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운전을 하지 않는데다 사는 곳이 군청 소재지의 작은 시골이라 이런저런 나들이 등을 위해 국도와 지방도를 오가는 시골버스를 자주 탄다. 일주일에 많으면 4~5일은 시골버스를 이용한다. 이 곳 버스는 보통 1시간~1시간 30분이 넘어야 한 번씩 온다. 따라서 버스를 한 번 놓치게 되면 최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읍내로 나가는 처음 버스는 아침 6시 50분, 마지막 버스는 오후 6시 20분, 읍내에 나갔다가 사는 마을로 오는 버스 막차는 7시 50분이다. 막차를 놓치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이 거의 3만원 정도가 나온다. 

시골 길을 달리는 버스 / 사진=KBS

배차 간격이 이처럼 상당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벽지나 오지 노선 비슷한 지역을 운행해야 하는 버스 회사의 입장도 난감할 것이다. 어떤 때는 겨우 승객 서너 명을 태우고 다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적자노선이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걱정도 한다. 

운전기사 양반은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거의 예외 없이 승객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주의를 준다. “어르신들, 내리실 때는 반드시 버스가 정차하고 난 후에 좌석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려야 합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서울의 시내버스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이 지난 낮 시간에 시골버스를 이용하는 승객은 거의가 70~80대 노인들이다. 주로 병원 갔다 오시는 분들이 많고, 읍내 시장이나 큰 마트에서 비료나 생필품, 간단한 농기구 등을 사가지고 버스를 이용한다. 

세어보니 시골버스의 좌석은 20석이었는데 어쩌다 시골버스를 이용하는 나그네 한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나이가 지긋한 분들로 가득 찬다.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할머니,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들이 천천히 버스에 타고 내린다. 정말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과 가속화하는 고령화를 실감하는 현장이다. 

또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라도 맞으면 각종 산채나 고추· 콩· 팥· 깻잎 등 그래도 돈이 될 만한 농산물을 한보따리씩 이고 들고 시장에 나가 팔려는 할머니들도 많아 시골버스는 거의 만원을 이루기도 한다.

승객들은 대부분 서로가 안면이 있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도록 시골에서 오래 살아 모두가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나면 서로 이쪽에 와서 앉아라고 반갑게 부른다. 이런 저런 수다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남의 집안 속사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이 버스 안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정겹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약이 떨어져 병원에 가서 약 타고 가는 길이네.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되고 팔이나 다리, 허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되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다가 한 세상의 사연 많은 삶이 끝난다.  

-어휴, 00네 할아버지가 어제 돌아가셨다네. 아마 팔십 셋이라던데. 며칠 전에 봤을 때 건강해 보이던데.  
-참, △△네 큰 며느리는 애 데리고 결국 가출했다고 하네. 시집 온 지 몇 년 안 됐는데. 젊은 여자가 모든 것이 불편한 농촌에서 그렇게 고생하며 살고 싶겠나. 큰 아들 하고 시어머니가 걱정이 태산이던데. 
-비가 너무 안 와서 큰일이네. 이러다 콩이고 고추고 뭐고 다 말라 죽겠네.
-올해는 산에 송충이가 많네. 약을 좀 뿌려야 할긴데.

농촌에서 늙어가는 그들은 일견 가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햇빛에 한껏 그을려 검어진 얼굴, 가난한 농촌의 고된 노동에 시달린 상흔을 간직한 저들은 아마 평생을 농촌에서 보낸 이 땅의 보통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다. 

그들에게도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일들-행운과 불운, 기쁨과 슬픔, 득의와 실의, 희망과 절망-이 많거나 작거나 오고갔을 것이다. 오늘까지 살아있는 그들의 인생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 그들 덕분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이루는 소중한 주인공이자 바탕화면이었다.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많이 배우지 못해,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잡초라는 민초인 그들은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을 낳아 키우고 힘들게 공부를 시켰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노인들은 한없이 젊은 날, 자식들의 보다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꿈과 참살이(well being)를 아낌없이 희생시킨 세대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때는 모두가 참으로 가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가난을 이겨내고 좋은 날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소를 키우는 농가의 모습

예전의 농촌에서 우리 한우는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의 하나였다. 어쩌면 사람값보다 더 나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는 가축으로서도, 농사일에서도 중요했다. 우리 농업의 근본은 소에 있었다.

