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살펴보는 주말추천 교양공감 포스트
[공감신문 교양공감] 고대부터 인간은 늘 상상을 해왔다.
아직까지 많은 것을 알지 못했을 과거에는 어째서 천둥번개가 치는지, 어째서 비가 내리는지, 어째서 사람이 죽는지 등에 대해 알지 못했을 터다.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현상에 나름의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덧붙였고, 그것이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 등 고대 종교로 발전하기도 했다.
설화와 신화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경외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커다란 소리를 내며 지면에 내리꽂히는 천둥번개를 ‘신의 단죄’라 보기도 했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 현세와는 다른 지하의 세계로 가게 된다고 여기기도 했다.
상상에 의해 탄생한 이 얘깃거리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람들은 자연현상 등을 신격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적 존재들 사이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천둥을 부르는 신은 엄청난 바람둥이라서 온갖 곳에 씨를 뿌리고 다녔다던가, 때문에 그의 아내인 결혼과 가정의 신은 질투심이 많다던가, 아니면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 그 기원에 신들 사이의 권력다툼이 있었다던가 등등.
이런 얘깃거리들은 점차 더 가지를 뻗어나갔다. 어느 반인반신의 영웅은 괴물을 때려잡아 그 이름을 드높였고, 또 다른 괴물과 사투를 벌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됐다는 등. 아마 고대에도 그런 분들이 계셨던가보다. 진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걸 좋아했던 분들 말이다. 이를테면, 현대의 ‘소설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들.
그 입담꾼들에 의해 신들, 영웅들은 여러 고난과 역경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숭배 받았던 자들, 신 아니면 명망 높은 영웅들은 이 괴물들을 물리치는 것을 시련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오늘의 교양공감 포스트는, 그런 고대의 입담꾼들에 의해 탄생한 괴생명체들, 괴물들이 사는 땅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모험의 시간이다.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은 미지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이곳의 생명체들은 극히 위험하거나, 매우 난폭하거나, 혹은 산처럼 거대해 여러분을 두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이것들은 아직까지 우리 눈앞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까. ‘상상의 괴물’에 불과하니까.
■ ‘세계 뱀’, 요르문간드
명칭 : Jǫrmungandr
등장 : 북유럽 신화, ‘에다’
퇴치 여부 : 토르에 의해 처치됨(이때 토르도 사망)
북유럽 신화에는 ‘라그나로크’라는 종말의 때가 예견돼 있었다. 그 때가 오면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고, 여러 신들이 죽어나갈 것이며, 온갖 자연재해가 닥쳐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라그나로크’의 시간에 바다 밑에 잠들어있던 거대한 뱀이 지상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맹독을 뿜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그 거대한 뱀이 바로 ‘요르문간드’다.
이 초대형 뱀은 몸집의 크기가 세계(미드가르드)를 빙 둘러싸고도 남아 스스로가 자기 꼬리를 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세계 뱀’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밖에도 요르문간드는 이빨에 치명적인 맹독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문간드를 처치한 것은 천둥의 신, 토르였다. ‘우트가르드-로키(우리가 알고 있는 로키와 다른 존재다)’는 요르문간드를 고양이로 둔갑시킨 뒤, 토르의 힘을 시험해보겠다며 그에게 눈앞의 커다란 고양이를 들어 올려 보라고 했다. 토르의 힘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세계를 한 바퀴 두를 만큼 거대한 뱀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는 고양이의 앞발 하나만을 간신히 들어 올리는 데 그쳤다. 이것이 토르와 요르문간드의 첫 번째 조우였다.
요르문간드와 토르는 도합 세 차례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 중 두 번째는 토르가 거인 히미르와 함께 낚시 여행을 떠났을 때다. 당시 토르는 거대한 황소 머리로 요르문간드를 낚아 올리게 됐는데, 이때는 둘의 대결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히미르가 겁에 질려 낚싯줄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마지막 만남(라그나로크)에서 토르는 기어코 요르문간드를 무찔렀다. 토르가 그의 망치 ‘묠니르’를 들고 사투를 벌인 덕이라고. 그러나 묠니르로 요르문간드의 머리통을 박살낸 토르도 그 뱀의 맹독에 중독돼 버렸는지라, 아홉 걸음을 뗀 뒤 쓰러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요르문간드는 결국 죽었지만, 스러져가면서도 ‘그 막강하고 강대한 토르를 죽였다’는 위업을 달성하게 됐다.
■ 소 머리를 한 수인(獸人), 미노타우로스
명칭 : Minotaur
등장 : 그리스 신화
퇴치 여부 : 테세우스에 의해 퇴치됨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에게 단단히 화가 난 일이 있었다.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기로 한 하얀 소를 바치지 않았던 것. 때문에 복수의 일환으로 그의 아내 파시파에가 ‘숫소’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버렸다. 일국의 왕비였던 파시파에는 결국 그 숫소와 정을 통하게 됐고, 이런 연유로 파시파에가 낳게 된 것이 바로 소 머리를 한 괴인(?), 미노타우로스다.
