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창덕궁 후원에 들어서면 좀 독특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궁궐의 여러 가지 문중 유일하게 커다란 화강암 통돌 하나를 ‘П’자 형태로 깎아 만들어 세운 불로문(不老門)이다. 문은 자체에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돌쩌귀를 박아 문짝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고, 안쪽은 직각, 바깥쪽은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 상단 중앙에 한자 전서체로 쓰여진 ‘불로문’ 이라는 글씨는 이 문 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영원히 늙지 말라는 기원의 의미이지만 특히, 임금님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도록 해달라는 축원덕담의 염원이 있다.
조선시대 단종을 제외한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3세라고 하니 1갑자(=60세)를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예종과 헌종은 20살 초반에 인종과 명종은 30살 초반에 오늘날이라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의 공통적인 모든 소망은 불로장생(不老長生)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염원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동서양이 따로 없었다. 중국의 진시황은 신선사상과 도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나라에서 태어난 서복(서불)에게 명하여 수천의 동남동녀와 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제주도로 보냈다고 한다. 17세기 독일의 어떤 의학자는 노인들이 회춘(回春)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젊은이의 동맥과 노인들의 동맥을 직접 튜브로 연결 수혈하는 실험을 하였지만 같은 혈액형끼리만 가능한 사실을 알지 못해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한다. 2014년 미 대학교의 연구팀이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하나로 연결하는 쥐 실험으로 늙은 쥐의 뇌가 젊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는 기사는 불로의 꿈이 우리들에게 한걸음 더 빨리 다가왔음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후원의 부용지 영역을 지나 애련지 쪽으로 가다 두 개의 문을 만나게 된다. 한나라 때 책을 정리하여 보관하던 곳의 이름을 ‘금마(金馬)’라고 하였다. 공부를 잘 하려면 이 문을 통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늙지 않고 오래 살려면 불로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면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불로문 쪽으로 향하는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 창덕궁 후원의 금마문

불로문 앞에서 가끔은 정답을 가르쳐 주는 어리석을 정도의 질문을 관람객들에게 드린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가장 장수한 왕은 누구인가요? 연세 드신 분들은 많이 생각한 후 그야 영조 임금이지요. 하지만 초·중등 학생들은 장수왕이라고 답변한다. 고구려 장수왕은 97세로 장수하였다고 하며 영조는 83세로 오래 살았다고 한다. 문화재 보호 측면에서 불로문을 드나드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장수하고 싶으신 분들은 저 모르게 두 번 통과해 120살 넘게 사신다 해도 ^:^~ 너스레를 떨어본다.

#. 불로문과 뒤쪽 붉은 소나무

『궁궐지』 기록에 의하면 “숙종18년(1692)에 연못 한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어 이름을 애련정이라 하였고, 동쪽에 석문(石門)이 있는데 불로정(不老亭)이라고 하였다. 석문 밖에 한 못이 있는데 불로지라 일컫는다.” 이로보아 불로문은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이 문 앞에는 불로지(不老池)가, 문 안쪽에는 어수당이 있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의하면 현재의 문은 1988년 불로문 발굴 공사를 실시한 기록이 보인다.
순조임금의 아들인 효명세자(익종) 때 그려진 동궐도 속의 불로문을 보면 세 개의 장대석 계단위에 단순하면서도 아주 깨끗한 하얀 원석의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다. 하지만 지금의 문은 돌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대기오염 환경으로 인한 비바람에 찌들어 약간은 검고 오돌토돌하여 많은 세월의 무게를 힘겹게 버텨온 흔적이 보인다. 문을 지탱해 주는 하단부의 석함이 지금은 있지만 동궐도상에는 담장에 밀착하고 장대석위에 바로 세워져 있으며 문의 기초석인 석함은 없다.

#. 동궐도상의 불로문, 애련정, 금마문, 의두합(이안제)

궁궐에서는 전각으로 들어가려면 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궁궐의 전각은 각각의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하도록 담을 둘러치는 것이 보통이며 출입을 위하여 담의 일부분에 문짝을 달기 위한 네모진 틀 즉, 문틀을 먼저 설치한다. 불로문은 엄밀히 말하면 통 돌로 만든 문틀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문틀에 끼워서 여닫는 문이나 창 한 짝을 문짝이라고 하며, 문에서 두 문설주 아래에 가로 댄 나무를 문지방(門地枋)이라고 하는데 현재 불로문의 경우는 둘 다 없다. 다만, 문틀에 문을 지탱하는 경첩의 일종인 돌쩌귀(지도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설주 정면기둥 가운데 부분에 돌쩌귀 구명을 시멘트 같은 재료로 메꾼 흔적이 보인다.
최근에는 불로문을 여러 영역에서 활용한 사례가 보인다. 석문을 본 따 제작한 모형이 3호선 경복궁 전철역, 청와대, 사직단 등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불로문’을 소설의 무대로 끌어들여 창작을 위한 컨텐츠로 활용하는 작가의 창의적 발상이 존경스럽다.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부인 펑 위안 여사가 이곳을 방문한 기사가 신문에 사진이 게재 되어 화제에 오르기도 하였다. 우리의 문화재를 외국의 귀빈들에게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널리 알려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 경복궁 전철역 내 설치된 불로문 모형

북한산 비봉에는 금석학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올라가서 조사해서 확인한 국보 제3호 신라 시대 진흥왕 순수비가 있다. 현재 원비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소장되어 있고 그 자리에는 새로 제작하여 세운 모형비가 있다. 문화재란 원래 제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소중한 문화재가 파손이나 파괴로 사라진다면 매우 염려되는 일이다. 불로문의 현재 상태로 보아 이제는 손괴를 막아 보호해야 할 시점이 지난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볼 시기다. 그 자리에 똑같은 모형을 제작하여 세우는 것도 바람직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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