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11일(금)은 말복이다. 여름철 복날을 전후하여 보신탕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해마다 재연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견공 수난시기인 복날을 맞아 ‘이제 그만 잡수시개 vs 우리도 먹고 살개’라는 인상적인 표어를 내건 반대집회 및 찬성시위까지 곳곳에서 벌어져 더욱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 문제는 해외토픽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하나의 숙제다. 올림픽 등을 전후해서는 외국의 동물보호단체는 물론 유명 여배우까지 나서 개고기 문제를 거론한다. 애완· 반려동물의 수가 이미 천만 마리가 넘고, 급증추세가 더욱 가속화되는 가운데서도 개고기 식용 문제의 찬반 논란은 더욱 뜨겁다. 따라서 이제는 개고기 식용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나 새로운 입법이 필요해 보이고 현명한 조치가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고기 반대 시위/ 연합뉴스=공감신문

개고기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단속과 묵인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를 따르자니 사람이 울고,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우는 격이다. 한쪽의 이익이 반드시 한 쪽의 손해가 된다는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이는 것이 찬반진영의 현실이다. 또 애호와 혐오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형국이라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일도양단 식의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곤란하다. 

전통적인 식습관, 개개인의 기호, 동물 학대와 복지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커 공권력이 개입해 이해관계나 시시비비를 명확히 따지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우선 개고기에 대한 주무부서나 당국이 누구인지도 불명확하다. 보건과 위생의 문제라면 보건복지부, 가축이라면 농림축산식품부, 보호종 여부 또는 사육환경이나 도살 과정 등의 처리가 연관된다면 환경부 업무로도 보인다.

인간이 먹고 산다는 게 따지고 보면 잔인하고 비정한 학살의 과정이다. 닭, 돼지, 소 등을 도살해야 인간은 살 수가 있다. 가금(家禽)은 고기·알·깃털을 얻기 위해 상업적 목적으로, 또는 길들일 목적으로 기르는 닭, 오리, 거위 따위의 조류를 말하고, 육축(六畜)에 닭· 소· 돼지· 말· 양과 함께 개가 한 자리를 어엿이 차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개를 애완용이나 감시용으로만 키우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고기 식용의 기원을 문헌에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해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인다. 문자가 없던 시기에도 인간은 자주 개를 잡아 식용했을 것이다. 기나긴 수렵의 시대를 거쳐 농경문화로 진화한 인류는 과학적 지식은 없었으나 오랜 식용의 체험을 통해 개고기가 몸에 좋은 단백질 공급원의 하나임을 충분히 확인했을 것이다. 

야생동물에서 진화한 가축은 처음에는 절대자, 천지신명 등에 올리는 각종 제사에 쓰기 위해 기른 것으로 알려진다. 고대의 주술과 마법의 시대에 제의(祭儀)나 명절의 축제라는 공동체의 행사가 끝나면 가축을 도살해 신분이나 계급에 따라 나누어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개도 이런 과정에서 분배되는 등의 일정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키우던 개라도 잡아먹어야 했던 사정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특히 상당수 주민이 기아선상에 허덕인다는 북한에서는 지금도 개고기를 단고기로 부르며 영양식으로 널리 권장하고 있는 인기식품이다. 각종 개고기 요리법도 다양하게 개발된 상태라고 한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어려웠다. 허난설헌(1563~1589)의 <감우(感遇)>라는 작품이다. “양반댁의 세도가 불길처럼 성하던 날 높은 다락에선 풍악소리 울리지만 가난한 이웃들은 헐벗고 굶주려 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쓰러졌네.” 손곡 이달(1539~1612) 역시 비슷한 내용을 전한다. “시골 밭집 아낙네 저녁거리 떨어져서 비 맞으며 보리 베어 숲속으로 돌아오니, 생나무에 습기 짙어 불길마저 꺼지도다. 문에 들자 어린 자식들 옷자락 잡으며 울부짖네.”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던 정약용(1762~1836) 선생은 흑산도 유배에 처한 형님 약전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들개를 잡아먹을 것을 적극 권유한다. 망년지교를 나누었던 초정 박제가(1750~1815) 선생의 개고기 요리법까지 편지에 소개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허난설헌/ 출처=나무위키

“...짐승의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하셨는데...어찌 오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 섬에는 들개들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저라면 거르지 않고 닷새마다 반드시 한 마리씩 삶아 먹겠습니다...들깨 한 말을 부쳐드리니 볶아서 가루를 만드십시오...개를 요리하는 방법은...아주 훌륭한 맛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초정 박제가의 개고기 요리법이라는 것입니다.”

시·서·화·다에 일가를 이루었던 초의(1786~1866)선사는 두류산 일지암에서 열반에 들기까지 40여 년을 은거하며, 덕행을 닦고 공부해 생불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스님이다. 초의선사에게는 장독에 시달리는 벗, 추사 김정희(1786~1856)를 위해 구씨보살(개고기) 곰국을 자주 끓여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스님은 살생을 금한 부처의 뜻을 어기고 있다”는 추사의 말에 초의선사는 “빈도가 모시는 부처님은 쇠약한 벗을 위해 이 약을 마련한 것을 보지 않으시려고 돌아앉아 계실 것”이라는 말로 벗의 양생을 배려했다고 한다.

“인간이 새 요리를 발견하는 것은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를 알려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다.” 브리야 사바랭(1755~1826)은 식생활을 통해 보는 문명비판의 고전이 된 《미식예찬》에서 먹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고 통찰한다.

