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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여인갑 칼럼] 영세불망 이야기-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때마다...
  • 여인갑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0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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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불망 이야기-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때마다 잊지 말아야할 위대한 이야기

Georg Friedrich Handel(1685-1759)

[공감신문]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 음악회에서 빠지지 않는 연주 곡이 있다. 헨델의 대표적인 교회 음악인 “메시아(Messiah)”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KJV 1611년)의 성경말씀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성악의 일종으로 줄거리가 있는 곡의 모임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이다.

56세때에 착수한 성악곡 메시아는 1741년 8월 22일부터 불과 24일인 9월 14일에 완성되었는데, 곡이 완성되었을 때 헨델은 식사를 가져온 하인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지는 천국과 거기 계신 위대하신 하나님 그분을 뵈옵는 것 같았어”

작곡을 할 때의 경험을 헨델은 성경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인용하였다. ”나는 그 곡을 작곡할 때 내가 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재정적으로 파산 지경까지 간 헨델은 1742년 더블린에서의 메시아 곡 초연으로 생애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그는 이날의 수익금으로 142명의 채무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

헨델의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과 성육신, 죽음과 부활, 복음 전파, 죽음을 이긴 승리를 노래하는 작품인데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보다는 ‘신앙의 신비’를 칭송하는 것으로 헨델은 마지막 페이지인 259쪽에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기록하였다.

메시아 곡의 하이라이트는 할렐루야(Hallelujah) 합창인데 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 영국 왕 조지 2세가 감동하여 기립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지금도 이 대목에선 관중이 모두 기립하여 그 감동을 나누는 관례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하이든(1732-1809)도 할렐루야 합창을 들었을 때 “저편에 신의 영광이 나타났도다. 그분은 우리 모두의 주님이시다”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헨델의 메시아 CD>

<헨델의 메시야 전곡 듣기>

<헨델 메시아 할렐루야 듣기>

독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2살 때 첫 작품을 썼고 오르간연주를 너무 잘해서 가끔 자기 선생님을 대신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외과 의사 겸 이발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법학을 전공하기 바랐기 때문에 헨델은 할레 대학교에 법학 전공으로 들어갔으나 곧 음악 공부에 몰두하였다. 이런 연유로 독일 할레에 음악박물관 헨델하우스가 있다.

<할레에 있는 헨델 하우스>

헨델은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린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약하였다. 그 후 1706년부터 1710년까지 이탈리아에서 활약하면서 헨델의 음악 중에 종교적 주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부활(The Resurrection)을 작곡하였다.

<헨델의 부활 CD>

1712년 하노버 궁정에서 활약하다가 1723년 헨델은 영국으로 가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6년간영국에서 활약하였다.

<헨델이 거주했음을 기념하는 건물의 표지(위)와 헨델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방(아래)>

헨델이 영국에서 자기 성을 표기 할 때 ä자 위의 점 두 개(움라우트)를 빼고 그냥 a라고 표기해버렸기 때문에 영문자로 표시할 때는 Handel이라고 쓴다..

헨델과 관련해서 또 빼 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파운들링 양육원(Foundling Hospital)과의 이야기이다.

흔히 파운들링 병원이라고 불리지만 의사가 있는 병원이 아니고 1739년 미국인 토마스 코람이 세운 어린이 돌봄 장소였다.

1741년 첫 아이를 받은 후 1954년 마지막 원생이 나갈 때까지 25,000여명의 어린이들이 보호와 교육을 받았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매년 백만 여명의 어린이들을 도와 주는 구호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헨델은 자기의 오르간을 기증하였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매년 메시아를 연주하고 기금을 모았으며 그 자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헨델이 죽을 때는 메시아 악보의 판권을 파운들링 호스피탈에 기증하여 자신의 사후에도 운영에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파운들링 박물관의 3층 헨델 방에는 헨델의 악보 등 소장품과 포스터, 티켓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헨델 기념관 보다 보존 자료의 량이 훨씬 많다고 한다.

<헨델의 할렐루야 자필 악보>
<파운들링 박물관 3층 헨델방>

헨델은 자신이 30회 이상 메시아 공연을 지휘하였으며 그 수익금으로 많은 자선 후원을 하였는데 죽을 때에는 가난한 작곡가들을 위한 기금도 희사하였다.

헨델뿐만 아니라 메시아를 연주한 연주가들 모두가 열심히 구제 활동을 하여 메시아 곡이 그 어떤 신학 서적보다 더 많이 고난 당하는 인간을 구제하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진실로 헨델의 메시아는 굶주린 자들을 먹였으며, 헐벗은 자들을 입혔으며, 고아들을 양육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큰 성과를 이룬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사회를 만들어 간 헨델의 위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금년에도 내년에도 헨델의 메시아 곡은 울려 퍼질 것이다. 메시아 곡이 울려 퍼지는 곳마다 사랑과 구제의 손길도 같이 펼쳐지는 위대한 세상이 되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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