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인생의 길흉화복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로 회자되는 표현이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변방에 사는 어떤 노인(새옹)의 말(馬)이 어느 날 도망을 치자 이웃 주민들이 “아깝다”고 위로를 했으나 노인은 태연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다. 그러자 주민들은 축하를 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나쁜 일이 될지도 모른다.”며 기쁜 표정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해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를 하자 노인은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지.” 라며 평온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 동네 젊은이들이 모두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으나 다리가 온전치 못한 노인의 아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회남자》에서 전하는 새옹지마란 고사성어의 기원이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사는 복잡한 세상이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너무 연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교훈이다. 인간의 빈부, 귀천, 출세의 영욕과 성패 또한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고전 <회남자>

천하지사天下之事 이해상상반利害常相半. 세상일의 이익과 손해는 결국 반반이다. 뜻과 같지 아니한 시대를 풍운아처럼 건너간 재사 허균(1569~1618)의 이 같은 마음은 못 다한 회한을 넘어서 현명하다. 영욕의 부침을 심하게 경험한 나폴레옹(1769~1821)은 “오늘 겪는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성찰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행로에서 행운과 불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만나고 경험한다.

우리가 직면하는 행운과 불운과 관련된 속담들이다. ‘날씨와 젊은이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난세에는 영웅도 나지만 거상巨商도 난다. 누가 망하는 덕에 득 보는 놈도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우리는 행운과 불운을 만나 때로 심하게 일희일비를 하지만 득의의 시절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실의의 나날은 과연 나쁜 것인지를 확언하지 못한다. 밤이 깊으면 새벽은 반드시 더 밝아지는 것인가. 사람에게 길흉화복은 새옹지마처럼 반복되고 일방적이지 않을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다. 모든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연결되고, 오늘은 어제와 내일과 관련이 깊다는 얘기다.

교산 허균 / 출처= 다음 블로그 'kyeong~'

시황제의 천하통일 기반을 쌓은 진나라의 백전노장 왕전의 손자이자 명장 왕분의 아들인 왕리는 거록의 전투에서 패왕 항우에게 패해 비참하게 죽으면서 울부짖는다. “대를 이어 장수 노릇을 하는 동안 남의 사직을 다치게 하고 수십 수백만의 목숨을 뺏었으니 이렇게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진나라 명장 몽염(?~BC 215)은 간신 조고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죽으면서 한탄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는가. 탄식한다. 그러나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공사를 일으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 리가 넘도록 장성長城을 쌓았으니 그동안 끊어놓은 지혈地穴 지맥地脈이 얼마이겠는가.” 자신의 불운한 죽음에 대한 이유를 죄 없는 산천을 크게 망가뜨린 책임에서 찾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한 일화가 많다.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은 종친으로서 광해군의 폐모 사건과 관련되어 인조반정 이후 귀양을 가고 결국 극형을 받았다. 그는 어느 해인가 옛집을 허물고 새로 짓다가 기왓골 사이에 있던 참새 새끼들이 수없이 죽은 일이 있었음을 죽기 전에 회고하고는 “오늘의 일은 바로 그 때의 일 때문에 받는 앙화殃禍” 라고 자책했다.

재상 허적(1610~1680)의 경우다. 조선 숙종 시절의 허적이 사헌부 관리였던 젊은 날, 법으로 천민들의 비단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을 때, 이를 어긴 사람에게 심하게 곤장을 치도록 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날 밤 허적의 꿈에 관리의 옷을 입고 나타난 어떤 사람이 “비록 법을 어겼다고 하나 꼭 죽을 정도로 할 필요가 없었다.”며 “이는 사사로운 노여움 때문이니 상제께서 이를 미워하셔서 너의 집안을 멸문케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아들이 태어나 장성한 후 대역죄에 걸려 복주되고 허적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사헌부와 사간원,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다가 결국 얼마 후 사사되었다.

허적 / 위키피디아

후일 영의정을 지낸 윤지완(1635~1718)이 젊은 날, 통신정사로 일본으로 갈 때 수행하게 된 관리 등이 금전적 이득을 위해 일본에서 팔 인삼을 많이 가져갔다. 당시에 묵인되는 일종의 관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렴 강직한 관리였던 그는 도착을 앞두고 바다 한가운데 배를 세우도록 한 후 “사사로이 인삼을 가지고 온 자는 모두 목을 베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일순간에 그들이 버리는 인삼 보따리가 바다를 뒤덮을 정도였다. 후일 윤 대감은 질병으로 다리 한쪽을 잃자, “그 때 나의 말 한 마디로 엄청난 재화를 버리게 되었으니, 지금 내가 다리를 잃은 것은 그 일의 보답이 아니었겠느냐‘고 크게 후회했다.

