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심심해서. 특정 배우가 좋아서. 보다 보니 빠져들어 버려서. 그밖에도 엄청난 이유들이 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삶을 엿본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작품의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헌데 그렇게 들여다본 타인의 삶, 타인의 이야기가 영 뜨뜨미지근하고, 씁쓸하거나 경악스럽기까지 하다면? 우리가 감정을 이입했던 대상(주로 주인공)이 그리 ‘해피’하지만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복잡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거나 크건 작건 간의 상실감과 공허감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의 결말은 뭔지 모를 만족감을 준다. [flickr 이미지]

하지만 반대로 끝끝내 해피엔딩으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면 그런 상실감, 씁쓸함, 허무함도 조금 덜해진다. 우리가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가 폭 빠져들었던 주인공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게 흐뭇하고 기쁘니까.

최근 종영한 ‘김비서가 왜그럴까’를 되짚어보자. 그리 복잡하게 꼬인 관계도 없고(이만하면 심플하지!), 여자 주인공을 위협하고 남자 주인공을 유혹하는 ‘악녀’도 없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제부터 각각 남주, 여주라 칭하자)이 맺어지는 것을 축복한다. 그리고는? 둘은 행복하게 결혼식을 하면서 작품이 끝난다.

웹소설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그리 복잡하게 배배 꼬이지도 않았으며, '발암' 또는 '고구마 백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tvN 김비서가 왜그럴까 드라마 장면]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할 작품들은 엔딩이 심플하고 깔끔하다. 뻔하다고 할 수도 있겠고, 우리가 쉽사리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도 그 단순명료함이 매력적이다. 행복하게 끝난 영화들을 보고나면, 우리도 우리 삶의 결말이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해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 다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노팅 힐

-사랑의 블랙홀

-행운을 돌려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노팅 힐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영화. 1999년 작품인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노팅 힐 영화 포스터]

영국 런던의 ‘노팅 힐’에 사는 ‘윌리엄’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얼굴은 안 평범하다) 영국 남자. 항상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갑자기 글로벌 슈퍼스타 배우 ‘안나’를 마주치면서 환상적인 일들이 시작된다. 안나와 부딪혀 그녀의 옷에 쥬스를 쏟은 것을 계기로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윌리엄의 여동생 생일 파티에까지 함께 동행을 한다.

파티가 끝난 뒤 밤거리를 산책하면서 애틋한 분위기가 싹트고, 둘은 함께 안나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간다. 그렇게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안나의 호텔 방에는 미국에서 날아온 안나의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안나를 위해 윌리엄은 ‘룸 서비스’ 배달부인 척 얼버무리고, 그대로 호텔을 떠나버린다.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유명 배우가 등장하면서 곡절을 겪게 된다는 내용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지 모르는 소재다. [노팅 힐 영화 장면]

‘남자들을 위한 신데렐레 영화’라 알려진 이 작품은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남자가 글로벌 슈퍼스타와 사랑에 빠지고, 오해가 쌓여 틀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의 반복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다소 뻔 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오히려 그런 뻔함 때문에 큰 인기를 끈 것은 아닐까 싶다. 결말부도 상당히 교과서적인 해피엔딩이다.

■ 사랑의 블랙홀

이 영화는 고스트 버스터즈의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개봉 당시에는 그리 인기를 끌진 못했으나 후대에 재평가되고 있다. [사랑의 블랙홀 영화 포스터]

늘 불만투성이에 투덜거리기만 하는 기상 캐스터 ‘필’은 특유의 까끌까끌한 성격 탓에 직장 동료들로부터 그리 호감을 사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매년 성촉절(2월 2일)마다 취재차 방문하는 ‘펑츄토니 빌’이란 곳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불퉁거리기만 하며 얼른 그곳을 떠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폭설로 인해 마을이 고립되고, 필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뜬 필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다음 날이어야 하건만, 어제 있었던 일들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 ‘성촉절’날에 갇혀버린 것이다. 필은 처음에 당혹스러워 하지만, 이윽고 순식간에 적응해버리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무모한 짓을 한다. 이를테면 현금수송 과정을 관찰하고 허점을 파악해 돈을 턴다거나, 난폭운전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다거나. 하지만 그런 일을 벌이더라도 눈을 뜨면 또다시 성촉절이 반복된다. 심지어 자살시도를 해도 그렇다!

감독 코멘터리에 따르면, 주인공 필이 2월 2일 '루프'에 머문 기간은 현실 시간으로 대략 30년이라고 한다. [사랑의 블랙홀 영화 장면]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판타지 코미디’ 영화, 또는 ‘루프물’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인격적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면서 처음에는 저항하고, 과격한 일탈을 하다가 결국 주어진 시간에 순응하고, 감사함을 느끼고, 선행을 베풀거나 자기개발을 하는 일련의 과정 끝에 직장 동료 ‘리타’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침내 루프에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로맨틱하게 느껴지기에 이번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나 싶다.

