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장마가 지나니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를 덮치고 있다. 요즘은 출근길부터 땡볕이더라. 분명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햇빛이 뜨겁기로는 오후 두시, 세시나 매한가지다.

아침부터 그렇게 더운데 점심이나 그 이후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찜통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아직 8월도 되지 않았건만, 벌써 숨 쉴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목 안으로 훅훅 들어온다.

요즘 숨 쉴때 우리의 모습… 입으로 불길이 들어오는 기분! [Photo by Raj Eiamworakul on Unsplash]

해가 뉘엿해지면서 퇴근할 시간이 되고 나서도 그리 다를 건 없는 듯 싶다. 도로의 아스팔트, 보도블럭, 건물 외벽들은 낮 동안 머금었던 열기를 늦게까지 내뿜기 바쁘다. 또, 저물어가는 해는 건물 창문을 타고 반사돼 우리를 비춘다. 그 꼴이 돋보기 볼록렌즈 아래 개미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얘기들의 요지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덥다는 것이다. 이번 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와중에도 폭염경보 알림이 울린다.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라면서.

밖에 나가 놀다간 녹아내려 땅바닥에 들러붙을지도 모를 노릇! [Photo by Aron on Unsplash]

이런 무더운 날에는 어딘가엘 놀러가기 보단, 온 집안 불을 다 끄고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영화를 보는 게 제격이다. 대충 짐작 간다고? 맞다. 요즘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 추천 시간이다. 앗, 물론 그렇다고 ‘납량특집’이라며 공포영화를 들고 오진 않겠다. 우리는 시원해지고 싶은 게지, 오싹해지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귀가 떨어질 것처럼 추웠던 지난 겨울 우리는 한 여름의 풀내음, 매미 소리, 선풍기 바람 소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름 느낌 영화들’을 소개해드렸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릴 움츠리게 만드는 겨울 느낌 영화들을 요즘 같은 날씨에 보는 것도 제법 괜찮을지 모른다. 눈과 얼음, 그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속으로 떠나보자.

 

■ 로맨틱 홀리데이

겨울 영화 추천 순위 상위권으로 항상 오르는 작품! [로맨틱 홀리데이 영화 포스터]

겨울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장 기대된다! 크리스마스에서 신정으로 넘어가는 기간은 이유 없이 설레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 하지만 반대로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캐빈’과 함께”라는 분들도 있다.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며, 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함께 코코아를 홀짝거릴 사람이 없다는 분들. 한 겨울 로맨스를 꿈꾸는 분들. 그런 분들이라면, 지금은 물론이고 올 겨울에도 ‘모쏠’ 확정이라는 분들이라면 이런 영화는 어떤가?

잔잔하고 따뜻한 얘길 주로 그려내는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작품 ‘로맨틱 홀리데이’는 겨울 연휴시즌,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두 여인이 ‘홈 익스체인지 휴가’를 보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면서 로맨틱한 체험을 한다는 가벼운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의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다른 작품으로는 '인턴', '왓 위민 원트', '페어런트 트랩' 등이 있다. [로맨틱 홀리데이 영화 장면]

사실 줄거리 자체는 별반 흥미로울 것 없지만 영화가 전해주는 훈훈함과 따뜻함은 여러분의 계절을 겨울로 바꿔놓을 수 있을 법 하다. 그저 냉혹하고 차가운 겨울 말고, 따뜻하고 안전한 집 안에서 수면양말과 포근한 담요를 두른 채 맞이하는 겨울 말이다.

 

■ 렛미인

렛미인, 스웨덴 판 영화의 영어 제목은 'Let The Right One In'이다. [렛미인 영화 포스터]

“공포영화는 다루지 않겠다며?”라 따지고 드실 분들이 벌써 몇 보인다. 에디터도 물론 잘 알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게 얼마나 뻔한 지를. 그러나 이 영화, ‘렛미인’은 사실 공포 보다는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할 듯 하다. 거기에 작중 배경으로 흰 눈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이번 주제에 그럴듯하니 잘 어울린다.

창백한 피부에 희다시피한 금발의 외모가 작품 속의 추운 계절적 배경과 잘 어울리더라. [렛미인 영화 장면]

우선 이 작품은 스웨덴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것이 스웨덴에서 영화화(2008년)되고, 미국에서 리메이크(2010년)됐다. 하지만 원작인 소설과 영화, 리메이크 영화 세 가지 모두 이야기 전개에 큰 차이점은 없다. 대체로 ‘소설의 영화화’는 원작을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요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요소들이 적다는 얘기다. 결국 세 작품은 모두 같은 요소가 주요 포인트다. 흡혈귀 소녀를 만난 왕따 소년, 서서히 가까워지는 둘. 그러나 흡혈귀라는 정체성 때문에 곤경에 처하고, 둘이 함께 그 곤경을 해쳐나가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흰 눈 위에 흩뿌려지는 새빨간 핏방울들.

헐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배우 클로이 모레츠가 흡혈귀 역을 맡았다. [렛미인 영화 장면]

앞서도 언급했듯 두 가지 버전의 영화는 모두 ‘흡혈귀와 친구가 된 왕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을 표현해낸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령 스웨덴 판 영화에 비해 미국 판 영화가 조금 더 자극적인 폭력묘사를 담아내고 있다거나, 느슨한 전개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등. 하지만 그렇다고 두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겠다. 원작을 쓴 작가도 “두 영화 모두 굉장히 훌륭하다”고 평가한데다, 실제 대중 평가도 양쪽 모두의 손을 들어주고 있으니.

