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수십 년 전, 섬 관리인 돈 줄리안 산타나는 우연히 운하에서 물에 빠진 소녀를 목격한다. 어떻게든 구하려고 애를 썼던 산타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익사한다. 산타나가 눈앞에서 목격한 생생하고 무력한 죽음의 공포는 망령이 되어 그를 따라다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소녀의 시체가 있던 장소에서 한 인형이 발견된다. 악의 기호. 산타나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물 위를 떠도는 소녀의 혼을 기리기 위해 인형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십육 년, 속죄의 시간 동안 산타나는 섬 전체를 인형으로 뒤덮는다. 나무와 울타리와 지붕에 인형을 매달고 걸고 부착한다.

햇빛, 바람, 비는 인형들을 분해한다. 눈, 팔, 다리는 인형들에게서 해체된다. 그리고 2001년, 산타나는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똑같이 익사체로 발견된다.

이는 멕시코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소치밀코에 있는 한 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낡은 인형들이 지배하는 섬을 산타나가 만든 건 사실이지만 그 기원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산타나 본인은 익사한 소녀의 혼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했고, 마을 주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무인도에 정착해 아무 이유 없이 한 행동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쩐지 나에겐 신빙성이 떨어진다.

멕시코에 오기 전부터, 섬뜩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형의 섬에 가기를 고대했던 나는 S와 함께 소치밀코를 찾았다. 역에서부터 화살표를 따라가니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EMBARCADERO BELEM’이라고 쓰인 아치형 입구를 지나 선착장에 도착했다. 호수 위엔 화려한 장식의 보트들이 둥실거렸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뱃사공 무리에게 말을 걸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뻔히 벽에 ‘한 시간, 한 배, 삼백오십 페소’라고 적혀있었지만 뱃사공들은 우리에게 한 사람당 천오백 페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시간을 타면 십오만 원이라는 소리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벽을 가리키며 항의했다. 뱃사공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더니 그건 멕시코인에게만 적용되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말이 안 된다며 뱃사공 무리와 한동안 승강이를 벌였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시간 삼십 분, 한 배, 오백 페소’로 타협했다. 눈 뜨고 코베인 격이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담당 뱃사공이 되었고, 우리는 찜찜한 기분으로 배에 올랐다. 뱃사공 무리와 꽤 치열한 승강이를 벌였기에 혹시 이 뱃사공이 우리를 물에 던져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웠다. 어제 뻴리뻬가 배를 타고 술을 마시던 사람이 흥에 겨워 다이빙을 하다 죽는 경우도 간혹 있다며 한 얘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맨정신으로 다이빙을 당할 수도 있었다.

뱃사공은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못했기에, 나는 계속해서 “이슬라 데 무녜까쓰!(인형의 섬)”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가 출발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진이 빠져버렸다. 호수를 가르며 배가 전진했다. 고요하게 뱃놀이를 즐길 줄 알았건만, 자주 상인들이 쪽배를 타고 곁으로 와 음식이나 물건을 보이며 호객을 했다. 곁을 지나는 한 여행자 무리는 마리아치들을 불러다 작은 파티를 열었다. 그들은 배에서 소박한 음식과 맥주를 나눠 먹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배가 멀어지면서 마리아치의 음악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음식도, 술도, 음악도 없는 뱃놀이라니. 뱃사공은 왜 아무것도 안 사고 먹지 않느냐며 의아해했다. ‘너희들이 바가지 씌우는 바람에 저녁 먹을 돈도 간당간당하다’는 말을 스페인어로 또박또박 말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뱃놀이가 아니라 인형의 섬을 가는 게 전부였기에 유흥은 생각지 못해서 돈을 적게 가져온 참이었다.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섬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수 위의 섬들에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리를 키우고, 밭을 일구고, 빨래를 널고, 이웃과 소소한 담소를 나누었다. 주민들은 쪽배로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과 소통했고, 그들의 쪽배 사이로 요란하게 꾸며진 우리의 배가 지나갔다.

뱃사공이 도착했다며 어떤 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봉제 인형, 아기 인형, 곰 인형 등 갖가지 인형들이 갓 영글어진 열매처럼 나무에 걸려 있었다. 인형 나무 뒤엔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뱃사공이 현재는 섬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비보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뱃사공은 섬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배를 육지에 대주었다.

우리는 섬 언저리를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눈알이 빠지고, 목이 꺾이고, 가슴께가 찢어진 인형들이 딱딱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산타나는 인형들이 낡아도 교체하거나 수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났고, 죽었지만 살아있는 듯했다. 아니, 이들이 매일 밤마다 부활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인형들은 섬을 찾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이곳을 지키고 싶을는지 모른다. 수면 아래에 소녀와 산타나의 죽음이 가라앉아있다.

세트장 같은 인위적인 느낌에 번뜩 정신이 들다가도 산타나를 생각하면 다시 섬에 빠져들게 되었다. 깔깔깔. 인형들이 나를 비웃는 듯하다. 나는 애써 인형들을 무시하며 철조망 너머를 건너다보았지만 빽빽한 수풀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섬 주위를 한 바퀴 돌 수도 없는 지형이라, 우리는 아쉽게 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배를 돌려 선착장으로 향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섬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을 응시했다. 내내 미스터리였던 인형의 섬을 직접 보았지만 도리어 환상으로 남았다. 아마도 인형들은 계속해서 이 섬의 환상을 지킬 것이다. 산타나, 소녀,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 호수. 나는 아직도 환상 속의 인형의 섬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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