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5분 나는 무엇을 할까!

[공감신문] 울긋불긋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안겨주었던 단풍도 나뭇가지에서 거침없이 추락하여 어느덧 앙상해졌어요. 몇 개 남지 않은 붉은 잎들도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애타게 흔들리네요. 이 가을의 끝자락, 누구는 떠나가는 가을이 아쉬워 길 위에서 아픈 방랑을 할 것이고, 누구는 부산하게 새로운 손님, 겨울 마중을 준비하겠죠. 

오늘따라 그리스 시인 소포 클래스가 남겼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네요. 누군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하루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네요. 이 순간을 가볍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게 하네요.

<사진출처: 픽사베이>

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그 1년이 쌓여 10년이 되고 그렇게 모든 나날이 쌓여 70년, 80년, 한평생이 되지만. 스스로에게 '잘 살아왔다'란 말을 남길 만큼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죠. 그러나 생의 곳곳에는 넘어야 할 높은 벽이 너무나 많잖아요. 수시로 돌부리에 넘어지고, 몸을 다치고, 입원하고, 다시 회복해서 일상에 돌아오지만 두려움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거 같아요. 

특히, 예기치 않은 사고와 맞닥뜨릴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리잖아요.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지인의 죽음이나,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어디가 많이 안 좋아 수술을 해야 한다면 평상심을 잃게 되죠.

흔히 하는 말, 아등바등 살지 말라고, 즐기며 살라고, 다 부질없다고, 이런 표현은 살면서 마음이 무너졌을 때 내뱉는 말이잖아요.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은 있을 거예요. 다만 그 충격이 크고 작은 차이뿐이란 거죠. 그럼에도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나름대로 삶의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죠.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꾸준히 약을 먹으며 치료하는 것은 어제보다 덜 아프고, 어제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될 거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아픔을 견디며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거죠. 견뎌내지 못하면 살아있어도 지옥과도 같을 테니까요. 아프든, 아프지 않든, 현재가 어떻든 간에 진실하게 목적지, 올해의 희망을 마무리하기 위해 나아가야 해요.

누구나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면서 희망을 향해 꿋꿋이 가게 되는 거예요. 12월에 소망하는 것, 올해 계획했던 것을 아름답게 마침표를 찍기 위해 뚜벅뚜벅 가는 거예요. 어제보다 덜 실수하고 조금 더 애쓰며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즐겁게 보내야 해요. 후회를 적게 남기는 마무리를 위해.

<사진출처: 픽사베이>

산다는 것은 모두 비슷하죠. 다만 조금 더 많이 넉넉하고 부족하다는 차이만 있는 것 같아요. 모두에게 박수받는 가장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면 부끄럽고 후회되는 것들은 있으니까요. 아무리 길 위에 선명하고 큼직한 발자국을 찍었을지라도 아쉬운 미련은 남으니까요. 

가끔 돈이 행복, 성공이라고 착각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행복의 조건일 뿐. 진실로 행복이라는 것은 현재의 만족이라는 거죠. 가끔 가까운 누군가가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두툼한 봉투를 내어주며 '힘내'라고 위로한다면 그것도 만족이죠.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분명 잘 살았다는 거예요. 물질적으로 커다랗게 나누지는 못해도 밥 한 끼, 커피 한잔으로도 얼마든지 나눌 수가 있어요. 나눔 속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게 되고 해맑게 웃게 되는 거잖아요.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도 행복은 느낄 수가 있어요. 일상에서 얼마든지 말이죠.

행복은 시간과도 관계가 있어요.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을 끌어가며 주인으로 살아야 해요. 돈으로 많은 것을 살 수가 있지만 시간은 돈으로 살 수가 없잖아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 <백치>의 에 '5분'이란 문구가 있는데요. 사형대 위에 있는 젊은 사형수를 향해 집행관이 이렇게 말하죠. 사형 전 마지막 5분을 주겠다고. 마지막으로 남은 생의 5분을 사용하라고. 그 귀한 5분을 젊은 사형수는 이렇게 말하죠.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2분은 동지들과 결별하는 데, 다음 2분은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자신을 위해, 최후의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봐 두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는 데 쓰기로 했다."

