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할 때는 취향에 맞는 음악만한 것이 없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마치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특정한 시간, 상황, 혹은 장소에서 정말 ‘딱’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게 됐다.

눈 앞의 풍경과 귀에 들려오는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음악을 듣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지금 내 눈 앞의 경치가,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과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순간들.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 그런 종류의 것들을 우리는 뮤직비디오라 부른다. 이 ‘뮤직비디오’라는 단어는 어느덧 쓰임새가 조금 더 넓어졌다. 우리는 음악과 영상이 매우 잘 어우러지는 것을 두고 ‘뮤직비디오 같다’는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개개인 모두가 ‘1인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엔, 짤막한 클립 영상에 배경음악을 삽입해볼 수도 있다. 물론 영화 중에도 뮤직비디오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영화 '다크 나이트' 속 조커의 등장 장면에서 기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음악 덕분이라는 것. [다크나이트 영화 장면]

어떤 영화는 특정 장면에서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신경질적인 현악기를 배치해놓는다. 또 어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질적인 불편감을 선사하기 위해, 폭력적인 장면에 잔잔하고 평화로운 곡을 배치한다. 감독의 그런 의도와 관객의 감상이 잘 맞아떨어지면, 마치 긴 뮤직비디오 한 편을 보고 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보고 듣는 즐거움을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는, 마치 뮤직비디오와 같은 매력을 지닌 영화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런 영화들은 대체로 다른 요소들보다 영상미, OST로 특히나 주목을 받는다. 음악과 영상미가 돋보이는 스타일리쉬한 영화들은 무엇이 있을까?

※ 다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베이비 드라이버

-어바웃 타임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비틀즈 팬들에게도 나름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영화 포스터]

이 작품은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주드는 영국에서 자신의 친아버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오는데, 그 과정에서 ‘맥스’라는 친구와 만나게 된다. 맥스의 손길에 이끌려 뉴욕으로 흘러들어간 주드는 맥스의 여동생, ‘루시’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주드와 맥스, 루시는 각자 꿈을 키워나가며 청춘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맥스가 베트남전에 징병되고, 오빠를 전쟁터로 떠나보낸 루시는 반전시위에 매달리게 된다.

영화는 196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한 비틀즈의 곡들이 중간 중간 배치돼 있는데, 다른 여느 뮤지컬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보통 뮤지컬 영화들은 적절한 장면에 곡을 배치하는데, 이 영화는 아예 곡을 기반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덕분인지 영화와 곡이 제각각으로 튀는 느낌 없이 잘 어우러진다.

She's So Heavy!!! 자유의 여신상을 이고 가는 베트남전 파병 장병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영화 장면]

또, 이 영화는 비틀즈의 숱한 명곡들을 꼭꼭 눌러 담아 만들어졌는데, 곡들을 참 능청스럽게도 사용했다. 주인공 ‘주드’의 이름은 ‘Hey Jude’에서 따왔고, 주드가 관심을 갖는 여인 ‘루시’의 이름은 ‘Lucy in the Sky with Diamons’라는 곡에서 따왔다. 그런가하면 등장인물들이 ‘프루던스’에게 위로를 건네기 위해 ‘Dear Prudence’라는 비틀즈의 노래를 불러준다.

I Want You라는 가사를 저 문구와 연관시킬 줄이야…

이처럼 재미나게 차용한 것은 이름 뿐만이 아니다! 오노 요코를 갈망하는 존 레논의 심리를 그려낸 곡 ‘I Want You(She’s So Heavy)’은 “I Want You For U.S. Army”라고 적힌 엉클 샘의 징병 포스터로 연계되며, ‘Oh! Darling’이란 다소 거칠게 부르짖는 이 곡은 ‘셰이디’와 ‘조-조’의 사랑싸움처럼 표현됐다.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작중 내러티브와 곡들 덕분에 132분짜리 비틀즈 뮤직비디오를 감상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겠다.

