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전력망에 우선 접속하고 기준가격 구매...소규모 대상도 기준가격의무구매제(FIT) 재도입 해야

[공감신문]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인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줄이고 안전성에서 치명적인 원전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실행에 착수했다. 언론은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못하면서도 원전 산업계와 학계의 반발이라든가 전기요금 인상 등을 거론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끼워 넣기에 바쁘다.
석탄화전과 원전을 줄이면 전력 수요는 무엇으로 메울까?

우선은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이지만 에너지는 7번째로 많이 쓴다.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에너지 원단위는 일본이나 독일보다 약 2.6배가 높다. 즉, 같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우리는 일본이나 독일보다 2배 이상의 에너지를 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기술적, 경제적으로 사용 가능한 에너지 효율 기술을 모두 채택하면 전체 에너지 소비의 1/6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전력 생산 측면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태양에너지와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수입하지 않는 에너지이며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에너지이기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20세기 말부터 각종 지원책을 통해 보급에 힘을 기울여 왔다. 21세기 들어서는 신흥개도국인 중국이 신성장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투자를 집중하여 투자액 뿐만 아니라 발전용량에서도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발전용량에서는 중국에 한참 뒤처져 미국과 독일, 일본이 뒤를 잇는다.

혹자는 말한다. “우리가 쓰는 전기를 대려면 우리나라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면서요?” 지극히 의도적인 흑색선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 주어지는 재생가능에너지의 이론적 잠재량은 최종에너지 소비량의 약 100배, 활용가능한 지리적 조건을 감안하면 약 20배, 현재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량만해도 약 5배 수준이다.
이미 대규모 태양광 발전은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어 현재의 불충분한 지원제도 아래서도 신규 설비가 증가하고 있다. 정부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개별 주택이나 건물의 지붕, 옥상 등에 설치하는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이다. 실제 2012년의 태양광 발전 설비에서 소규모의 비율을 보면 독일은 70%, 미국은 60% 수준이며 일본은 95%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나라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로 인한 환경 파괴 논란이 일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주택과 건물의 지붕, 옥상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까?
답은 기준가격의무구매제도(FIT)를 정립한 독일에서 구할 수 있다.
독일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은 뒤 원전의 단계적 축소를 결정했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독일은 그 대안으로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그 첫번째 조치로 1990년부터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는 기존의 전력망에 우선 접속할 권리를 주고, 배전사들로 하여금 소매가격의 90% 수준에서 구매해주도록 하였다. 이 조치로 1980년대에 유럽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보급이 늘어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시작한 풍력발전은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해져 보급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이제 막 보급되기 시작한 태양광발전은 아직 수익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이 문턱을 넘어선 건 독일 서부의 아헨시였다. 아헨시정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1994년부터 생산비 보장 구매 제도를 도입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의 구매 가격을 소매가격에 연동하지 않고 생산비를 기준으로 하여 이를 보장해줌으로써 시민이나 협동조합 등에서 태양광발전과 같은 고비용의 기술도 과감히 채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제도는 다른 도시로 파급되면서 1990년대 하반기 독일 내 태양광 발전 보급에 크게 기여한다.
2000년 사민당과 녹색당 연립정부로 구성된 독일 연방 정부는 기존의 전력망 접속 우선권과 함께 생산비 보장 구매제도를 채택한 기준가격의무구매제도(FIT)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재생가능에너지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독일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모든 전력은 정부에서 생산비를 평가하여 정한 가격으로 전력공급회사가 20년간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되었다. 기준 구매 가격은 기술 수준과 보급량 등을 고려하여 매년 하향 조정된다. 독일은 이 제도의 도움을 받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이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 내용도 지붕이나 옥상 등 소규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차지하는 건실한 구조를 갖추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03년에 도입한 기준가격구매제(의무는 아니었다)를 폐지하고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를 실시하고 있다. 공급의무화제도는 대형 발전사에게 공급하는 전력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재생가능에너지로 발전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전의 6개 발전자회사와 포스코에너지, GS파워 등 모두 18개 대형 발전사는 올해의 경우 총발전량의 4%를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량으로 공급해야 한다.이들 공급의무 발전사들은 자체적으로 생산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량 외에 개별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사업자들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인증서(REC)를 사들여 의무를 이행한다. 개별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자는 매일 생산한 전기를 그날 가격으로 한전에 판매하고, 한국에너지공단에서 받은 인증서(1MWh 당 1REC)를 공급의무 발전사에 팔아 수익을 맞추는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한전에서 사들이는 전기값과 인증서 가격이 시장 상황에 따라 변화하여 수입이 불안정하다. 실제 50여개에 달하는 시민발전협동조합에 따르면 배당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을 늘리기 위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이나 태양열, 소형 풍력발전 설비를 설치하려는 주택에 일정 금액을 지원하여 보조한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지원금을 받아 설치하므로 자가 소비 후 남는 전기는 상쇄하는 방식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 2015년까지 이렇게 22만여 가구에 태양광 발전이 보급되었다. 그러나 보조금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확대에 한계가 있으므로 전력 생산에 따른 수익이 개별 가구에 돌아가도록 하여 자발적인 설치를 유도하여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집 지붕이나 옥상에 자비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설치비 전액을 자비로 부담할 경우 자가 소비나 소비전력과 상쇄하는 것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 비싸게 생산하고 싸게 파는 셈이니 누군들 설치하려 하겠나? 아니면 발전사업자로 등록하여 한전에 전기를 팔고 공급의무 발전사에 인증서를 팔아 수익을 내야 한다. 얻는 데 비해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수지를 맞춘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독일에서와 같이 기준가격의무구매제도로 하면 개별 소규모 발전설비 설치자들은 발전사업자로 등록할 필요도 없이 한전에 신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설치한 해의 기준 가격에 따라 장기 구매를 해주므로 단순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어 전력 생산의 수익을 나눌 수 있게 된다.

2003년 기준가격구매제도를 도입할 당시 차액으로 지원되는 돈은 kWh 당 500~700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보급 확대에 힘입어 태양광 발전 단가가 급속히 하락하여 현재는 100~200 수준이면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기준 가격은 국내 보급이 확대되면 더 빠르게 낮아져 머지 않아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그리드 패리티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과 지난 2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소규모 발전 설비에 대해 FIT 제도를 적용하려는 법률개정안이 산자부의 반대에 부딪혀 계류되었다. 이제 새 정부도 이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법률안이 개정되기를 희망한다.

※ 신동한은 서울대학교 기상학과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도시행정학과에서 공부했다. 기후변화에 관해 연구하면서 기저에 깔린 에너지 문제에 천착하게 됐고, 그런 관심의 일환으로 에너지전환연구소라는 개인 연구소를 열었다.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에도 관심이 있어 부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왜 에너지일까?」-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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