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처음 만난 쿡은 새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어. 쿡의 첫인상은 조금 무서웠는데,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 쿡은 아오라키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어. 구름을 뚫은 산. 나는 쿡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모자와도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 했지. 쿡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해가 지는 바람에 내일 다시 찾아 가기로 했어.

저녁이 되자 바람은 더 차가워졌고 나는 옷을 꽁꽁 껴입었지. 숙소에서 따뜻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어. 쿡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밖으로 나가볼까 싶어서 슬쩍 문을 열어 캄캄한 어둠속으로 발을 내딛었어. 쿡은 보이지 않았고 적막만이 감돌았지. 나는 괜히 후 입김을 불며 하늘을 올려다 봤어.

하늘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정말로 수많은 별들이 알알이 박혀있었어. 진부한 표현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지. 쿡도 저 별들을 보고 있을까. 한기로 몸이 떨렸지만 눈을 뗄 수 없었어.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지. 입에선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고 찬사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쿡이 있는 곳을 보았는데 여전히 쿡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어. 간간히 보이는 불빛들은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새어나왔어. 다른 사람들도 지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마무리 짓지 못한 생각들을 내버려둔 채 다시 침대로 돌아왔어.

아침 일곱 시에 알람이 울렸지만 모두 피곤했는지 각자의 알람을 죄다 꺼버렸어. 오늘은 부지런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두 시간을 더 잔 뒤에야 나갈 채비를 했어. 상쾌한 아침. 문득 쿡이 생각나 다시 밖으로 나가봤어. 

쿡은 어제 봤던 그자리에 있었지. 들리진 않겠지만 쿡에게 인사를 했어. 그런데 날씨가 조금 이상했어.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어제보다 몇 배는 더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어. 쿡에게 가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 아쉽지만 쿡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 

짐을 챙겨넣고 퀸즈타운으로 향하는데 갈래길을 만났어. Tasman Lake가는 길. 우리는 아쉬운대로 그곳에 가보기로 했어. 꼬불꼬불한 비포장 도로를 달릴수록 새로운 경치가 나왔는데, 내가 어렸을 적 뉴질랜드를 생각하며 품었던 환상은 더이상 환상으로 남아있지 않았어. 상상만 했던 뉴질랜드가 바로 눈앞에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었지.

한참을 달려 도착한 Tasman Lake&River, Tasman Glacier View, 그리고 Blue Lakes. 우리는 우선 Blue Lakes에 가보기로 했어. 자갈돌로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가니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호수가 나왔어. 깊은 산속에 자리한 호수는 짙은 초록빛을 띠었어. 

이름 모를 새가 헤엄치고 있었고, 겨울 바람에 호수가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지. 사실 그게 전부야.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어. 나도 모르게 숨죽이며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였지. 이따금씩 들려오는 새소리를 제외하곤 고요하기만 했어. 돗자리를 펴놓고 책을 읽어도 좋겠다 생각했지만 우리는 떠날 수밖에 없었어.

우리는 호수를 뒤로하고 Tasman Glacier View로 향했어. 가파른 돌산을 오르고 올라서야 도착할 수 있었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웠어. 나는 방금 짙은 초록색 호수를 보고 왔는데, 여기는 정말 연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어. 은은한 파스텔빛의 초록색이라고 해야할까. 어떤 말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했어. 인어가 살고 있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갈래길에서 표지판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귀찮은 마음에 퀸즈타운으로 갔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쿡의 비밀스러운 호수들. 참 다행이었어. 나는 쿡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게 내심 아쉬웠던 참이었거든.

생각지도 못하게 보물같은 장소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워. 여행을 하면 자주 갈림길에 서게 되고 선택을 해야만 하지.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진 모르지만 말이야. 그런데 어떤 길을 가든 성공과 실패를 따질 필요 없다는 게 여행의 매력이지 않을까. 그래, 나는 그렇게 믿어. 성공한 여행과 실패한 여행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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