 

■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제레미의 다이너 레스토랑에서 시작돼 같은 곳에서 끝맺음이 나는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영화 포스터]

왕가위 감독의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가수 ‘노라 존스(엘리자베스 역)’와 배우 ‘주드 로(제레미 역)’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로 화제가 됐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위안을 주는 노라 존스가 대표적인 영국 미남 배우 주드 로와 어떤 꿀 케미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드 로와 노라 존스의 케미가 그리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둘이 함께 등장하는 분량이 상당히 적었기 때문. 다만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의외로 화제가 됐는데, 그건 다름아닌 영상미와 음악이었다.

낭만적이면서도 나른한 새벽녘, 마감을 준비하는 다이너 레스토랑에서 만난 둘은 기묘한 관계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제레미의 레스토랑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부서져라 우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어쩐지 위로해주고 싶은 제레미. 둘 사이에 무언가가 싹트기도 전에, 엘리자베스는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통해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지켜보는 엘리자베스는 제레미에게 엽서를 보낸다. 제레미 역시 바쁜 일상의 중간 중간, 엘리자베스의 엽서를 받으며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나긋나긋하고 달달한 영상, 그리고 역시나 나긋나긋하고 달달한 음악들이 조화를 이룬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영화 장면] 

아름다운 영상미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듯, 이 영화 역시 상당히 잔잔하면서도 낭만적인 영상미를 뽐낸다. 애정이 식다 못해 증오로 바뀌어버린 ‘어니’와 ‘수 린’의 조우 장면, 바(bar)의 주크박스에서 ‘Try a Little Tenderness’가 흘러나오는데, 가사를 곱씹어보면 이미 때를 놓쳐버린 어니에게 누군가가 “그녀를 꽉 붙잡아라”며 조언을 해주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또, 포스터로 사용된 둘의 키스씬은 영화 종반에 슬로모션으로 연출됐는데, 그 배경음으로 노라 존스의 ‘The Story’가 느릿느릿 흘러나와 장면을 한결 달콤하고 꿈처럼 몽환적이게 만들어준다.

정적이고 고요한, 그러면서도 네온 조명이 알록달록하게 지직거리는 몽환적인 새벽녘의 풍경을 닮은 이 작품은 낭만적인 영상과 OST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 영화로 많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 베이비 드라이버

앞선 영화들이 아름답고 빼어난 영상, 음악의 조화가 돋보였다면 이 작품은 스피드와 '리듬 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베이비 드라이버 영화 장면]

이미 한 차례 소개해드린 적이 있었던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야말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감독인 에드가 라이트도 직접 이 영화를 “한 편의 뮤직비디오와도 같다”고 표현한 바 있으며, “30곡의 음악을 먼저 선정해 놓고 각본을 썼다”고 소개한 바 있다.

Bellbottoms를 온 몸으로 감상하는 주인공 베이비. [베이비 드라이버 영화 장면]

감독의 소개대로 이 영화의 모든 구성은 음악적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감독은 이전에도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통해 음악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었는데,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는 그 활용이 극에 달한 듯 싶다. 음악 덕후 기질이 충만한 그가 직접 추린 30곡은 영화 속의 모든 액션씬, 추격씬과 딱딱 맞아 떨어진다(애초에 그러려고 사용한 것이니).

주인공 베이비(물론 가명이다)는 어릴 적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귓가에 늘 ‘삐-’ 하는 이명을 달고 산다. 그 소리를 묻어버리기 위해 항상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데, 영화는 그런 베이비의 귓가에 어떤 노래가 들려오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우리에게도 들려준다. 그렇게 우리에게 들려오는 Bellbottoms, Harlem Shuffle, Tequila 등의 명곡들은 작품 속의 총 소리, 자동차의 엔진음, 액션 장면에서의 타격음 등과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뮤직비디오를 본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이 있다. 이 영화의 인트로 장면, 그러니까 주인공 베이비가 하이스트 팀원들을 차 안에서 기다리면서 음악을 듣는 장면은 사실 에드가 라이트 본인이 감독을 맡았던 Mint Royale의 ‘Blue Song’ 뮤직비디오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왔다. 이 뮤직비디오는 그러니까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초안’ 뮤직비디오인 셈이다.

