는 못한다. 차민혁 교수는 이런 애들이 너무 못마땅하다. ‘이 차민혁이 딸인데’라는 말을 달고 사는 아빠 밑이라니- 너무 안 어울려.

그러나 차민혁이나 강준상 교수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실망을 줘서, 사랑이 식은 걸까? 아니다. 그래도 이들은 자식들을 사랑한다. 또 기회를 주고 응원한다. 그리고 다시... 기대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SKY캐슬>중에서 / JTBC

기대가 깨어짐으로 인해 얻게 된 실망은 아프다. 하지만 나는 실망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오래가는 것이라고 본다. 관계가 지속되려면, 아니 관계가 계속 작동하려면 기대가 있어야 한다.

결혼 적령기라서 대략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결혼 전제 하에 연애하고 결혼한 부부가 있다고 치자.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지만, 예를 들어 사랑은 그다지 없다고... 상상해보자. 이들의 결혼은 사회적 계약 관계의 의미가 강하다. 서로가 한 개인의 인격체로서 자아실현을 해내는 데에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줄 수도 있고, 더 질 좋은 삶을 사는 데에 한 팀으로서 잘 해낼 수도 있다. 이들은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협의하여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 아프면 서로가 간호를 해주고, 상대방의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슬퍼할 것이다. 이런 관계는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다른 의미에 사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 결혼할 때, 엄청난 기대를 가졌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서로가 함께 한 시간이 꽤 되었더라도 또 다른 미래를 기대하게 되었을 거다. 당신 늙으면 이럴 거 같아, 저럴 거 같아- 라는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를 닮은 아이를 궁금해 할 것이다.

나는 모든 관계에 이렇게 조금의 기대가 깃들어 있어야 지속을 넘어, 그 관계 자체-의 마음껏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친구와 가족, 직장 상사...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는 세상과 나, 내가 속한 사회와 나-의 관계에서도 그렇다고 본다. 최근 나는 너무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연말부터 약해졌던 멘탈에, 최근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견디기가 어려웠었다. 장례식장에 갈 수 없는 웃픈 가족사까지 아무튼 나는 마치 행주가 된 듯, 베베 짜여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정말 홧김에, 뉴욕행 비행기를 끊어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칼럼은 뉴욕도 쓰여졌던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새로운 나를 만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를 만났고- 그 환경에서 기대하는 내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게 낯선 환경과 교류하고 돌아온 나는, 지금의 환경에 또 다른 기대를- 반대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거울 앞의 여인> Pablo Picasso, 1932

실망은 쓰고 아프다. 그러나 우리에게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사랑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알아야할 것들이 있다.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만일 일부러- 혹은 크게 실망을 주었을 때엔 그 증오를 감당해야한다는 사실을.

오늘 당신이 기대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번 주말에는?

하물며 그런 기대감이 없다면, 되고 싶은 몸매가 어울릴만한 옷을 한번 사서 그 택배를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조금씩 그렇게 매일 다른 ‘나’로 바꾸어가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유치한 것 같지만 겉모습이 달라지면 세상이 날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슬프지만 이건 진짜다. 이렇게라도 기대가 있는 삶을 매일, 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린 삶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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