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를 통해 본 '효도의 기술'...“비효율적인 모습으로 효도하자”
[공감신문 교양공감] 바쁜 일상을 견디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소홀해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로 자신을 긴장시키지 않는 이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발현돼 진다.
대표적인 대상이 가족이다. 그 중에서도 아마, 부모님에게 가장 소홀해지기 쉽다. 그들은 가장 오랜 시간 우리를 이해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생의 수많은 모습은 부모님들을 닮아있다. 그들이 우리를 양육해온 방식과 어릴 때 주었던 영향이 삶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평생 아들러 심리학(개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을 연구해 온 일본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기시미 이치로’는, 현대인들이 효도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 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오늘 교양공감에서는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는 효도의 기술을 알아보기로 한다.
■ 비효율적인 모습으로 효도하자
기시미 이치로는 비효율적인 모습으로 효도하라고 강조한다. 비효율적인 모습의 효도는 시간을 계산해 효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일상의 우선순위 때문에 부모님과의 시간을 미루지 말라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와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형제들이 다 크면 함께 여행가자는 이야기를 줄곧 나눴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49세의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기시미 이치로는 ‘나중에 하자’는 말은 너무 늦어 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한다.
요즘은 부모의 능력이 크게 대두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저출산 문제 역시 ‘아이를 낳을 경제적 준비가 되었는가’에 대한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미뤄지는 경향이 있다.
자식들이 부모님에게 무엇을 바라기 보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못 해주면 가슴을 아파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이들도 꽤 있다.
■ 간병의 순간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는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바라기 보단, 부모님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집안일 같은 사소한 일부터 그 기회는 끊임없이 주어지지만, 관심이 없다면 결코 포착할 수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님에게 분명 ‘간병’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병이 들었다고 해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든 사람이 인생의 진리에 보다 가까이 있다.“ - 기시다 이치로
간병의 순간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부모님과 마주앉아 대화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될 지도.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는 간식이 이거였어?’
‘아버지가 좋아하는 과자 취향이 이렇구나!’
몰랐던 사실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자녀의 고요한 간병이면 어떠하리. 일본의 철학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무언가 하지 않고도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우리 사회는 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 어쩌면 우리가 어린 시절 색칠 공부를 하고, 처음 글을 배울 때에도, 비교적 무뚝뚝했던 우리 아버지들은 따스한 눈길로 우릴 바라보고 계셨을 지도 모른다.
■ 이상적인 부모님에 대한 환상을 지우자
효도의 순간은 그저 나이 든 부모님을 대할 때만 오는 게 아니다. 우린 청소년기가 지나, 성인이 되어가며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상적인 부모님’에 대한 환상을 지우는 일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읽어 준 동화와 현실이 다르듯이.
부모님들이 짓궂은 장난으로 “나도 너 같은 게 나올지 몰랐지”라고 하실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기시미 이치로는 부모란 자식에게 아직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이상하게도 힘이 나는 사람들이라 했다.
그래서 기어코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 궂은일들을 마다않고 해주시는 경우가 있다. 부모님은 이렇게라도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게 기쁘다고 여기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린 그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섭섭함만 안겨드리고야 만다.
가끔은 부모님이 쉽게 해주실 수 있는 작은 부탁을 드려보는 건 어떨까? 평소에 부모님 본인이 잘하셨던 일로.
기시미 이치로는 효도의 기술에 대해 말하며, 부모와 인간이라는 관계를 벗어던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일상적으로 소홀하거나 이기적이었던 ‘나’의 모습들이, 그래도 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말자
모든 관계에 있어서, 서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 프로포즈를 할 때에, “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라고 말해볼 순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부모님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 어머니가 되게 해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라고, 곁에 있어 드리는 일.
바쁜 연말에 꽁꽁 얼어붙은 길 부모님을 모시고 한 끼 식사를 하러 가는 건 어쩌면 일부러 시간을 만들고 또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바쁜데 뭐하러 오니, 일 보렴.”
섭섭한 마음을 감춘 부모님은 구정에야 보겠지, 하실 거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부모는 어떠한 사람일까? 늘 우리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 그럴지도 모른다.
나중에 우리가 후회하지 않도록, 그 효도라는 아름다운 행위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머물러주려 하시는 분들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