소 배내기, 또는 소 배내먹이는 남의 집 송아지를 키워주고 대신 그 소에서 난 새끼를 받는 것을 말한다. 소 배내기는 소를 길러주고 그 소가 새끼를 낳으면 첫 새끼는 주인 소유, 둘째 새끼는 길러 준 사람이 갖게 되는 우리 농촌의 풍습이었다. 과거의 많은 농가들은 그런 방법을 통해 소들을 얻어 키우고 나중에 시장에 내다팔아, 커가는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배우지 못한 한을 교육열로 승화시킨 것이다.

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대부분 송아지를 키웠다. 어떤 때는 운이 좋아 한꺼번에 송아지 2마리를 키우기도 했다. 송아지를 잘 키워서 우시장 나가 팔면 돈이 제법 많이 남았다. 송아지를 키우면서 그들은 생각했다. 

이 송아지를 잘 키워 나중에 어린 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장가도 가고, 농사지을 땅도 사서,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궁핍과 굶주림 속에서도 송아지를 잘 키워 그들은 부자(富者)가 되고 싶었다. 송아지를 잘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자 희망이었다. 그들의 힘들었던 청소년기는 송아지와 함께 크고 있었다. 송아지는 다행스럽게도 사람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되었다.

지금은 농부라는 말 대신에 농업인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고 하지만, 시골에 사는 그들은 대부분이 농사꾼이 직업이었다. 어렵고 마땅히 취직할 자리가 없던 시기, 어려운 부모가 계신 농촌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땅을 믿고 살아온 착한 농부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근면· 성실했던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농부들은 이른 아침에 들에 나갔고, 새벽의 이슬을 헤치며 걸어야 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아침이슬을 바지에 묻히고 밟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상쾌하게 하는지 농부들은 알고 산다. 농부는 누구나 부지런하다. 그들은 부지런한 얼리 버드(Early Bird)들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나 《대동시선》 <신흥즉사>의 옛시조도 새삼 기억이 난다. “풍로에 국 끓고 까치도 울고 아내는 부엌에서 간을 맞추고, 아침 해 높이 떠도 따뜻한 이불 세상일 다 잊고 잠 좀 더 자자.” 

누군가가 천천히 가면 알 수 있고, 또는 멈추면 보인다고 했던가. 시골버스가 오가는 길들은 우리가 사는 자연과 인생을 다시 보고 느끼게 하는 명상과 치유, 순례의 짧은 여로가 되기도 한다. 굳이 산티아고(Santiago)로 가는 먼 길을 걷는 것이 결코 부럽지 않다. 우리가 찾는 진정한 인간의 길과 성스러운 교회의 깊은 뜻은 결국 어떤 장소보다는 우리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승용차로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불과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을 시골버스는 1시간 이상을 걸려서 간다. 노선과 속도 자체가 여유가 있고 그리 성급하지가 않다. 마을회관, 노인센터, 면사무소, 전통시장, 보건지소, 우체국 앞 등의 이정표가 되는 정류장에서 승객을 하나 둘 태우는 버스는 계속 직진을 하지는 않는다.

하천과 시내, 작은 언덕과 고개를 굽이굽이 돌고, 마을과 마을을 멀리멀리 우회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모시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빨리 빨리 문화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시골버스는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 / 사진=한국예술문화원

버스 속에서는 시인 정지용(1902~1950) 선생이 남긴 불멸의 <향수>가 다시 그립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아아, 우리는 왜 이런 아름다운 시를 쓰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하였나.

버스의 차창 밖에 비치는 시골길 여름 풍경은 생생하고 벅찬 감동을 일으킨다. 마지막 생애의 한 철을 맞은 매미는 저 숲속 나무 위에서 절창을 계속 쏟아낸다. 다소 일찍 나온 잠자리들은 지금 무수한 편대를 지어 아직도 뜨거운 하늘을 오가며 정지비행의 아름다운 군무를 펼치고 있다.

지난겨울 차가운 저 들판에서는 벌레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는데 저들은 과연 그동안 어디에 꼭꼭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나타났나. 신비롭다. 벌, 거미, 나비, 메뚜기, 풍뎅이 등 숱한 곤충들의 생기는 넘치고, 한여름을 지나는 녹음은 더욱 우거지고 향기롭다. 여름 꽃들은 이제 한 때의 그 화려했던 자태를 잃으면서 지고 있으나 열매들은 점차 튼실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아, 저 나무와 저 풀들과 저 꽃들의 이름과 힘과 환희를 모르는 우리 인간은 참으로 무색하고 한심한 존재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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