미노타우로스는 탄생 이후부터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성격은 난폭하고, 주식이 ‘사람’인지라 사람들을 마구 습격해 미노스 왕에게는 골칫덩어리였다. 결국 미노스 왕은 발명가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둘 수 있는 미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그를 가두는 데 성공한다. 이후 미노스 왕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식으로 미노타우로스의 허기를 달래려 한다. 이를 위해 ‘약소국’에 속했던 아테네에 “주기적으로 인간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를 한다.
그러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나서게 됐다.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기 위해 스스로 크레타 섬의 미궁으로 떠난 것이다. 테세우스는 크레타에 당도한 뒤, 공주 아리아드네를 꼬드겨 미궁을 파훼할 단서를 알아낸다. 실타래를 풀면서 미궁에 들어가면, 그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알아낸 해결책이었다. 더군다나 아리아드네가 지닌 마법의 칼도 얻어낸 테세우스는, 결국 손쉽게 미노타우로스를 ‘쓱싹’할 수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원치 않게 저주로 태어난 존재이거늘,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궁에 갇히고, 영웅에게 퇴치당하는 등 온갖 일을 겪었다. 테세우스에게 미노타우로스의 존재가 ‘시련’이었을지 몰라도, 어쩌면 미노타우로스에겐 삶 자체가 시련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불운한 운명을 살다 간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이제 여느 게임의 ‘중간 보스’급으로 등장하며 기구한 팔자를 이어가고 있다.
■ 북유럽판 ‘언데드’ 괴물, 드라우그
명칭 : Draugr
등장 : 북유럽 민담
퇴치 여부 : 특별히 알려진 바 없음
판타지 배경 게임에는 흔히 ‘언데드(되살아난 시체 따위)’ 괴물이 등장하는데, 이런 부류의 괴물은 북유럽 민담에서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말하자면 ‘북유럽 감성’ 좀비랄까?
언데드 괴물 ‘드라우그’는 한 번 죽음을 겪은 뒤 부활한 시체다. 이들은 주로 무덤 등의 보물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간혹 생전에 원한이 있던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여러 민담에서는 드라우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을 공격한다고 묘사되고 있다. 이들은 몸집을 부풀리는 등 거대화한 뒤 사람을 ‘압사’시키거나, 흡혈을 해 죽이기도 한다. 한 가지 무서운 점은, 이들이 그저 단순히 무덤과 부장품들을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가까지 나타나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 포악하고 잔악한 괴물, 만티코어
명칭 : Manticore
등장 : 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 설화
퇴치 여부 : 확인된 바 없음
만티코어의 첫 등장은 기원전 4세기, 크테시아스의 ‘인도 지리지(地理誌, 감탄사 아님)’라고 알려져 있다. 이 괴물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영화, 게임 등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위험성과 포악함에 대한 묘사는 ‘잡몹1’ 정도에 그치는 듯 하다. 북동부 아프리카, 서아시아, 인도 및 말레이시아 등지의 숲속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이 괴생명체는 사실 설화 등에서 ‘퇴치됐다’는 묘사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만큼 흉포한 존재라는 방증이겠다.
만티코어의 외형에 대한 묘사는 보통 다음과 같다.
“톱니처럼 서로 정확히 맞물리는 날카로운 이빨은 3열로 늘어서 있고, 얼굴과 귀는 인간의 것인데 눈은 회색이며, 사자와 닮은 몸은 피처럼 붉고, 전갈의 것과 같은 꼬리에는 상대를 찔러 공격할 수 있는 뾰족한 가시가 있다. 목소리는 판(그리스 신화)의 피리와 트럼펫을 합친 것 같이 들리며, 매우 재빠르고 인육을 가장 좋아한다”
무시무시한 외형에, 전갈 같은 꼬리의 맹독. 게다가 인육을 가장 좋아한다는 이 포악한 괴물은 ‘무장한 군대와 마주쳐 단 한명도 남김없이 갑옷 째 씹어 삼켰다’는 기록까지 전해질 만큼 위험천만한 괴물로 여겨졌다. 게다가 앵무새처럼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었기 때문에(장산범?), 만약 이 기록대로의 만티코어가 세계 어딘가에 실존했었다면 끔찍한 피해 사고도 많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괴물이 상상의 존재라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 층간소음 희생자? 식인 괴물 그렌델
명칭 : Grendel
등장 : 베오울프 서사시
퇴치 여부 : 베오울프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 처치됨
고대 영어 서사시 ‘베오울프’에 등장하는 그렌델은 식인을 하는 인간형 괴물이다. 덴마크의 국왕 ‘흐로스가’가 성대한 잔치를 열자, 그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식인 괴물 그렌델이 성을 습격하게 된다. 그렌델이 소음에 너무 예민했기 때문.