만일 지금 남은 생의 시간이 5분이라면 그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써야 할까요? 갑자기 아득해지고 헛헛해지는데요. 이 생에서의 남은 시간이 마지막 5분이라면... 어찌해야 하나요? 나에게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첫 번째로 내 소중한 작품집들과 눈물을 하고, 두 번째로는 부모, 형제,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분신인 아이와 두 손 꼭 잡고 눈 맞춤을 해야죠.

살면서 잘해주지 못한 것들을 들춰내기보다는 둘이어서 행복했던 때를 말해주며 웃어야죠. 북받치는 울음을 꾸욱 삼키며.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다는 말, 행복했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멀리서도 지켜주겠다는 말을 해야죠. 가족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더라도 사랑하는 인연으로 맺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해야죠. 울지 말고 웃으면서 차분히 경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죠.

생각해보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는 돈보다 시간이 전부가 되죠. 남아있는 시간이 곧 생명이니까요. 몽테뉴는 이런 말을 했어요. “누가 당신에게 돈을 꾸어달라면 당신은 주저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놀러 가자고 하면 당신은 쾌히 응할 것이다. 사람은 돈보다 시간을 빌려주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만일 사람들이 돈을 아끼듯이 시간을 아낄 줄 알면 그 사람은 남을 위해 보다 큰일을 하며 크게 성공할 것이다.”

그렇죠. 돈은 벌 수가 있지만 시간은 돈으로 살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나의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죠. 정확한 분별력으로, 지금 해야 할 일, 나중에 해도 되는 일, 가장 중요한 일, 가장 본질 적인 것을 구분하면서요. 시간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은 내 생을 관리하는 것이니까요. 

생의 시간을 잘 관리하면 한 번쯤은 붉은 태양처럼 아름답게 타오른다는 거예요. 다만 그 시기가 빠르거나 늦을 뿐이에요. 뜨는 해든, 지는 해든 짧은 순간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 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생이예요. 붉게 타올랐다가 스러져가면서도 선연한 여운을 남기니까요. 

<사진출처: 픽사베이>

한 번쯤 열정적으로 세상을, 가족을, 주변 사람들을 깊고 진하게 물들인 적이 있나요? 감동을 준 적이 있나요? 있다면 괜찮게 산거예요. 그 반대라면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번쯤은 진한 감동을 주어야 해요. 팔십 평생, 아니 백세 인생인데 단 한 번은 화려한 불꽃을 피우고 떠나야죠. 생의 마지막 5분을 '미안하다, 후회한다'는 말만 남길 수는 없잖아요. 가끔 이름 세 글자를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어야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야 나름대로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오늘따라 두서없이 많은 얘기를 했는데요. 아마도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골집에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이곳에서 참 많은 것들을 소환하여 반성하고 추억하고 또 희망하네요. 올해 계획했던 희망(작품)을 탈고하기 위해 당분간 이곳에 머물 것 같아요.

이곳에 내려오면 한결같이 소고기를 듬뿍 넣고 뜨끈하게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이모할머니가 있어 좋아요. 일주일을 지독한 감기와 마른기침으로 콧물을 흘리며 억지로 버텼는데, 시큰거리는 뼈 마디를 안고 벽을 의지해야만 일어서지는 아침이었는데. 많이 홀가분해진 것은 사랑이 듬뿍 담긴 미역국 때문이 아닌가 해요. 

다시 힘을 내어 진솔하게 한 문장 한 문장 더듬어 가야죠. 올해의 마지막 작품이 탈고가 되면 계획했던 희망들이 모두 정리가 되니까요. 그리고 나면 올해의 희망한 것들에 대한 반성과 내년의 계획을 고민하게 되겠죠. 이곳에 오면 위로받고 또 위로받아 힘을 얻는 느낌이에요. 어둠 속으로 고민했던 한 페이지가 넘어가네요. 

아! 유리창 밖으로 감나무에 홍시 하나, 안간힘을 써며 버티고 있네요. 쏟아지는 바람, 깊게 내려앉는 어둠이 가을과 이별하네요. 아! 가을이... 지네요. 추억만 남기고 가을이... 지네요! 지는 가을, 멋진 마무리를 위해. 미래의 후회 없는 5분을 위해. 함께 나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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