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엘블랑꼬 할아버지의 타코집을 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부에나비스타역 주변을 정처 없이 걸으며 많은 음식점들을 지나쳤으나, 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S는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했지만 나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조금만 더 걸어보자며 S를 달래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숨이 막혔고, 우리는 연신 손부채질을 하였다.

거리는 사람이 몇 없어 한산했다. 킁킁. 어디선가 더운 공기를 가르며 고소한 옥수수 냄새가 났다. 우리는 홀린 듯이 냄새를 따라갔는데, 저 앞에서 주황색 앞치마를 곱게 두른 할아버지가 구슬땀을 흘리며 또르띠아를 굽고 있었다. 게다가 연회색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정장 구두를 신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타코에 대한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타코집 앞에서 멈춰 섰다. 철판을 들여다보니 둥글게 펴 바른 옥수수 반죽에서 기포가 퐁퐁 솟아올랐다. 뜨거운 열기에 미처 가라앉지 못한 기포가 그대로 구워졌다. 철판 옆엔 갖가지 고기 재료가 통에 들어있었고, 딱딱하게 굳은 기름이 번들거렸다.

하고 많은 타코집 중에서 왜 하필 이곳에서 멈춰 섰는진 우리도 모른다.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너도나도 또르띠아며 고기며 구워댔지만, 어쩐지 선뜻 들어가기가 어려웠었다. 여기는 무언가 다를 거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걸까. 당최 알 수 없었다.

철판 앞을 기웃거리는 우리에게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굉장히 빠르게 무어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러나 할아버지는 우리의 웃음을 오해하곤 더 빠르게, 더 많이 말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결국 더 이상 할아버지를 속일 수 없어 “노 아블라르 에스빠뇰!(No hablar Español, 스페인어를 하지 못합니다)”이라 말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팔을 활짝 펴더니 ‘그랬구나’라는 듯 누런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넉살이 좋아서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양하게 손질 된 고기들을 유심히 보았으나 겉보기엔 모두 비슷해 보였다. 그나마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향해 손으로 가리키며 “우나!”라고 말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거)하나!” 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할아버지는 우리의 어설픈 주문이 귀여웠는지 실실거렸다. 

급기야 타코를 만드는 동안 우리에게 스페인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유아들에게 단어를 가르치듯, 고기 부위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하였다. 발음하기도 힘든 단어들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우리는 할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따라 말했다. 타코집에서 스페인어 수업이 열린 것이다. 할아버지의 열정적인 강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 개의 단어 중에서 단 한 단어를 배울 수 있었다.

옼호, 옼호하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눈을 가리켰고, 옼호, 옼호하며 우리는 우리의 눈을 가리켰다. 할아버지의 명쾌한 설명에 눈이 옼호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한동안 ‘옼호’만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묘한 유대감을 쌓는 사이 타코가 완성되었고, 우리는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벽엔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멕시코를 표현한 그림과 사진들이 군데군데 붙어있었고, 색색의 페인트로 쓰여진 단어들이 정갈해 보였다. 다섯 개 뿐인 하얀 정사각형 테이블 위엔 초록색 살사와 빨간색 살사가 그릇에 가득 담겨있었다. 우리는 구석자리에 앉아 타코를 기다렸다.

곧이어 적당히 구워져 노란빛을 띠는 또르띠아 위에 잘 익은 고기들이 얹어진 타코가 하얀색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빨간색 살사를 듬뿍 뿌리곤 단숨에 타코를 베어 물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육즙과 붉은 살사가 섞여 피처럼 뚝뚝 흘러내렸다. 게다가 또르띠아는 바삭하면서 부드럽다. 나는 한 입을 먹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연신 엄지를 치켜 올렸다. 할아버지, 대박!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할아버지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전히 우리가 신기한 눈치다. 

할아버지는 또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스페인어로. 알아듣든 말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말했고, 우리는 우리대로 말했다. 뒤죽박죽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수많은 질문 중에서) 두 질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드디어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들뜬 우리는 이름과 꼬레아노, 꼬레아노라고 연신 말했다. 어떻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냐며 신기해하던 할아버지가 카운터에서 메모장을 들고 나왔고, 검정색 펜으로 무언갈 휘갈겨 쓰더니 우리에게 내밀며 “미 놈브레(Mi nombre, 내 이름), 미 놈브레”라고 말했다. 'Elblanco(엘블랑꼬)'. 할아버지의 이름이다.

이제 우린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기념으로 타코를 몇 개 더 시켰다. 신난 할아버지는 꼬레아노, 꼬레아노 노래를 부르며 타코를 만들었고, 우린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엘블랑꼬 할아버지의 타코를 잊지 않기 위해 남김없이 먹었다. 감히 단언하건대, 엘블랑꼬 할아버지의 타코는 아마 멕시코에서 제일 가는 맛일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저 “무이 비엔”을 여러 번 말하는 것으로 그쳤다.

가게를 나오니 뜨거운 태양이 반겼다. 나는 한 손으론 해를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론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다신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섭섭했다. 우리의 아쉬움을 읽었는지, 문간에 서서 우릴 배웅하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옼호, 옼호라고 말했다. 피식, 웃어버렸다.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했다. 옼호, 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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