사바랭은 사람의 식생활을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사회적 위치, 교육적 배경, 교양, 성장배경, 건강상태, 가치관 등-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한다.

초의선사 유적지/ 출처=한국관광공사

“저 자는 개고기다.”라고 하면 성질이 더럽고 막된 사람을 말한다. 개고기를 많이 먹으면 성격이나 얼굴이 개를 차츰 닮아갈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미신이나 속설이 아예 없지도 않으나, 개고기를 자주 먹는다고 개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와 개고기에 얽힌 일화는 상당히 많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 공자는 한 때 상가지구(喪家之狗)라는 별명을 얻었고, 구한말 정국에 풍운을 일으켰던 흥선대원군(1820~1898)은 젊은 날 ‘개고기’ 같은 파락호 행세로 외척과 세가들로부터 상갓집 개로 불렸다. 조선 중종 대의 벼슬아치였던 진복창은 권신 김안로(1481~1537)에게 날마다 개고기 구이를 갖다 바쳤다고 사관들이 전하고 있다. 

진복창은 을사사화 때 악명이 높았던 윤원형, 이기 등의 심복이 되어 사림 숙청에 앞장을 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권력의 애완견, 충견, 사냥개가 되어 남다른 출세와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그 말로나 사후의 평가는 당연히 좋지 못했다.

한편 생계를 위해 개를 잡던 사람들 중에는 아주 훌륭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권력의 개가 되어 편안하게 살지 않고 의연하게 진정한 인간의 길을 찾아 걸어갔다. 선거철만 되면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서서 몸과 지식을 팔고 아부를 거듭하는 요즘의 일부 교수· 지식인 등과는 크게 대비된다.

후일 한고조가 된 유방을 도와 개국의 일등공신이 된 번쾌는 전직이 개백정이었다. 또 《삼국지》에서 과한 음주와 급한 성격으로 오해를 자주 받는 장비는 도원결의를 통해 창의의 높은 뜻을 펼치기 전에는 저자에서 정육점을 경영하는 백정으로 살았다. 기원전 7세기에 기록이 남아 있는 중국의 복날과 보신탕의 풍습으로 보아 당시 장비가 개도 자주 잡아 팔았을 것이다.

《사기열전》을 찬연히 빛내는 기개와 의리의 자객 형가도 개백정 노릇을 했다. 진시황제를 암살하려 했던 협객 형가는 “바람 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 한 번 떠남이여,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노라”라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며 장도에 오른다.

대협객 섭정 역시 개백정 노릇을 하며 몸과 이름을 숨기고 있었다. 원수의 암살을 간곡히 부탁하는 대신 엄중자에게 말한다. “제가 노모가 있으나 집이 가난하여 떠돌면서 개 잡는 일을 하면서 조석으로 맛있는 고기를 얻어 어머니를 봉양하여...제가 뜻을 굽히고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 시정에서 백정 일을 하는 것은 단지 그리하여 노모를 봉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에서 형가와 쌍벽을 이루는 자객으로 소개되는 대장부 섭정은 “노모가 살아계시니 감히 남을 위해 나의 목숨을 바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살아계시면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고 일단 거절한다. 후일 어머니가 별세를 하자 엄중자의 부탁을 받아들여 거사를 호쾌하게 이룬 후 추호의 미련도 없이 세상을 버린다.

허균(1569~1618)은 <호민론>에서 뜰에 개가 없는 것은 흉년이 들어 제사를 못 지내는 것, 서당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 것과 함께 삼공(三空)에 속한다며 백성들에게 이롭지 못한 것이라고 걱정했다. 개를 잡아먹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집의 뜰에는 개가 있는 것이 보기가 더 좋았다. 개는 멀리 나갔던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면 반갑다고 소리 내어 짖으며 가족들에게 귀가를 알리고 신이 나 꼬리를 치는 것이 보통이다.

철학자이자 동물옹호자인 톰 리건(Tom Regan)은 《동물 권리를 위한 변론》(1983 출간)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서는 안 되는 폭력적이고 모멸적인 일은 모든 동물에게도 가해서 안 된다며 축산업, 동물실험, 사냥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상황 외에는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이 <성호사설>에서 전하는 내용이다. “살아 있는 짐승을 보면서 어찌 잡아먹을 것만을 생각하랴...비록 닭이나 개 같은 미물이라 해도...사람들은 저것은 고기 맛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또는 삶아 먹어야 한다느니 구워 먹어야 한다느니 하고 자주 평을 한다...짐승만 보면 있는 대로 다 잡아먹으려고 하니...약육강식은 짐승의 일이다.”

2006년 UN이 발표한 보고서 <가축의 긴 그림자(Livestock's Long Shadow)>는 축산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차지, 자동차가 배출하는 14%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생태 보고서다. 고기의 생산을 위한 목축과 콩, 옥수수, 보리 등의 사료작물 재배를 위해서는 극상림 등의 숲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많은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다는 육식 관련 산업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육식을 줄이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보고서에서는 또 쇠고기 1pound(약 453g)를 생성하는 데는 식물성 단백질 21파운드(약 9.5kg)가 필요하고, 돼지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식물성 단백질 8파운드(약 3.6kg)가 필요하다며 육식의 비효율성도 지적했다. 결국 개든, 개가 아니든, 인간의 육식습관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