■ 행운을 돌려줘

가볍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 크리스 파인과 린제이 로한의 풋풋한 모습도 관전 포인트다. [행운을 돌려줘 영화 포스터]

온갖 행운을 둘둘 두르고 다니는 듯한 여자 ‘애쉴리’는 중요한 미팅에서 계약을 척척 따내는 유능한 직장인이다. 언제나 그렇듯 계약을 멋지게 성사시키고, 가면 무도회에 초대받은 애쉴리는 파티장에서 한 남자와 키스를 한다. 그런데, 키스를 한 뒤부터 거짓말처럼 그 모든 행운들이 사라져버린다.

반대로 온갖 불운을 끌어모으는 남자 ‘제이크’는 정말 더럽게 안 풀리는 밴드 매니저. 지지리도 못나가다가 애쉴리와 키스를 한 이후에 갑자기 마법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한다.

'유치하다'는 평가도 상당히 많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영화다. [행운을 돌려줘 영화 장면]

언뜻 보면 상당히 유치하고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행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개념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오히려 그런 유치하고 진부한 점이 매력이랄 수 있다. 한 편의 동화처럼 묘사된 둘은 키스를 통해 그 행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가 된다.

■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워낙 '갓띵작'인 만큼 재개봉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듯.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 재개봉 포스터]

남자 주인공 해리와 여자 주인공 샐리. 둘의 첫 만남은 그리 로맨틱하진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향하는 차에 카풀을 하기 위해 만났으며, 사실 그땐 각자에게 연인이 있었으니까. 기나긴 자동차 여행 동안 둘은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뉴욕에 도착한 둘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아쉽네요, 뉴욕에 아는 사람이라곤 당신 뿐일 텐데”라는 말을 하며.

몇 년 뒤, 우연한 계기로 둘은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때도 여전히 두 사람은 성격도, 취향도 맞지 않아 티격댄다. 지난번과 같이 논쟁을 벌이고, 서로를 ‘이상한 사람’ 쯤으로만 취급하고선 헤어졌을 뿐이다. 몇 년이 지난 후, 또 다시 우연한 계기에 마주친 둘. 우연도 세 번이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이때부터 둘은 본격적으로 친구가 된다. 기나긴 시간동안 해리와 샐리는 서로에게 젖어들고 말았다. 서서히 싹터가는 감정을 외면하기 위해 각자의 단짝을 서로에게 소개해주지만, 오히려 해리가 샐리에게 소개시켜주려던 ‘제스’는 샐리가 해리에게 소개시켜주려던 ‘마리’와 이어지고 만다.

분할화면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 이 장치가 작중 내내 상당히 유용하게 쓰인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 장면]

‘친구에서 연인으로’의 과정을 담은 로맨스 영화의 정석이랄 수 있는 이 작품은 사실 그리 낭만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둘의 밀당과 사랑놀음이 어여쁘게 그려지지도 않는다. 둘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라 여길 뿐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서로를 위로하고, 아껴주던 둘은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 버린다.

■ 우리가 바라는 엔딩

작년 9월쯤 교양공감팀은 ‘미묘한 엔딩으로 끝난 영화들은 그렇게 달콤하지도, 그렇게 씁쓸하지도 않은 우리 인생과 닮아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식으로 매듭지어지는 이야기는 꿈처럼 환상적이긴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꿈에서나 이뤄질’ 결말이라면서.

물론 미묘한 엔딩 역시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해피엔딩 못지 않은 매력이.

하지만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길 원하고, 꿈꾼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일터로 나서는 이유도 결국은 행복한 미래를 위한 나름의 준비 과정인 셈이고,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기 위해 기를 쓰고 하는 행동들도 여러분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들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어지는 영화들은 결국 우리가 꿈꾸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왕이면 ‘새드엔딩’이나 ‘배드엔딩’에 비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활 보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일 테고.

우리가 응원했던 두 연인이 결국은 결혼을 하고, 그 이후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각종 공과금이나 보험료, 지로용지를 붙들고 숫자 씨름을 하는 것. 성격차이로 씁쓸한 이별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니 영화에서까지도 그런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서사를 위해 암울한 결말로 끝나는 작품도 있고, 그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아무튼 해피엔딩만큼 충족감을 얻는 건 없다구.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왕이면 해피엔딩이 좋다. 매력적인 남주와 여주가 맺어지는 거. 작중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던 아무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의 여주와 맺어지고, 우리는 남주와 함께 그걸 지켜보며 벙 찌는 경험은 그리 달달하지 않다는 얘기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여러 창작물 속의 주인공들. 아마 그들은 영원히 그 행복한 결말부분에 머무르면서 활짝 웃고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품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그런 행복한 결말에 안도와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니, 어쩌면 그건 좀 평면적이고, 다소 일차원적이고, 심지어 비현실적이기까지 할지 모른다. 하지만 종종 그런 단순함을 느끼고플 때가 있다.

여러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던, 영화의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여러분들까지 만족스러운 결말로 끝난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를 소개해주시길 바란다. 당시에 느꼈던 만족감, 충족감, 행복했던 기억들을 우리와 함께 나눠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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