이번 여름에 뭔가 ‘서늘하고 기괴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여름에 흔히 보는 공포영화와는 다르다. 이 영화는 음울하고, 우울하며, 극도의 외로움을 지닌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요즘 같은 날씨에도 마음 한 구석에 썰렁함이 느껴지게끔 만들어줄 것이 분명하다.

 

■ 겨울왕국

문화적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던지라, 왠지 조금 지겨운 것 같기도 하다만… [겨울왕국 영화 포스터]

초대박 흥행성적을 거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많다. 그리고 2014년 겨울을 ‘렛잇고~ 렛잇고~’ 하는 노랫소리로 물들인 ‘겨울왕국’ 역시 그런 ‘초대박’ 흥행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 중 하나다. 원전 스토리를 약간 뒤튼 겨울왕국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엘사’와 ‘안나’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가 돼 주던 사이였지만, 언니 엘사는 냉기와 얼음을 다루는 신비로운 능력을 통제할 수 없었던 탓에 동생을 다치게 하고 만다. 물론 불의의 사고였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지라, 엘사는 죄책감을 느끼며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아렌델 왕국… 좋겠다, 저긴 에어컨 안 틀어도 될 거 아니냐? [rebloggy.com 캡쳐]

스스로를 가둬버린 엘사는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사고 이후 대관식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13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대관식에서 모종의 사건이 발생해 자신의 마법이 모두 앞에 드러나 버리고, “마녀!”, “괴물!”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성에서 달아나버린다. 동생 안나는 그런 언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마무시한 팬층을 거느린 엘사 여왕님… 남자고 여자고 예쁘다고 난리 난리! [겨울왕국 영화 장면]

노르웨이를 모티프로 한 작중 가상의 왕국 ‘아렌델’은 사실 여느 ‘겨울’ 영화들처럼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설국(雪國)은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엘사에 의해 나라 전체가 얼어붙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각적 추위를 느껴볼 수 있게 변해버린다. 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여름날엔 순록과 눈 괴물, 얼음 성채, 눈사람(심지어 말도 하는)이 겨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호수마저 얼어붙어버린 아렌델로 피서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 뷰티 인사이드

출연배우들이 엄청 많은데, 결국은 죄다 (우진 역)입니다. [뷰티인사이드 영화 포스터]

어떤 날은 잘 생긴 남자, 어떤 날은 머리 벗겨진 아저씨. 또 다른 날은 곱상한 아가씨였다가 그 다음날은 외국인으로. 자고 일어나면 매일 외모가 변하는 기이한 저주(?)에 걸린다면, 과연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저주받은 우리를 누가 믿어줄 것이며, 누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을까?

자신의 특별한 비밀 때문에 거의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살던 주인공 ‘우진’은 어느 날 ‘이수(한효주)’를 만나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매일 달라지는 모습 때문에 고백은커녕, 가까워지기도 힘든 상황.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바뀐다’는 조건의 빈틈을 파고들기로 한다. ‘잠들지 않으면, 모습도 바뀌지 않는 것 아냐?’ 그렇게 며칠 동안 잠을 참아가면서 이수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리운 배우의 모습도 잠시 감상할 수 있다. [뷰티 인사이드 영화 장면]

상당히 참신하고 파격적인 설정을 지닌 판타지 로맨스 뷰티 인사이드도 겨울을 느껴지게 하는 영화 중 하나라 꼽을 수 있겠다. 우선 계절적 배경도 배경이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따스한 색감을 지니고 있는데, 그건 마치 포근한 이불 속, 아니면 추운 겨울 외출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뒤의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는 듯 하다. 또 배우 한효주의 서정적인 목도리 패션을 한 번쯤 흉내내보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감상평: 한효주 예쁘다. [뷰티인사이드 영화 장면]

뷰티 인사이드는 한 겨울의 추위, 빨갛게 얼어붙은 손끝,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아니라 영하의 날씨에 집 안에 숨어있는 것만 같은 아늑함, 겨울 아침 눈을 떴을 때의 서늘하면서도 안락한 감각을 잘 전달하고 있다.

 

■ 이열치한, ‘여름 추천’ 영화보단 ‘겨울 추천’ 영화를

‘이열치열(以熱治熱)’, 아마 올 여름에도 우리가 지겹도록 듣게 될 말일 터다. 더울 때일수록 뜨거운 음식을 통해 무더위를 이겨내자는 사자성어다. 뭐, 삼복더위에 먹는 삼계탕이나 각종 뜨끈한 보양식들이 기력회복에 도움이 되기는 하니 영 틀린 말이라 볼 수만은 없겠다.

참고로 '이열치열'은 어디까지나 음식으로만 즐기자, 덥다고 껴입는 바보같은 짓 하진 말고! [Photo by Alex on Unsplash]

하지만 불볕더위에 온갖 뜨거운 음식들만 먹으면서 “핫 써머, 너무 더워”하고 종일 징징댄다고 해서 체온이 내려가는 건 아닐 테니, 입맛은 몰라도 우리의 정서만큼은 시원하게 식혀주는 게 더 좋을 듯 싶다. 무엇보다도 한 여름에 지글지글 끓는 영화를 보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닐 수가 없으니까.

아! 덥다! 평소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요즘은 아마 찬물을 끼얹으며 그 시원함을 즐기실 게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겨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쌀쌀하고 서늘한 영화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봤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겨울 추천 영화’라 꼽히는 영화니 믿고 보셔도 좋다. 얼음 동동 띄운 냉녹차 한 잔과, 샤워 후에 살짝 덜 마른 머리카락, 그리고 여러분을 향한 선풍기가 셋팅돼 있다면 영화 속의 시원함과 추위가 전해질지도 모른다. 감기 조심하시고!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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