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정쟁을 멈추고 ‘민생과 나라 바로 세우기’에 동참하라”

[공감신문] 강란희 칼럼니스트=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한번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64회 현충일 추념식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된 현충일 추념식에서 ‘애국 앞에는 진보와 보수는 없습니다. 모든 애국을 존경합니다.’라고 추념사를 하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여 추념사를 했다. 이날 대통령이 낭독한 추념사에 대해서 또 한 번의 사회가 이념 논쟁으로 출렁이고 있다.

이유는 바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한 발언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약산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었고 이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됐다.”라고 한 대목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고 이념 갈등으로 번지며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빨갱이’로까지 몰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나도 빨갱인가요? 그리고 투표한 모든 사람이?” 한 시민이 몹시 흥분한 모양이다.

그럼 여기서 잠깐 원문을 살펴보고 비전문가들인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세상에는 이런 소리도 있는구나? 하는 것도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은 전문가들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나라는 다수(대중)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 기다립니다.’ 남겨진 젊은 시절의 사진 한 장, 인사도 못 하고 전장으로 떠나보낸 남편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온 세월이 70년. 6.25 전사자 고 성복환 일병에게 보내는 김차희 여사의 편지를 배우 김혜수 씨가 낭독했다. 사진=청와대>

다음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서 낭독한 추념사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전략)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하 생략)”>

대통령의 추념사를 끝까지 들었다는 한 시민이 이야기한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념 갈등과 빨갱이 전법에 대해서 한마디로 “본질은 없애고 트집만 잡는 격”이라며 일축한다. 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략) 결국 대통령은 현재 (이 나라에서) ‘좌파 독재’ 등 이념 갈등으로 시끄럽다 보니, 이 자리를 빌려 애국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고 말하며, 결국 ‘통합’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 것입니다. 이들도 이걸 다 알아요. (중략) 근데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 거품을 물고 덤비는 것은 아마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약산 선생이 독립을 위해서 항일 투쟁한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중략) 나도 어릴 적 역사 선생님께 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계속) 다 각설하고 이 문장에서 보면 약산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고 불굴의 항쟁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광복군) 이 우리나라 국군의 뿌리다. 틀린 말은 아이지잖습니까? (중략) 그럼 그때(조선 의혈단을 조직하거나 조선의용대를 조직할 당시) 약산 선생이 공산주의자고 김일성 추종자였을까요? 아니었잖아요. 딱 여기까지입니다.”

“(계속) 그런데 약산 선생의 월북 이후까지 따진다면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악랄한 일본 순사 노덕술이나 친일 행위자 등 모두를 짚고 넘겨야 하거든요. (중략, 이 시민은 대체로 근현대사에 대해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해박함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날 추념사에서는 시끄러운 좌. 우의 틀에 걸려있는 우리 사회에, 임시정부로부터 100년 간 광복군의 항일투쟁과 독립운동 그리고 한국전쟁 등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희생이 밑거름되어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좌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통합’해서 험악한 국제사회의 난간을 같이 풀어 갑시다. 라는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하 생략)”

그건 그렇고, 그러고 보니 사실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 일반 국민은 잘 모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굳이 기억해 낸다면 영화 ‘밀정’ 등이나 요즘 모 방송국의 드라마 ‘이몽’등에서 보고 김원봉 선생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얻는 정도란다.

그렇다면 약산 김원봉 선생이 뭐! 어쨌길래 일각에서 거품을 무는지? 등에 대해서 평범한 일반 국민에게 알아보고 뭐가 문젠지? 그리고 이것으로 대통령까지 빨갱이로 몰아붙일 만큼의 것인지? 도 한번 간략하게 알아보자.

우선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선생은 1898년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958년까지 살았다. 본은 김해다. 하지만 선생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의별 이야기가 무성할 뿐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과 광복군 제1 지대장 그리고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독립투사 정치인이다.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 요인 귀국 기념사진 뒷줄 오른쪽 약산 김원봉 선생. 사진 출처 위키백과>

이 정도만 봐도 대체로 짐작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한 독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희생하고 헌신했을지도 짐작이 간다.

