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마녀사냥 ‘악플’, 실효성 있는 방지책 마련돼야

[공감신문 시사공감] 15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선 최대 50만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마녀사냥이라는 명목 하에 처형대 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다. 

당시 유럽은 잇따른 전쟁과 기근,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극도의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대중들은 이 모든 불행이 악마와 손을 잡은 마녀 때문이라고 믿었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해낸 영웅, 잔 다르크마저도 마녀로 몰려 19세 꽃 같은 나이에 불길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마저도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위키백과]

그렇다면 그로부터 수백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기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죄 없는 이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식의 마녀사냥은 아직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다만 그 처형대가 너른 광장에서 온라인상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이러한 ‘현대판 마녀사냥’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대상이 연예인 등 유명인에게만 적용되다가 최근에는 일반인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댓글 실명제, 선플운동 등 악플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악성댓글이 더 악질적이고 지능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이라는 용어마저 등장했다. 사이버불링은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 괴롭힘을 뜻하는 단어다.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학교폭력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곤 하지만, 대상이 누군지를 떠나 악플을 비롯한 언어폭력, 개인정보 유포, 스토킹, 루머생산 등이 모두 사이버불링에 포함된다. 

사이버불링은 온라인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괴롭히는 행위를 통칭한다. [the blue diamond gallery]

악플로 인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떤 이의 기사가 뜰 때마다 대대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곤 하지만, 어쩐지 다 그때뿐인 것만 같다. 어쩌면 뾰족뾰족한 인터넷 댓글 문화에 오히려 점점 무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는 현대판 마녀사냥, 사이버불링에 관한 이야기다. 

 

■ 악플의 역사(?)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악성댓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인터넷이 보급화 되고 상용화됨과 동시에 그 역사가 시작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주 대표적인 예로 10만 안티를 이끌었던 가수, 문희준이 있다. (그에게는 아픈 과거이기에 미리 사과의 뜻을 전한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댓글 30만 개라니(...) [위키백과]

2000년대 초, 당시 인터넷 좀 했다 하는 분들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기억하시고 계실 테다. H.O.T. 해체 후 솔로로 나서며 로커로의 변신을 선언했던 문희준에게 쏟아진 악플의 강도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나온 모든 방송과 인터뷰 자료는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노랫말 가사나 이름을 인용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유행어가 번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2013년, 그는 한 방송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지만, 악플로 인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고 그는 고백했다. [KBS 2TV 달빛프린스 캡쳐화면]

“제가 사실은 불안한 심리상태예요, 계속. 1시간을 딱 봤을 때 한 50분은 원래 성격이에요. 그런데 10분은 남, 그러니까 주위에 내 사람들이 사라지고 혼자 남는 시간 있잖아요? 검은 구름처럼 이렇게 누르는 느낌이 있어요. 아직도.”

사이버불링을 논할 때 타진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타진요는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의 약칭이다. 미국의 손꼽히는 명문대 스탠포드 출신인 가수 타블로에게 다짜고짜 학력위조 의혹을 들이민 것이 그들의 시작이었다.  

당시 타진요 카페 메인화면 [나무위키]

그저 몇 명의 음모론자들의 이야기로 끝이 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엄정수사를 지시하는가 하면,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을 예의주시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인터넷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안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그뿐일까.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몇몇 연예인의 자살원인으로 악플이 꼽힌 것도 여러 번이다. 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피해자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피해를 호소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고 나서야 자정이 되는 이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일반인으로까지 번지는 사이버불링
온라인 커뮤니티의 몸집이 거대해지고, SNS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반인들도 사이버불링의 피해에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게 됐다. 별 뜻 없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논란이 돼서 폭격을 당하는 일도, 거짓 글로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확인 없이 커뮤니티의 글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들도 질타의 대상이 됐다. [MBC 뉴스 캡쳐화면]

지난해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40번 버스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서울 240번 버스 기사가 어린아이 혼자만 먼저 내린 것을 확인하고 따라 내리려는 엄마의 행동을 무시한 채 문을 닫아버렸다. 다음 정류장에서 아이 엄마가 내리자 버스기사는 아이엄마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내용의 글은 삽시간에 퍼지며 논란이 됐다. 

버스기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은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버스 내부 CCTV와 버스기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처음 올라온 글은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됐다. 이후 버스기사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거둬졌지만, 당사자는 이때의 상처를 여전히 잊지 못하겠다 토로한다. 