잔뜩 화가 난 그 괴물은 잔치에 난입해 성의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떠나갔는데, 그때 상당한 재미를 봤는지 이후로도 12년 동안이나 흐로스가 왕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의 영웅 베오울프가 덴마크에 당도한다.
명성이 드높았던 베오울프에게 흐로스가 왕은 “그렌델을 무찔러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궁에 머무르던 베오울프는 궁으로 습격해온 그렌델을 마주하게 되고, 고투 끝에 팔을 뜯어내버렸다고 한다. 팔을 잃은 그렌델은 당황해 자신의 굴로 달아나고, 베오울프는 그 뒤를 추격해 결국 그렌델을 처치하는 데 성공한다.
베오울프 서사시는 긴 역사를 지닌 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기도 했다. 그중 2007년 개봉한 영화 ‘베오울프’에서 그렌델의 정체는 흐로스가 왕과 ‘물의 마녀’ 사이에서 나온 자식으로 묘사됐다. 말하자면, 아빠(흐로스가 왕)가 시끄럽게 굴어서 난동을 부리다가 아빠의 친구(베오울프)에게 격퇴당한 격이다. 또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소음공해’로 피해를 봤을 뿐인 그렌델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 괴물은 아니고, ‘심술궂은 요정’ 트롤
명칭 : Troll
등장 : 북유럽 민담
상태 : 특별히 알려진 바 없음
만약 여러분이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봤다면, 트롤을 떠올릴 때 거대한 몸집에 아둔한 지성을 지닌 괴물을 연상하실 것이다. 혹은,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저라면 신발 신는 것을 싫어하고 부두교를 숭배하는 인간형 종족을 떠올리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북유럽 민담 속 트롤의 모습은 그것들과 조금 다르다. 사실, ‘괴물’이라기 보다는 심술꾸러기 요정쯤에 가깝다고 한다.
교량 아래에 집을 짓고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이 나쁜 요정들은 민가에 숨어들어와, 몰래 트롤의 아기와 인간의 아기를 바꿔치기하는 ‘체인질링’ 장난을 친다.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마구 울어대고, 심한 장난을 친다거나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당황하게 된다고.
이밖에도 트롤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온갖 못된 장난을 일삼는다. 온라인 게임에서 민폐를 끼치는 것을 ‘트롤링(Trolling)’이라 부르는데, 이 괴물의 못된 장난들이 그 어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 알고 보면 깊은 사연을 지닌 괴물들
우리는 종종 서적, 영화, 혹은 게임을 통해 그들과 만나곤 한다. 우리와 마주친 그 존재들은 대단히 위협적이고, 포악하거나, 혹은 압도적으로 거대해서 경외감까지도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그런 신비로움이 이제는 조금 덜한 듯도 싶다. 왜냐고? 여러분이 그간 해왔던 경험을 되짚어보시길.
그동안 ‘환상 속의 괴물’이라 하면 쉽게 떠오르는 좀비, 고블린, 드래곤(용) 등은 우리에게 이미 너무나도 익숙하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 괴물들은, 그간 온갖 서적과 영화나 게임 등에서 묘사되면서 대중들에게 말 그대로 ‘줄기차게’ 노출돼 왔다.
아마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좀 더 공감하실지 모르겠다.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고, 검과 마법이 있는 세계에는 항상 ‘오크’니, ‘오우거’니 하는 것들이 등장한다. 그 지성 없는 미물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생소하지도 않고, 신비하지도 않게 느껴진다. 그저 얼마만큼의 경험치에 불과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여러 창작물 속에서 가볍게 마주치거나, 혹은 주인공이 ‘이겨내야 할 악당’ 쯤으로 여기는 이 괴물들에게도 다 저마다의 깊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제 잘못도 아닌데 저주를 받아 태어나고, 영웅에게 죽임을 당한 미노타우로스를 생각해보자. 또, 유달리 귀가 예민한 탓에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 그렌델도(물론 이 괴물들이 인간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여러분이 여러 문학작품, 영화, 게임 속에서 마주치는 그 괴물들 중 대부분은 기원설화, 전승이 있을 것이다. 혹은 현대에 들어서 새롭게 창작된 괴물이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탄탄한 배경이야기가 존재할 터다. 그런 기묘한 괴물들에게 칼끝부터 겨누기 보다는, ‘주인공 일행을 가로막는 나쁜 놈들’로 여기기보다는 한 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듯 하다. 분명 여러분이 매력을 느낄 만 한 여러 이야기들도 숨겨져 있을 테고.
-참고서적
판타지의 주인공들-들녘
환상동물사전-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