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낙규의 축제이야기] 사상은 시대의 아들이다

[공감신문  강낙규 기술보증기금 이사]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기

헤겔(1770~1831)이 살았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는 대격변의 시대였다.

7년전쟁(1756~1763년 독일 동부 슐레지엔을 되찾기 위해 벌어졌던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 오스트리아 편에는 프랑스, 작센, 스웨덴, 러시아가, 프로이센 측에서는 하노버와 영국이 맞선다. 프로이센이 승리하였으며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는다), 미합중국 독립(1776), 프랑스혁명(1789), 나폴레옹의 등장 등 절대왕정의 융성과 멸망,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출현,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변화, 구질서와 신질서의 대결, 귀족문화에서 시민사회로의 변화 등 대격변이 일어났다.

헤겔은 ‘독일헌법론’이란 논문에서 “독일은 이제 국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당시 독일은 300여 공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헷센의 캇셀 군주는 영국에 자기 백성을 1인당 15파운드를 받고 1만7,000명을 팔아넘겼고, 브라운슈바이크, 안스바하는 2만9,000명을 넘겼다. 그 돈으로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안스바하의 칼 알렉산더 백작은 파리의 여배우와 애인한테 돈을 모두 탕진했고, 최후에는 프러시아에 나라를 팔아넘기고 영국에 은거한다.

헤겔이 독일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고 질타한 이유다.

헤겔은 학생시절 연애도 했으나 성공한 적이 없었다. 둔중하고 서투른 행동으로 별명이 ‘늙은이’였다. 잔재주가 없었고 한 번 결정하면 우직하고 성실하게 추구하였다. 포도주와 맥주를 마시며 체스놀이와 카드놀이를 즐겼다. 41세에 20세 연하의 마리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콜레라로 갑자기 사망했지만 사망 이전에 위장병과 흉부협착증을 앓았다.

철학자에 대한 평가에 있어 헤겔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 헤겔좌파와 헤겔우파 양 극단으로 나뉜다.

청년시절에 나폴레옹이 독일 예나로 말을 타고 입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헤겔은 “세계정신이 말을 타고 있다”는 말로 나폴레옹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 아래 모든 개인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반면 ‘법철학’ 서문에서 그는 “국가가 실체적 개체성 즉 지상의 신성을 구현하여 이를 전제로 개인은 자기의 허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 이 때문에 왕정복구의 철학자, 프러시아적 군주제의 옹호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칼 포퍼는 헤겔의 전체주의적인 사고는 독일의 정치적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의 선구로, 나치 이데올로기의 모태를 이룬다고 비난한다.

1791년 봄 어느 일요일 셸링과 함께 튀빙겐 근교에서 프랑스혁명에 감격하여 ‘자유의 나무’를 심고 혁명가를 불렀던 헤겔의 모습과 프로이센이라는 낡은 봉건국가를 옹호한 헤겔 중 어느 것이 진정한 헤겔의 모습인지는 그의 ‘정신현상학’의 해석만큼 판단하기 어렵다.

“하인에게 영웅이란 없다. 그것은 영웅이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하인이 하인이기 때문이다.”

▲ 바닷가 설치미술 작품에서 뛰노는 아이들/ 사진=강낙규
정신현상학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진리를 탐구해 가는 의식의 경험에 대한 과정을 서술한 헤겔의 대표작이다. 슈트라우스의 표현에 의하면 ‘정신현상학’이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라면 헤겔의 기타 저작은 내해(內海)를 여행한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헤겔에 의하면 의식은 감각적 의식으로부터 의식, 오성, 자기인식, 이성, 정신, 절대지로 발전한다. 비유를 하자면 어린아이의 의식은 감각적 의식이고 청년기는 의식, 중년기는 오성, 장년기는 자기인식을 거쳐 노년기에 이르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절대지로 발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감각적 의식은 감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인식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만지고 들으며 구체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하나 감각적 의식이 도달하는 것은 장소로서의 ‘여기’와 시간으로서의 ‘지금’에 불과하다.

