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구 1화장실조차 사치인 곳, 하루의 삶에 감사하는 삶

빌딩숲 가운데 놓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유난히 볕이 좋은 어느 날, 소박한 행복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을 찾았다. 재개발의 열풍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구룡마을의 모습을 담았다.

대모산 산자락 모퉁이를 돌면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작은 숲을 병풍 삼아 저 너머에 우뚝 솟은 고층 빌딩숲. 그리고 폐자재와 천막, 장판으로 지붕을 얹은 판자집이 질서 없이 펼쳐진 구룡마을은 사뭇 대조적이다.

건물의 높고 낮음 외에도 또 하나의 다름이 보인다. 뿌연 스모그로 뒤덮인 빌딩숲 하늘에 비해 이곳 구룡마을의 하늘은 제주도의 푸른 바다처럼 너무나 청명하다. 이렇게 가까운 곳의 하늘도 다를 수 있나 보다.

빌딩숲 아래 난쟁이 마을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두세 걸음이면 금세 닿을 것 같은 좁디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집이 마주해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판자로 엮어 만든 집들. 바람에 나풀대는 빨래가 널려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빈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바지걸이도 없이 옷걸이에 대충 걸쳐 널어놓은 옷가지들. 이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남자의 작업바지와 여자의 몸빼바지로 보아 나이 든 부부가 살고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또 다른 집 건조대에는 낡은 수건 4장과 아기용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작은 이불 두 장이 걸려있다. 적은 빨랫감이 널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들은 손빨래하고 있는가 보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우리의 방문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 한가로이 마당을 쓸고 계신 아저씨는 의미 없는 시선을 주다가 이내 거두어간다. 공중화장실이 곳곳에 보인다. 이 마을에선 1가구-1화장실조차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정식 자격증, 20년 경력”이라고 자신 있게 써 붙여 놓은 “컷트가 4천원”인 ‘우리 미용실’, 마을의 베스트셀러 상품인 연탄가게도 있다. 커다란 십자가를 짊어진 교회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들의 불안하고 지친 삶에 한 가닥 희망을 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까.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초라한 이곳에도 예쁜 꽃은 여지없이 피어난다. 손바닥만한 작은 마당 안에 덩그러니 자리한 철쭉꽃이 핑크빛 생기를 준다. 골목길 벽 아래 화단에 심어놓은 빨강, 노랑, 핑크, 오렌지 등 형형색색의 꽃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이리도 정성스레 심어놓았는지.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아기자기한 꽃과 시멘트벽은 묘하게 예술적 모양새를 뽐내고 있다. 길가엔 생명을 다한 누런 연탄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왜 겨울도 아닌데 연탄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곳엔 가스가 없으니, 취사가 가능한 연료는 당연 연탄뿐. 이 마을에선 사계절 모두 연탄이 필수템일 게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다들 고만고만한 키 작은 지붕이 어깨가 닿을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는 고개를 살짝 들어도 낮은 지붕 덕에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온종일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빌딩숲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보다는 하늘을 가진 그들의 일상이 조금은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산타할머니의 온정이 피어나는 공간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즐기는 구룡 할머니들을 만났다. 조금 전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파지 할아버지가 평상과 그늘막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이 그들에겐 사랑방이자 다방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음식도 나눠 먹고, 커피도 끓여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본인의 나이를 79세로 알고 있는 무엇이든 퍼주길 좋아하는 산타 할머니(89세). 구룡에 산 지 40년이나 된 군산여고 6회 졸업생, 군산 할머니(81세)는 ‘88서울올림픽’이 있던 그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시절 고등교육을 마치고 전북 익산에서 포장재 공장까지 크게 운영했던 무남독녀 군산 할머니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22살에 결혼해 바람 난 남편과 이혼 후, 공장까지 어려워진 할머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쪽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고, 대장출혈이라는 고질병까지 얻게 되면서 할머니는 인생의 끝자락, 구룡마을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처음에 와선 많이 울었어. 짐승만 키울 것 같은 이곳에 사람이 어찌 사나 싶고…”

할머니는 봉사하다가 굽은 손가락이라며 마디가 다 휜 낡은 손을 보여 주었다.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네도 큰맘 먹어야 하게 되는 봉사를 이들은 너무나 쉽게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군산 할머니는 이곳에서 인연을 맺게 된 친자식보다 더 소중한 손주 같은 아이들과 살고 있다고 한다.

“나이 먹으니까 자식 집에 가는 게 안 좋아, 자식 눈치 보고, 며느리 눈치 보고, 딸네 가면 딸도 고통스러워”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도넛과 뻥튀기를 건네자 “아이고 맛있다!” 하면서 산타 할머니는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접어둔 5천 원을 꺼낸다. 더운데 돌아다니느라 고생한다며……. 누가 달라고 하면 본인이 입던 옷도, 먹을 것도 모두 줘버린다며 군산 할머니는 핀잔한다. 이에 산타 할머니는 하나 남은 치아가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난 잘해 먹어, 나이는 먹었어도 자네들보다 내가 더 잘해 먹어. 걱정 말어. 주면 좋지~ 난 조금 먹어도 괜찮아, 그리고 내가 잘해야 사람들이 지붕도 고쳐주지”

“이거, 맛있다! 더 먹어~” 서로를 챙긴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가 넘쳐나는 도시와는 다른 온정에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여긴 정이 있어. 이렇게 살아도 우리는 한 식구 같아. 창문 열고 먹을 것도 던져 주고 가”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패지 줍는 갑순이 할머니는 이따 저녁으로 먹는다며 뻥튀기랑 도넛을 챙겨간다. 아이처럼 바지 뒤에 커다란 주머니를 기워 입은 패지 할머니는 아들 때문에 사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할머니가 애써 패지를 주워 돈을 모아놓으면 아들이 가져가고 또 가져가고 해서 충격을 몇 차례 받다 보니 저리되었다고.

이곳 구룡마을엔 부모를 버리고 가는 자식들도 많다고 하니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다. 70대가 젊은 사람인 이곳 주민들은 식당 허드렛일을 하거나 공사판에서 막노동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고, 집 지으면 들어와서 살라는데, 여기 사람들 다 노인네들이야.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있나?”

이곳이 헐리면 어디로 갈 계획이냐는 물음에 모두들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전직 의사라며 면허증을 보여주는 할아버지도, 옛이야기 하듯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매 같은 할머니들도, 패지 줍는 할머니도. 아직 내년 이맘때쯤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에겐 그 어떤 조급함과 걱정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에디터가 이들의 미래에 대해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온 그들이지만, 더는 욕심내지 않는다.

“우린 재밌게 살아, 우애하고 나눠 먹고. 다들 욕심들은 없어. 그저 하루 잘 살았다~ 다 그런 사람들이야”

어느 누구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정부나 지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군산 할머니는 말한다.

“그동안 잘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가야제…”

다른 좋은 날,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뒤돌아서는 우리에게 산타 할머니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밥 잘 챙겨 먹고 다니고 저녁땐 일찍 들어가라고.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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