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술을 잘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자주 들었었다. 물론 과거 체력이 좋을 때의 이야기다(...) 이건 내가 정말 남들 눈에 물리적으로 ‘내일이 없는 것 같이 마신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휴가 나온 군인처럼, 오늘이 휴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마시는 것 같이 보였나보다. 전혀 아니었다. 열정이 아니라, 그렇게 마셔도 내일 하루를 또 일상적으로 살아낼 만큼 회복이 빨랐던 거다. 주당들은 대부분 해장의 고수들인 경우가 많다.

최고의 해장 음식이 무엇이냐에 대해 늘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실 진짜 주당들은 저마다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해장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나는 맑은 국물로 해장하는 걸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평양냉면!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일단 물냉면이나 쌀국수로 해장한다. 탄산수와 커피로 즐겨 마시는데, 위 건강을 위해 과음한 다음 날은 줄이려 노력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블랙커피를 마신 후 낮잠을 자면 더 피로가 잘 풀린다.

살바도르 달리 '꿈', 1944
살바도르 달리 '꿈', 1944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 한나는 최근 주량이 늘었다. 최근 술을 마시고 집에 올 때면, 드라마 속 회식한 아버지가 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들고 귀가하듯 우엉차와 스포츠음료를 사온다. 그게 비결이라고 했다. 스포츠음료는 빠르게 전해질과 수분을 충전해줄 수 있어 정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다음 날도 다시 빼낼 수분을 생성해주고(...) 심지어 당분으로 인하여 뇌가 일시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외에도 초코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있고, 피자와 같이 기름진 음식으로 해장한다는 이들도 있다. 매운 짬뽕 국물로 땀을 쫙 빼는 게 좋다는 주당들도 상당히 많다. 우리 아빠는 다음날 등산을 하거나 반신욕을 해야 해장이 된다고 하셨다. 수분과 당, 순환을 돕는 휴식이 공통된 주당들의 해장 교집합이다.

살바도르 달리 '불타는 기린', 1937
살바도르 달리 '불타는 기린', 1937

해장, 도대체 인간에게는 왜 해장이 필요할까? 인간은 왜, 해장이 필요할 때까지 술을 퍼마시는 걸까? 어느 날 주말 오후에, 아는 영화감독님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너 어제 많이 마셨니?’라고 단번에 물으셨다. 전날의 기록을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시면서, ‘인간이란 참 지독한 존재지.’라고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이 왜, 해장이 필요할 때까지 마시냐고? 그건 이별할 건데 왜 사랑에 빠지냐고 하는 거랑 좀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때때로 자주 필요하지 않나, 정신적 피난. 나는 무언가를 타지 않고는 일상일 살아내는 것이 가끔 너무 힘이 들어서. 

해장을 이별과 비교하다니 감정이입이 심하다 할 수 있겠다만, 나도 말하고 놀랐다. 해장의 원래 어원은 ‘해정’이었다고 한다. 정을 푸는 것이다. 여기서 정은 사랑을 뜻하는 연정과는 다른 한자어인 숙취, 술병이라는 뜻을 가진 정(?)이다. 말장난을 치자면 정(情)을 푸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전날의 술로 주접을 떨었던 감정들을 해소시켜야지, 과하게 친한 척을 하고, 과하게 사랑을 고백했고, 과하게 시니컬했고, 과하게 신났고, 과하게 용감했던 전날의 민망한 내 모습과 화해를 해야지. 해소해야지!

영화 '황해' 중에서
영화 '황해' 중에서

그래서 일까... 우리가 선호하는 해장음식들은 그렇게 비주얼적으로 뛰어난 경우가 드문 것 같다(평양냉면만 빼고). 못생김의 대명사 같은 해산물인 오징어가 잔뜩 들어간 매운 짬뽕도 사실 ‘입맛 땡기는’ 비주얼일 뿐,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는 별로인 편이다. 똠얌꿍도 좀 그렇게 생겼다. 숙주들이 뻣친 머리카락마냥 헝클어지는 쌀국수도 그렇다. 

근데 이게, 맞는 것 같다. 전날의 나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속을 푸는데, 해장국 너는 세상 밖 사람들처럼 멀쩡하고 피부도 뒤집어지지 않은 모습이라면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다. 그러니 해장음식들은 좀 못생겨야 인간미가 있는 느낌이랄까.

전날의 기억을 하나 둘 꺼내며, 혼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다가도 ‘아, 그래서 뭐 어쩌겠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다음에 조심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원래 저지르고 보는 거지. 아 물론, 남들한테 피해가 갈 만한 일들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해장이 되었구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똠얌꿍’을 발음할 때처럼 뻐근했던 온몸의 근육이 어느 순간 괜찮아져있고, 침침했던 눈도 좀 밝아진 것 같고... 파도가 머물다 간 바다 같이 고요한 장기들... 그럴 때다. 아니 언제 그렇게 되었지? 하고 깨달을 때다. 

'To The Safe Haven', 블라디미르 쿠쉬
'To The Safe Haven', 블라디미르 쿠쉬

진짜 주당들의 문제는 이런 깨달음을, 해장술 중간에 느낀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또 술이 들어가지, 난 미친 게 분명해- 라면서도 어느 순간 전날과 같은 속도로 잔을 비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위스키를 몇 잔 마신 것처럼 뻐근했던 몸들이 어느 순간 괜찮아져있고, 침침했던 눈도 좀 밝아진 것 같고... 파도가 머물다 간 바다 같이 얌전한 장기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는 게 가장 빠르듯이 음주와 해장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꺼번에 올 후폭풍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겠지만.

사실 몇 주 전 ‘술 칼럼’을 써보겠다고 했을 때 나는 ‘술이 싫어서’라고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걸 잊고 다른 주제의 칼럼을 써버렸던 거다. 또 그 때의 나와 지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술과 나, 우리 둘의 사이에 해장이 다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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