18세기 말~19세기 초반 조선의 세태를 냉소했던 윤기(1741~1826) 선생은 <객유담고사자료기지>라는 작품에서 은전이 가득 든 항아리를 운 좋게 발굴한 이후 그 때문에 목숨이 오가는 송사에 휘말린 어떤 사람의 사례를 거론하며 “내가 은 항아리를 얻지 않았던들 어찌 이런 재앙이 생겼겠는가...내가 명분이 없는 재물을 보고 그것을 손에 넣었으니 걸려든 것이 마땅하다.”고 전한다.

행선적덕行善積德. 선행으로 덕을 쌓는다. 은덕을 쌓아야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물론, 후손이 동시에 편안해진다고 한다. 해남 윤 씨 문중은 삼개옥문적선지가三開獄門積善之家로도 유명하다.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등 큰 곤욕을 치르자, 세 번이나 가난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는 일화다. 윤 씨 문중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계속 배출된 것은 이런 적덕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해동속소학》에 보이는 글이다. 정승 홍서봉의 어머니는 매우 가난했지만 저자에서 상한 고기를 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여종을 불러 말했다. “상한 고기를 모두 사들여라.” 남들이 상한 고기를 모르고 사먹어 서 병이 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간직했던 패물까지 내다 팔았다고 한다. 아들 서봉은 모친의 이런 일을 전해 듣고 “어머니의 깊은 마음씨에는 하늘이 감동할 만 하니 그 자손들은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크게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해남 윤 씨 족보 / 출처=해남윤씨중앙종친회

퇴계와 남명을 사숙한 여헌 장현광(1554~1637) 선생은 “...나에게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실로 선친께서 적선한 결과였다...”고 자신의 노력이나 공보다 조상들의 음덕을 먼저 새겼다.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적불선지가필유여앙積不善之家必有餘殃이다. 《주역》 <곤괘坤卦>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좋은 일을 하면 집안에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 우리는 이런 말을 믿으며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이래야 발음發蔭도 가능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미신迷信의 혐의가 있기도 하나, 발음은 명당인 산의 음덕이나 선영의 음덕 같은 것이 내려 운수가 터지는 것을 말한다. 또 조상의 적덕(덕행을 베풀고 쌓는 것)으로 운수가 좋아지거나 조상의 숨은 은덕(선음)이 후손에게서 터짐을 말한다. 그러나 고인총상금인경古人塚上今人耕이다. 옛사람의 무덤 위에서 지금 사람이 밭을 간다. 호화로운 분묘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명당을 찾는 것이 평소의 적선보다 못하다는 무거운 가르침이다. 《좌전》에서도 “인간의 화복은 따로 문이 없다. 인간이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선한 사람에게는 복이 들어오고 악한 사람에게는 화가 생긴다. 홍양호 선생의 《이계집》에서는 “천 명의 목숨을 살리면 반드시 녹봉이 있고, 남몰래 보답을 받는다.”고 한다. 이학규(1770~1835) 선생의 말씀 역시 비슷하다. “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고 해서 어찌 모두 보답을 바라겠는가. 남 몰래 덕을 베풀면 아름다운 이름이 남는 법이다.”

좋은 인재도 연분이 있고 운이 좋아야 경륜을 펼 수가 있다(時來天下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운의 좋고 나쁨에 따라 운명은 크게 엇갈렸다. 지기지우知己之友 구양수(1007~1072)로부터 “백 명의 구양수를 거듭해도 한 사람에게 미치지 못 한다”는 극찬을 받은 북송의 명재상 한기(1008~1075)는 “내 평생을 돌아보니 세상사 어느 하나 요행이 아닌 것이 없었다. 내가 평생 나랏일을 맡을 때마다 요행으로 우연히 이루었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은 <품석정기>에서 개탄한다. “누구누구는 이익을 추구하여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도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요, 누구누구는 욕심 없이 담담하여 자취를 멀리 숨겨, 끝내 묻혀버리고 출세하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

만리장성

행운의 여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미소를 보낼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으나, 우리 인간은 그것을 잡고 이용할 준비가 부족하다. 인간은 자주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고 전생의 죄업을 탓하지만 현생에서 지은 죄와 허물, 잘못이 적지 않아 그것을 현생에서 갚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성찰해 볼 일이다. 또 좋은 기회는 화살처럼 빠르게 금방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도모하는 일들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준비나 계획이 없으면 찾아온 행운도 붙잡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그래서 ‘행운을 잡는 것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훌륭한 인격, 좋은 습관, 부지런함이 있어야 아마 행운도 찾아올 것이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생기는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세네카(BC4?~BC65)의 말이다. 비슷한 언급은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1822~1895)의 어록에서도 확인된다. “우연은 미리 준비되어 있는 마음의 편을 든다.”

아아,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미처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적지 않았던가. 어리석은 인간이 어지러운 분세질곡의 일들을 어찌 다 안다고 자부할 수가 있겠는가. 다행히도 신神은 한 때의 운수로 운명이 결정되는 주사위 놀음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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