 

■ 어바웃 타임

많은 이들에게 '최애 영화'로 남으며 사랑받은 작품 어바웃 타임. [어바웃 타임 영화 포스터]

누군가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로맨스 영화가 뭐야?”라 묻는다면 어떤 영화를 꼽을 것인가? 이터널 선샤인, 500일의 썸머 등 로맨스 영화 중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명작이라 꼽히는 작품들은 많다. 그리고 아마 이 명작 영화, ‘어바웃 타임’ 역시 많은 분들이 꼽으셨을 듯 하다. 이 영화 역시 뮤직비디오처럼 영상미와 선곡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여행이라는 다소 SF적인 요소와 로맨스를 적절히 버무린 이 영화에는 로맨틱한 곡들이 많이 사용됐다. 초반부부터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The Luckiest’, 메인 테마곡이라 볼 수 있는 ‘How Long Will I Love You’도 낭만적인 장면들의 적재적소에 사용됐다. 그러나 아마도 이 영화를 지켜보며 사랑스러움을 느끼셨을 많은 분들은 음악과 영상이 아름답게 조화된 결혼식 장면을 최고라고 꼽으실 듯 하다.

숱한 시간역행 끝에 결국 결혼에 골인하는 팀과 레이첼. [어바웃 타임 영화 장면]

여러 우여곡절과 몇 번의 시간여행 끝에 팀과 레이첼은 결혼을 하게 된다. 고즈넉한 팀의 집에서 목가적인 결혼식을 올리는데, 하필이면 이날은 폭우가 내린다. 쏟아져 내리는 비로 하객들은 쫄딱 젖는데 그것이 또 퍽 낭만적이다. 지미 폰타나의 ‘Il Mondo’ 덕분이다.

사실 야외 피로연장에 폭우가 쏟아지는 건,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꽤나 실망스러운 일일 터다. 하지만 가약을 맺는 팀과 레이첼은 흠뻑 젖은 채로 콧잔등을 잔뜩 구긴 채 행복하게 웃는다. 마치 축가처럼 울려 퍼지는 이 노래는 피로연장 천막이 폭우에 무너지면서 클라이막스로 향한다.

 

■ 영화 속 감정선의 꼭짓점을 찍는 음악들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관계는 참 독특하다. 과거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서사가 있는 뮤직비디오가 잠시 유행을 했었는데, 요즘은 반대로 뮤직비디오처럼 음악과 영상이 조화를 이루는 영화들이 눈길을 끄는 것 같다. 그리고 음악과 영상이 잘 버무려진 이런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 매력을 톡톡히 어필해내고 있으며, 나름대로 인기를 끌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음악 빠진 영화라니, '얼음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들린다. 상상할 수 없어!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뮤직비디오를 닮은 영화 속 장면들은 몰입감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화창한 봄날 햇살 아래 행복하게 웃는 연인들을 묘사할 때면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곡이 나오고, 비장하고 긴장감 넘치는 순간엔 또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곡이 흘러나온다거나.

자동으로 Imperial March가 재생되는 듯… [Reddit 캡쳐]

영화를 완성하는 요소는 수십, 수백, 수천만 가지가 있을 터다. 그리고 ‘음악’, 배경음악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만약 영화 ‘타이타닉’의 그 유명한 “짹! 컴백!” 장면에서, My Heart Will Go on의 허밍이 들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가 등장하는데 ‘Imperial March’가 울려 퍼지지 않는다면? 크리스토퍼 리브가 빨간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를 때, ‘Superman Main Theme’가 들리지 않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해당 장면의 감동이 한참은 떨어졌을 것이 틀림없다. 인정하실 수밖에 없을 걸?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된 영화들 이외에도 여러분이 알고계시는 영화 중 ‘그 장면’이 ‘그 곡’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순간들, 혹은 ‘그 곡’이 ‘그 장면’에 사용되기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공유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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