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대한민국의 청와대(靑瓦臺)와 조선의 창덕궁 선정전(宣政殿)은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나 임금이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 있는 건물로 지붕이 공통적으로 청기와다.

청기와 지붕의 창덕궁 선정전과 청와대

청기와는 점토로 기와 형태를 빚은 후 염초로 만든 유약을 발라 푸른 빛깔이 나도록 구운 것이다. 조선 성종과 광해군 시대에 청기와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푸른색 물감 안료인 회회청(回回靑)은 아라비아(주로 이란 지역)에서 중국을 통해 수입해 금(金)보다 더 비싼 귀한 물건이었다. 때문에 궁궐에서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태종 때 권방위라는 관리는 태상전(太上殿)에서 쓰는 청기와를 훔쳐 팔아먹으려다 들켜 먼 지방으로 귀양을 갔을 정도다. 동궐도에는 1647년(인조 25년) 창덕궁의 중건 때 인경궁의 정전과 편전을 옮겨 지은 징광루와 선정전(宣政殿)에 청기와가 있지만 현재는 선정전에만 남아 있다.

동궐도 상의 청기와 선정전

선정전은 주로 임금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경연)하며, 이웃나라 사신을 만나는 등의 일상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집무 공간(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었다. 

세조7년(1461년)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 또는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라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종임금 때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를 폐비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중종 이후에 이곳은 임금이 ‘훙어[薨御]’(죽음)하고나서 장례와 제사를 치르기 위한 시설로 오랜 기간 사용돼 편전기능이 희정당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다. 선정문과 선정전 사이에는 변덕스런 날씨에도 제례활동이 방해받지 않도록 ‘천랑’이 설치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 내부는 어좌와 일월오봉병, 천장에는 봉황을 단청했다.

태종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로 왕의 권력을 가장 강하게 휘둘렸던 왕이었지만 사관을 무척 두려워했다. 태종4년 실록에는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해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마라." 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관은 거리낌 없이 그 어명까지도 사실 그대로 기록으로 남겼다. 영조임금 역시 약방에서 들인 탕제를 마시던 중 갑자기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놀라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임금의 이러한 행동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해 우리에게 작은 미소를 짓게 한다.

동궐도상의 창덕궁 예문관

조선시대에는 역사를 편찬하기 위한 기구로 춘추관이 있었다. 이곳에서 역사의 기록과 편찬을 담당하는 관리가 기사관이다. 왕이 쓰는 각종 의례문서·명령서 등을 짓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곳이 예문관이다. 예문관의 봉교 이하 전임관원은 기사관을 겸하고 있어서 한림이라고 하며 이들을 흔히 사관(史官)이라고 한다. 

한림 8인 중 2사람과 승정원 주서 1명이 선정전 등 주로 왕과 신하들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하여 기록한다. 한림은 임금의 좌우에서 임금의 말과 행동을 받아 적어 오늘날의 속기록에 해당하는 초책을 작성하고 주서는 초벌 원고인 당후일기를 썼다. 

승정원은 왕의 최측근에서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동궐내각사 선정전 앞쪽에 위치하였지만 지금은 건물은 사라지고 없다. 조선 중기 이후 주서도 사관의 역할을 하였다. 사관의 일은 매우 고된 일이어서 일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였고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어탑과 한림(사관)2명, 주서1명의 자리배치도

조선시대 임금이 되려면 경학과 역사를 배워야했다. 왕들이 나라를 이끌어감에 있어서 역사를 배워야한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국정운영에 예전의 역사적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들은 승정원일기를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승정원에 보관돼 있는 기록을 보고 이용할 수 있었지만 왕조실록은 사고에 보관해 이용이 어려웠다.

청와대와 선정전 기와가 청기와이듯 두 건물의 기능 역시 나랏일이 펼쳐지고 논의되는 현장이며 사관들이 활동 하는 곳이다. 뉴 미디어와 SNS가 발달한 현대에는 국민 모두가 사관이다. 연산군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역사뿐이다“라고 했다. 

지붕 위 청기와의 청색은 맑음을, 방향은 시작을 의미하는 동쪽을 상징한다. 나라의 위정자들은 국민들을 위해 맑고 투명한 대덕(大德)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되 하늘과 국민들을 두려워하고 사관의 사필을 경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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