헤겔이 점심식사 후 잠시 졸았다가 3시인 줄 알고 강의실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 중 한 명이 “선생님 실은 지금 2시인데요.” 그런데 2시 강의를 맡은 교수가 헤겔이 강의하는 걸 보고는 자신이 지각한 줄 알고 돌아가 버린다. 얼마 후 3시가 되자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자신에 관한 의식의 경험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감각에서 얻어지는 확신의 진리, 진리이기보다는 오히려 허위인 것입니다. 한 시간 전에 나 자신이 이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의식은 사물을 경험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진리 획득 방법으로, 지각으로서 대상을 파악한다. 하지만 의식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 속에 여러 개념을 도입하여 감각적인 여러 질을 각 사물의 고유성으로 전화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의식은 오성의 단계로 나아가는데 모든 현상의 본질을 그들 현상의 내면을 구성하는 여러 힘의 한 체계로 귀착시키려고 한다. 즉 사물들의 관계, 법칙을 파악하는 과학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다. 현실을 은폐시키고 있는 베일을 벗겨내고 모든 사물의 내부를 통찰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데 불과하다.

의식이 처음에 자신의 밖에서 찾은 존재를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했을 때 자기의식이 된다. 자기의식은 욕망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욕망은 자기의 대상 즉 타자와 대립하며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 타자를 파괴하여 자기의식에 자기 확신을 부여해 준다.

한층 더 높은 단계는 인정투쟁을 통해서 도달한다. 인정투쟁이란 상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서로간의 투쟁을 통해 보다 높은 수준의 정신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참된 주체는 개별성과 보편성을 함께 지녀야만 하며 주체성의 요체는 자유와 능동성 그리고 자발성을 포함한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헤겔에 의하면 주인은 명령을 하고 노예는 복종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노예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결국 노예는 주인의 지배를 지배하며, 주인은 노예의 의지에 종속되고 노예가 명령을 하거나 혹은 외면적으로만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고 내면적으로는 종속되어 있는 주인은 지배와 동시에 종속되어 지배가 곧 종속이라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양자의 매개관계가 발전한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며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한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한편 주인은 노예에게 생산을 맡기고 자신만의 독자성과 주인의식 그리고 자유를 누린다. 이 자유는 편협한 자유다. 반면 노예는 노동을 담당하면서 노예이면서 자연이라는 이중적 구조 속에서 철학적 숙고를 한다. 주인은 주체성과 독자성 그리고 자유를 가지는 반면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나도 인간이니까 존엄해져야 한다, 자연을 대상으로 노동을 통하여 자연이 자기의식대로 변함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나는 자연의 주인임을 깨닫게 된다. 이로 인해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보편적 자유의식을 갖게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은 주인은 참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승인해야만 한다. 이로써 주인도 보편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현실 속에는 모순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모순을 처리할 수 있는 사유능력이 요청된다. 바로 이성이다. 전체적이며 동시에 발전, 운동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더욱이 그 발전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나는 절대적인 실재를 이성이라 부른다. 세계는 이성과 현실이 일체가 되어 나타난 것으로 자체 내에서 모순을 산출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발전한다.

세상이 진리고 자신은 그것을 거슬러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인적 차원의 이성이 진리가 아님이 밝혀지고 부정되면서 진리는 정신임이 드러난다.

정신의 확신이 진리와 합치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을 표상하는 종교와 그것을 개념으로 파악하는 절대지에 이르러서다. 절대지에 도달한 정신은 가장 풍부한 지식이고 여기에 모든 것의 진리근거가 들어 있다. 철학은 절대지로까지 자기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의식의 여러 형태와 역사적 생성 속에서 외화되어 있는 것을 이제부터는 정신 속에서 내화시킨다.

형이상학 속에 시간성을 도입하여 헤겔은 역사성이라는 독특한 철학을 완성한다. 죽어 있는 법칙이 아닌, 살아 있으며 생명인 현상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인식은 세계를 추상화한 한 가지 인식일 뿐이라는 사유는 이후 후설과 가다머, 하이데거에 의해 생활세계론으로 발전한다.

 

진리는 전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전체다”라고 주장한다. “분리,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온 사유와 존재, 주관과 객관, 이념과 현실, 정신과 물질 등은 모두 동일물의 양면으로 ‘하나’로 파악되어야 하지만 이 전체는 오직 스스로 전개과정을 통하여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존재다. 현실은 하나의 전체자이며 무한하게 발전해 나가고, 세계는 그러한 이성과 현실이 일체가 되어 나타난 것으로 자체 내에서 모순을 산출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발전한다”라고 서술한다. 어쩌면 사후 자신에 가해질 양극단적인 판단을 이미 예견하고 이를 통합시켰던 것은 아닐까?