전국적으로 때 아닌 마카롱 열풍이 불고 있다(...) [pxhere/CC0 public domain]

다소 견해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최근 때 아닌(?) 마카롱 열풍을 불러오게 한 ‘마카롱 10개 사건’도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평소에도 마카롱을 좋아한다는 A씨는 경기도의 한 디저트 가게에 들러 마카롱 11개와 케이크 한 조각,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A씨는 마카롱을 밖에 들고 나갔을 때 녹을 것을 우려해 그 자리에서 마카롱 11개를 모두 먹었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해당 디저트 카페의 SNS에 “마카롱은 칼로리가 높아 하루에 한 개만 먹는 디저트입니다. 구입하시고 한꺼번에 여러 개 먹는 디저트가 아니에요”란 글이 게재된 것. 

이 댓글로 A씨는 자신을 지칭하는 글임을 확신했다 전해진다. [인스타그램 캡쳐화면]

거기다 “앉은자리에서 잘 모르시고 막 열개씩 드세요”라는 카페 사장의 댓글까지 확인한 A씨는 이 SNS글이 자신을 저격한 것이라 확신했다고. 이 같은 A씨의 사연이 이슈몰이를 하면서 비난여론이 쏟아지자 디저트 카페 사장은 사과문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A씨의 글을 동종업계의 음해라고 치부하는가 하면, A씨를 기억도 하지 못한다며 내내 억울함만 호소한 탓에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결국 해당 디저트 카페는 당분간 영업을 중단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앞서 억울하게 당한 사이버불링 피해 사례들과 비교하자면, 디저트 가게의 사례는 확연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다. 

개인과 개인 간의 논쟁이 너무 극대화 되는 점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당사자 간에 사과만으로도 충분히 끝날 수 있었던 해프닝이 전국적인 이슈로까지 떠오른 것은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글, 하나의 댓글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파급력과 SNS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그런 점에서 초반에 A씨가 다이렉트 메시지로 카페 사장에게 해명을 요구했을 때 가게 측이 정중한 사과만 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다만 개인 간의 갈등과 다툼마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조금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 심각해지는 사이버불링, 적절한 대응은
언급한 사례들 외에도 사이버불링 피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한창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열풍이 불던 때에는 미투 고발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털이’가 이어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이버불링 피해자들의 후유증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라고 전해진다. [pxhere/CC0 public domain]

직접적인 언어폭력이나 물리적 폭행보다 사이버폭력이 무서운 점은 나를 공격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이버불링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타인을 두려워하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다니던 학교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가족, 친구들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들도 적잖은 상황이다. 

피해자들의 후유증은 이렇게나 깊게 남겨지지만, 악플에 대한 처벌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로 가해자를 고소·고발할 수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는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상황. 

대검찰청에 따르면 작년 명예훼손 사건은 총 1만1534건이 접수됐는데, 이 중 62%가량에 해당하는 7170건에는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이 가운데 기소유예는 798건에 달한다. 기소가 된다 한들 초범의 벌금은 1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민사소송을 벌이더라도 위자료는 300만원을 넘지 않는 수준에 그친다. 

미약한 처벌이 악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냈다는 지적도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게다가 페이스북이나 텀블러, 트위터 등 해외에 기반을 둔 SNS에서 발생한 사건은 처벌이 훨씬 더 어렵다. 이들 사이트가 경찰에 정보제공을 해주지 않으면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에 따라 사이버상에서 이뤄진 폭력 역시도 정보통신망법이 아닌 형법에 편입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또 이 같은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사건은 2012년 5684건에서 지난해 1만4908건으로 4년 사이 3배가량 늘어났다. 

사이버폭력에 우리 사회가 둔감해져가고 있다는 우려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이버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교육이 더욱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은 물론이고, SNS나 댓글의 파급력에 대한 교육도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 모니터 뒤에 사람 있다 
예전에는 뭐 그런 말도 있었다. 악플도 관심이라며,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하기도 하더라. 실제 대중의 관심과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댓글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 악플투성이라 하더라도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이 더 낫단 말을 하기도. 

결국 댓글을 쓰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같은 사람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하지만 그런 연예인들마저 최근에는 ‘선처는 없다’는 강경대응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을 들먹이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등 악플의 수위가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도 못 버틸 정도라는데 일반인 피해자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오늘 시사공감 팀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니터 뒤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오늘 생각 없이 남긴 댓글 한 줄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위로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해두시길 바란다. 

물론 정당한 비판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이 도를 지나치고, 과열되는 양상을 띠게 되면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댓글문화가 조성되기를 바라겠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다. 악플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역시도 과도기에서 겪는 성장통으로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국민들의 인식개선이 함께 이뤄진다면, 머잖은 미래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건강한 댓글문화가 조성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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