“약산 선생이 친일했습니까? 일제에 비리 붙어 재산축적을 했습니까? 자신의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쳐 나라를 구하기 위해 투쟁을 했을 뿐이고, 반면에 광복 후 일제 잔재를 정리하지 못한 정부와 독립 애국자 탄압에 앞장선 악질 친일세력들을 나무라야지요. (중략) 그렇다면 약산이 해방된 조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월북을 한 이유는 뭘까요? 이들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요? (중략) 그리고 (약산 선생) 월북한 이유는 해방 후까지도 득세를 부린 친일 잔재세력을 피해서 월북했다고 알고 있어요. 월북 이후 선생의 행적은 일단 접어 두고요.”

“그럼 선생이 처음부터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 등도 우리는 모르고 또 그가 월북을 하지 않으면 안 됐던 사정과 더불어 남북 단일국가를 이루기 위해 김구 선생 등과 헌신과 노력 등은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그런데요,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굴레서 벗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무조건 약산 선생을 비판하고 선생을 언급한 대통령을 ‘빨갱이’ ‘탄핵’ ‘하야’ 등을 운운하는 사람이나 집단들에게 도대체 ‘당신들과 선조들은 그때 뭘 하셨습니까?’라고 묻고 싶다니까요. (후략)”

일각에서는 뜬금없이 뭔 현충일에 3.1절이나 8.15 광복절날에나 소환되어야 할 이야기를 하느냐? 며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본질을 알고 살펴야 한다. 뭔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알고 살펴야 한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배적인 것 같이 보인다.

“(전략) ‘청와대 폭파….’ ‘달창’ ‘김정은이 문재인보다 낫다.’ 등등은 아주 심각한 말이고 문제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무시무시한 감방 감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자유’라는 이름 아래 놔두니 ‘책임’도 없이 계속되지 않습니까? 급기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빨갱이’까지 몰아가고 있는 걸 보면 참 가슴 아프지요. (이하 생략)”

어느 시민이 한 말이다. “사사건건 트집만 잡고 늘어진다면 결국 자뻑 밖에 안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다시 말하면 오늘 이 순간도 시민들은 “국회의원은 국회로 가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피x 싸고 죽는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약산 선생에 대한 논란은 SNS를 비롯해서 곳곳, 각계각층 등에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한쪽은 서훈해야 한다며 독립운동 단체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서명운동에 나선다고 한다. 또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오는 등 갈등의 조짐도 보인다. 다른 한쪽은 갖가지 타령으로 심각한 이념의 정쟁 속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도 국민의 눈에는 보인다는 말을 한다.

대다수 국민은 “그렇다고 청와대나 정부에서 서훈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잖아요.”라며 일축해 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약산 선생을 소환하지 마라. 지난 정부가 추진한 국정 역사 교과서에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 어떻게 기록 했는지를 살펴보고 말하라.”라는 등의 이야기가 국민 속에서 파다하게 펴지고 있는 것 또한 볼 수도 있다.

<사진 = 청와대>

반대편에서도 “공산주의자, 한국전쟁 선봉, 대남 침투 교육” 등 과오가 있는 사람을 왜 이 시기, 이 자리에서 입에 올리느냐며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이참에 우리도 이제 짚고 넘어갑시다. 일제의 행적을 좇아 부역자와 그 대가로 재물을 받았거나 일군 재산 등을 몰수는 법을 만들고 환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17대 국횐가 그때 관련법이 상정되었으나 당시 거대 특정 정당의 의원 수 모두가 반대하는 바람에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요. 이제 다시 끄집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중략) 다시 청산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일제 잔재들이 춤추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약산과 독립투사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은 남은 잔재들의 뿌리를 뽑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쨌든 현충일에 이런 논쟁이 된 것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는가 하면 ‘생뚱맞다.’라는 등의 말도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정계에서도 서로 핑퐁을 치며 별의별 말들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말하고 싶은 것은 “애국 앞에는 보수와 진보가 없다.”라면서 “이념 초월”과 “통합”을 강조했을 뿐인데 한쪽에서는 “갈라치기”를 운운한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더불어 국민은 명령한다. 여기서 좀만 더 나가면 “친일세력 척결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어닥칠 것.”이라며 당장 선거용 정쟁을 멈추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 “민생과 나라 바로 세우기”에 동참하라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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