헤겔은 악(惡)을 정의하기를 “주관적인 의지가 보편적인 존재에 대립하여 자기 자신의 개인성을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로서 규정하려고 함으로써 합리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자기의 욕망은 보편의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타자가 봤을 때에 그것은 단지 개인적 욕망일 뿐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처음에는 주관적 확신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생의 시련에 부딪혀 그 확신이 오류였음을 인식하게 되고 끊임없이 자기의 계획을 수정해 나간다. 이렇게 해서 점차 객관적 진리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법철학’ 서문에서)

헤겔은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다”라며 철학은 필연적으로 역사적인 제약 속에서 절대적인 객관성을 붙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현실이야말로 헤겔에게는 철학의 출발점이다.

이성은 정신적인 상태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 자신의 힘을 표출하여 현실을 이성적인 상태로 만들려고 하며 이로 인하여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 된다. 현실은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성의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이성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영은 물 속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이지 물 바깥에서 이론적으로 아무리 배운다고 수영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칸트의 형식주의를 비판한다.

▲ 분장한 배우. /사진=강낙규
헤겔의 변증법

헤겔의 변증법은 모든 사물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을 운동과 변화로 설명한다. 모든 사물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이성, 정신, 개념의 자기운동은 자기부정과 모순에 의해 야기되며 부정이 없으면 운동도 없다. 부정이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자이다. 부정의 부정에 의해서 모순을 통일하고 보다 높은 단계로 진행해 나가는 운동을 지양(aufheben)이라고 한다.

지양이란 용어는 헤겔의 독특한 개념인데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부정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긍정적인 것은 보존하여 모순을 통일하고 높은 단계로 진행해 나가는 운동을 말한다. 변증법의 과정에서 진리는 변화하는 과정의 전체다. 사물의 본질은 현상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사물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계속해서 변화하는 현상을 통해서 드러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식물의 참된 모습은 씨앗에서 뿌리와 싹으로, 줄기와 잎으로, 꽃으로 그리고 열매를 맺는 과정 전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꽃봉오리는 꽃이 만개할 때 사라져버리는데 꽃봉오리는 꽃에 의해 부정되고 꽃은 열매에 의해 부정된다. 열매는 식물의 진리로서 꽃의 자리에 들어선다.

이러한 형식은 서로 모순을 이루면서 상대방을 배제한다. 동시에 그들은 유기적인 통일체의 계기로 만들어져 서로서로가 필연적인 관계에 들어선다. 필연성이 전체의 삶을 형성하게 된다. 애벌레가 고치로 변이되었다가 나비로 탄생하는 것도 같은 원리다.

포이에르바하는 이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헤겔에 대하여 감성이 더 우위에 있다고 반박한다. 감성적인 존재야말로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헤겔은 인간을 거꾸로 세워 놓고자 하지만, 자기는 두 다리로 서게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더 나아가 “중요한 점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이다”라고 한다. 헤겔은 대저택을 건축해 놓고 자신은 문지기의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는 하인 같은 사람이라고 조롱한다. 헤겔의 체계도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가르침은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난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세계에 대한 사유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완료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겨우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이고 부엉이는 미네르바의 상징으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의미한다. 황혼이란 온갖 활동이 끝난 무렵이므로 철학은 역사를 앞장서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역사적 사전이 전개된 다음에야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해석하는데 그치는 소극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 비판’에서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의 날은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고 반박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대응하여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트를 갈리아의 수탉으로 비유하고, 부엉이가 황혼을 의미한다면 수탉은 새벽을 의미하여, 결국 철학은 실천적 관점에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이론을 먼저 제시한다는 의미다.

“프랑스혁명은 이미 자유의 실현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독일 관념론은 오직 자유의 이념에만 전념하고 있을 뿐이었다”는 마르쿠제의 주장은 헤겔에게도 해당된다. 자유는 독일인에게 내면적인 것에 머무는 반면 프랑스인은 밖으로 폭발시켰다. 지적으로는 적극적이었지만 감성적으로는 소극적인 헤겔은 현실의 철학자로 철학에 부여된 현실적인 사명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예언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100곳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파라다이스비치는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로 북적인다.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몇 명 없고 대부분이 일광욕을 하거나 소음에 가까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아름다운 지중해 키클라데스 제도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하지만 보령머드축제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해수욕장 그리고 음악 이외에도 다양한 머드놀이가 있다. 헤겔이 자유의 나무를 심고 그 밑에서 혁명가를 불렀듯이 머드축제장에서 자유의 등불 아래 세계의 젊은이들과 함께 호연지기를 키워보는 것, 그것은 젊음의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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