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창덕궁 궁궐 식구들의 여름 공감이야기는 여름의 대명사인 부채, 시원한 물, 얼음, 과일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세조 임금은 명(明) 사신이 방문하자 창덕궁(昌德宮)에서 연회를 베풀고 더운 여름을 잘 지낼 수 있도록 부채를 각각 5자루 내려 주었다고 하며 연산군 시절에는 후원에서 그네놀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 창덕궁 요금문과 내빙고 추정지 –동궐도-

궁궐에서 여름나기는 궁중 및 중앙의 고위관리들이 여름철에 사용할 얼음을 미리 겨울철 한강에서 채취하여 저장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언제 설치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얼음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고자 ‘장빙고’라는 관청을 운영하였으며 태종 때에 이미 존속하고 있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연산군 시기에는 요금문(曜金門) 안에 응방(鷹坊: 매를 관리하는 곳)을 만들고, 빙고(氷庫)를 단봉문(丹鳳門) 밖으로 옮기게 하였다. 정조 13년에는 내빙고(內氷庫)가 요금문(曜金門) 안에 있었는데 없앴다고 한다.
창덕궁에서는 진풍정(進豊呈:궁중잔치) 때나 장원서(掌苑署)·사옹원(司饔院)에서 사용하기 위한 얼음을 저장하는 내빙고가 있었다. 그리고 궁궐 밖에 위치한 외빙고에는 나라의 제사에 써야할 얼음을 저장하는 동빙고(옥수동)와 어용(御用)·빈객접대·백관지급용을 저장하는 서빙고(서빙고동)가 있었다. 
궁궐에서는 궐내에 내빙고를 두어 운영했다. 내빙고는 자문감(紫門監)에 부속시켰으며 제조를 두었는데, 대개 호조판서가 겸했다. 얼음은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세종 때는 어선(御膳; 임금님께 올리는 음식), 나라 손님 접대, 제향(祭享)에 주로 쓰였으며 신하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궁궐의 여름나기를 위한 전각 시설로는 마루와 누가 있다. 각각의 전각에는 대청마루를 마련하였고 본 건물 앞쪽으로 툭 튀어나오게 지은 성정각의 보춘정, 낙선재나 연경당에서 볼 수 있는 누마루, 대조전 뒤에 위치하여 대왕대비들의 시원한 여름나기를 위한 청기와 건물인 징광루가 대표적인 건물이다. 창덕궁의 여름나기는 금천위에 돌기둥을 세우고 지어진 검서청의 오른쪽 누마루가 가장 마음에 든다. 검서관들과 정조 임금이 과중한 일과에 지쳐 잠시 내빙고의 얼음과 푸랭이 수박 한통을 잘라 쟁반에 놓고 부채를 이리저리 부치며 창문밖에 비춰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 금천의 맑고 시원한 물소리와 바람을 마주하면서 잠시 수담으로 여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창덕궁 서궐내각사 검서청(우측 금천 돌기둥과 누마루)

정조임금의 여름나기는 조금은 별나면서도 지엄하여 신하들의 간섭을 매우 싫어하셨다고 한다. 지금의 신선원전이 있는 북영에 행차하시어 묵으며 대신과 경재(卿宰) 각신(閣臣)들 모두에게 접근을 금하여 궐외에 있게 하였고 말씀하시기를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날이 갠 뒤 더위가 물러갔으니 그야말로 회포를 풀기에 적당하다. 북영의 몽답정(夢踏亭)에 가서 묵으며 답답한 심사를 풀 것이니 그렇게 분부토록 하라."하면서 신하들이 뵙기를 누누이 간청하여도 누구도 후원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말씀하시고 나라의 정책 구상을 하면서 쉼을 가졌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등에 한자로 쓰여진 단어들을 한글세대가 의미를 파악하기는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수박을 서과(西瓜), 참외를 감과(甘瓜)로 쓰여 있으니 말이다.
연산군은 중국 수박이 보고 싶어 중국 북경에 사신으로 가는 사헌부 김천령에게 수박을 구해 오라고 하였는데 중국과 우리나라 것이 비슷하고 가져오는데 수개월의 시일이 걸려 쉬이 썩을 것을 염려하여 가져오지 않자 사신을 능지처참 하였다. 수박은 해롭지는 않지만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서리가 내린 뒤에는 더욱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영조임금은 소학(小學)을 잘 읽고 대답한 학동(學童)들과 여러 유생들에게 수박[西瓜]을 상으로 내려 주었다. 순종이 아플 때 의사들이 들어와 진찰하고 수박즙〔西苽汁〕을 권했다고 한다.
창덕궁의 동궐내각사에는 전국에서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과일이나 농산물 중 그 지방의 특산물인 진상품을 관장하는 사옹원이 있었다. 그 중에 고려 때 원나라로부터 전해졌다고 하는 빛고을(광주) 무등산 푸랭이 수박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의 수박에서 나타나는 줄무늬가 없고 색이 진 푸른색이다. 무등산 중턱에서 한정적으로 재배되어지며 겉껍질이 두껍고 보통 수박보다 매우 커서 10~20kg 정도로 큰 것은 지게에 하나 실을 정도다. 수박은 지극한 정성과 퇴비를 많이 주어 8월말부터 9월 사이에 수확하여 임금께 진상하였으며 현재는 백화점에서 8월 말경부터 매우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 사옹원 진상품 무등산 푸랭이 수박 –광주 북구청 인터넷 사진자료-

궁궐 길라잡이들에게는 매우 무더운 여름 한낮의 해설은 무리가 뒤따른다. 출발 전 물 한통은 기본이고 머리에는 항상 시원한 모자를 쓰고 나서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설을 들어주시는 분들의 숫자에 비례하여 그날의 해설의 질이 좌우되는 것 같다. 아무리 더운 날씨일지라도 해설을 들어주시는 분들의 수가 많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해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일과가 끝난 후 옛 임금님들이 궁궐에서 그리 하셨듯이 창덕궁 옆 한적한 가회동 어느 골목 카페에서 얼음이 듬쁙 담긴 화채 한 그릇에 부채질하면서 궁궐 식구들과 더위를 함께 날려 보낼 수 있는 여름 공감이야기를 여유 있게 풀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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