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컷, 두 컷, 세 컷의 풍경

너를 보내고 나니 눈물 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만나야 할 때에 서로 헤어지고 
사랑해야 할 때에 서로 죽여버린 
너를 보내고 나니 꽃이 진다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돌아갈 수 없는 저녁 강가에 서서 
너를 보내고 나니 해가 진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 정호승, 북한강에서
 

[공감신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내 그리운 님을 찾아 떠난다. 일 년에 단 한번 마주하는 님,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아름다운 북한강을 시작으로 내 마음의 그리운 섬과 같은 곳은 강원도. 특히, 정동진, 평창, 봉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메밀밭에 핀 꽃

풍경 한 컷,

첫 번째로 봉평은 메밀꽃으로 유명하다. 9, 10월의 풍경은 수줍은 듯 다소곳하고 단아하다.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마을을 환하게 밝힌다. 메밀꽃이 새 하얗게 절정의 잔해를 뿌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붉은 단풍으로 절정을 이룬다. 작가 이효석(1907~42)이 쓴 소설 속에도 나와 있듯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 보이는 전부가 눈부시도록 하얗다. 까만 밤이면 메밀꽃이 별처럼 반짝인다. 세속에 찌든 마음까지 새하얗게 물들이도록 순수해진다.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4살의 순수한 아이의 웃음이 터진다. 희디흰 메밀꽃의 향연은 친구들 손잡고 소풍 갔던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금방 무장해제가 되어 고달픈 일상의 고민거리에서 벗어난다. 

가을바람에 춤을 추는 푸릇한 고랭지 무, 배추도 눈에 뜨인다. 나물을 캐어 광주리에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섶다리를 건너가는 아낙네도 보인다. 하얀 메밀꽃, 푸르른 가을배추, 꽃바지를 입고 나물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인 시골 아낙네의 느릿한 발길, 모두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다. 회색빛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느릿함의 미학이랄까. 아무튼 돈으로 살 수 없는 한 컷의 감동이다.

자작나무 숲

풍경 두 컷,

두 번째로 내 마음을 유혹하던 곳은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청옥산 자락의 자작나무 숲이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7부 능선쯤 올라가면 하얀 옷을 곱게 차려입은 자작나무 숲이 눈 안에 들어온다. 순백의 세상이다. 마르나 젖으나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는 하얀 껍질이 주는 신비감도 있지만 동화(빨강머리 앤) 속에 나오는 주근깨 가득한 주인공 앤과 친구 다이애나가 뛰놀던 숲이기도 하다. 

또 영화 '러브 오프 시베리아'에서 시베리아 열차 뒤로 끝없이 펼쳐진 숲이기도 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새하얀 나무에 걸려 반짝인다. 자작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려면 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아마도 그래서 숲 속의 귀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자작나무 숲이 문명과의 접촉을 끊은 듯하다. 숲으로 들어서니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다. 흰 입김을 뿜으며 자작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치 살이 빠져나간 생선의 흰 뼈처럼 잎을 다 떨구고 서 있는 자작나무의 흰 빛이 너무 아름답다. 차고 맑은 박하 향내가 세상 모든 고통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소나무가 수묵화처럼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면, 자작나무는 도시적인 향이 짙은 수채화 같다. 빼곡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자작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금방이라도 북유럽 동화 속에 산다는 '숲의 정령'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가끔씩 두툼한 낙엽을 딛고 달리는 산토끼도 보이고 이름 모를 새도 지나간다.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4살배기 아이의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나도 자작나무의 결과 향기에 욕망에 찌든 것들을 빨래처럼 담가 흔들어 씻었다. 얇은 종잇장을 여러 겹으로 붙여 놓은 것 같은 매끈한 수피를 매만지면서 기도 했다. 곧게 치솟은 가지를 올려다보면서 남은 내 생도 더 이상 무엇에 흔들려 휘어지거나 뒤틀리지 않고 쭉쭉 뻗어 갔으면 하고. 두 컷의 감동은 자작나무 숲이었다.

정동진

풍경 세 컷,

콘크리트 숲을 빠져나와 7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길 따라 휘어진 소나무를 껴안고 바다를 바라보는 간이역이 있다. 서울의 정동 쪽에 있다 하여 정동진이란 이름을 가진 역, 눈물과 그리움이 몸보다 먼저 도착하는 연인의 역, 소금기 베인 비릿한 원초적인 내음이 나는 역, 그곳에 가면 기억 속의 러브홀릭이 모래시계 밖으로 순서 없이 걸어 나온다. 너도나도 추억이라는 물감을 풀어 이중섭이 된다. 

어떤 인연은 마음으로 만나고, 어떤 인연은 몸으로 만나고 또 어떤 인연은 눈으로 만난다. 어떤 인연은 내 안으로 들어와 주인이 되고, 또 어떤 인연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 그곳에 가면 추억 속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광화문의 정동 쪽에 위치한 정동진은 특별할 것이 없는 바닷가였다. 그러나 드라마(모래시계)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정동진역은 해변과 가장 가까운 간이역으로 해풍에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가 있다. 휘어진 그 자태가 참 멋스럽다. 또 바위틈 곳곳에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닮은 보랏빛 해국도 피어 있다. 어화(漁火)들이 둥둥 떠 있는 수평선을 차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누구나 무장해제가 되어 원래의 순수한 생명체로 돌아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고 그리움과 추억이 묻어있는 정동진, 그곳에는 마침표가 없다. 누군가 떠나면 누군가 다시 그곳에 도착해있으니까. 

세 컷의 감동은 정동진이었다. 비움이 있어야 채울 수 있듯,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마무리'라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첫걸음이다. 강 어느 곳에서 울고 있을 붉은 새를 생각하며 간이역으로 마무리 여행을 떠나자. 한 컷, 두 컷, 세 컷, 감동의 풍광을 담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2017년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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