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관재인,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며 저승사자...”

“빚 때문에 사회적 투명인간이나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공감신문] 빚 때문에 또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 지난 8월 25일 충북 옥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일가족 5명 가운데 아버지는 중태고 어린 딸을 비롯한 4모녀가 사망한 사건이다. 비단 이 경우뿐만 아닐 것이다.

<사진출처 = 청와대>

우리사회엔 살았으되 제대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사람, 존재는 하되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야 하거나 그렇다고 사지 멀쩡한데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결국 이것도 빚(돈) 때문이다. 서글프다. '빚 때문에 계속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국가에서 빚을 진 수많은 생계형 채무자에게 수십조의 자금을 투입하여 벼랑에 선 사람들을 구출하고는 있다.

하지만 사업이나 장사를 하다 어쩔 수 없이 빚을 진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이 미치지는 못한다. 실제로 도움이 필요 한 것은 거긴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개인이든 자영업이든 열심히 일하다 망한 사람이 참 많다. 그들 속에는 매장시켜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재기를 하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고 있거나 가족과 등지고 살아가는 뼈아픈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더불어 여기(파산시장)는 정말 인재들이 많다. 물론 도덕적 해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요인이나 부분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고의적인 부도나 부도덕한 일을 하다 망한 사람들도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이런 사람을 철저히 구분해 내야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재기 시켜야 한다. 비록 2번 3번이라도 말이다. 물론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가려지고 걸러지고는 있지만 과도한 관재인의 권력으로 문턱을 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번 옥천 4모녀 사망사건도 극단적인 선택에 앞서 국가 등 여러 군데서 도움을 요청 해 볼만 한데 안타깝다. 가깝게는 신용회복위원회 등을 이용하거나 파산법원을 이용하는 등 적극으로 노력해 봤다면 아마 이런 극단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오죽했으면 이런 선택을 했겠냐만은...).

하기야 국가에서 빚 탕감 등 대대적인 홍보는 하고 있기는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실제로 혜택을 받는 사람은 미미하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파산법원을 이용하자니 그곳에는 파산관재인이나 개인회생위원 같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채무자들은 이들의 조사를 받으려면 적지 않는 인내와 인격적 모독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없는 놈이 죄이지요. 어쩌겠습니까?”라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볼 수도 있다.

● “그만 뜯겨”, “그만 뜯어”

지난 8월 25일 토요일 아주 특별한 곳에서 취재요청을 받았다. 이날 저녁 글쓴이가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큼직한 지하 식당 겸 강당이다. 이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김관기 가계부채연구소' 창립 15주년 축하 행사장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삶이 힘들고 빚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빚으로 인해 사람이면서 사람구실을 못하였거나, 또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며 채권추심 원으로부터 삶 자체를 위협받아온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등 등불 같은 단체며 모임이다.

그리고 또 이날 복수의 언론사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고 특히 올 11월에 방영예정인 EBS 채권. 채무관련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취재가 열기를 더했다.

창립 기념행사가 시작되고 기념사에 이어 건배사가 이어졌다. 독특하다. 선창이 “그만 뜯겨”, “그만 뜯어”를 외치자 실내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글쓴이는 독특한 건배사에 대해서 물어봤다.

<2018.8.25. ‘김관기 가계부채연구소’ 창립 행사에 취재 중인 EBS 다큐 취재팀>

채권자(채권추심사 등)들은 그동안 채무자들로부터 생계나 장사를 하면서 어쩔 수없이 빌러 쓴 채무에 대해 수십 %에 달하는 이자를 뜯어갔다. 사실 몇 번 돌려막기 하다보면 이 같은 고액이자를 견뎌내는 채무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 주저앉고 만다는 말이다.

그래서 채무자의 입장에서 이제 그만 뜯기라는 말이며 채권자의 입장에서 그만 뜯어가라는 의미란다. 참 기발한 아디어고 코너에 몰린 채무자로서는 마음의 위안이 되는 말이 기도하다.

빚에 내몰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다 실패한 한 자영업자는 처음 이곳을 알고 이 구호를 몇 번 외치다 보니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는 등의 말을 하는 걸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참석한 많은 법조인과 법조 관계자들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이 올라와 늦은 밤까지 토론하고 발표하는 등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시민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든 삶의 무게로 절망의 순간이 오거나 힘든 경우가 생기면 죽음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쉽게 삶의 포기하기 보다는 ‘김관기 가계부채연구소’ 같은 곳을 찾아 이야기 하다보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며 귀띔을 해줬다.

● 채무자는 죽어서도 소명해야 하는가?

지난 27일 한통의 제보를 받았다. 안타까운 사연이다. 안타깝다고 말하기 앞서 '기가 찰 일이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제보자는 이 사건을 좀 알려 달라는 부탁이다.

제보에 따르면 이렇다.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노모의 병원비, 생활비 등으로 인해 채무가 증대되었다. 생계형 채무자로 어쩔 수없이 파산법원에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했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말기 암 환자로 항암치료 중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났다.

앞서 이 사건은 2018.5월에 파산법원에 접수하고 동년 7월에 파산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씨는 면책을 받지를 못했다. 하지만 올 10.24 의견청취기일을 앞두고 사망한 사건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 사건을 맡은 파산관재인은 사망한 A씨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이미 고인이 된 채무자 A씨의 추가 소명자료를 요구 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도 ①대출금 입금된 통장 5년간의 내역 ②대출금 사용처 소명. ③카드 사용 3년간의 내역과 소명자료 제출 등이다.

<채무자들이 파산관재인 규탄대회 시 사용한 피켓>

각설하고 파산법원이 채무자의 파산을 선고하면 이미 채무에 대한 소명은 끝났다고 본다. 특별한 유흥이나 도박 그리고 사해행위(詐害行爲)등이 추가로 드러나지 않는 한 말이다. 하물며 빚을 진 내역이 분명하고 소명이 얼추 되어 파산법원이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소불위의 권력과 파산 신청자들의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파산관재인의 과도한 행위가 망자를 잃고 가슴 아파하는 가족들까지 또 한 번 죽이는 사건이다.

파산관재인의 권한 남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지금도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건 서울 서초동의 법조인들이나 당사자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파산신청자들의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소명을 갖고 있는 그들로서도 애로점은 있을 수 있지만 과도한 권한 남용은 가진 것 없는 채무자로서는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A씨의 법률대리인이 파산관재인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인의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건 ‘갑’질의 넘어 인간으로서 할 일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될 비인간적인 처사다.) 그래도 좀 다행인 것은 담당 재판부는 고인의 사정을 듣고 파산관재인의 무리한 소명권고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다행이긴 하단다.

같은 일을 하는 한 법조인은 “고인의 대출금 사용처나 기타 내역을 가족이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냐?”며 무리한 소명권고에 대해 “반드시 되돌려 받을 것이다” 며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 시민은 “미친 짓이다. 이런 X끼는 관재인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들을 괴롭히고 군림하기 위함이니 이 자(者)를 임명한 법원은 즉시 파면조치 해야 한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소식을 접한 고인이 된 A씨의 법률대리인이나 많은 법조인들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은 “채무자는 죽어서도 소명을 해야 하는가?”라며 씁쓸해 하면서도 오늘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온갖 자료들(심지어 10년 전의 자료는 예사고 20년 전의 각종 자료들) 등을 요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파산관재인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 절대로 포기 하지마라!(Never Give Up!)

어쨌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열심히 살아가라는 운명 말이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양과 음, 잘남과 못남, 부자와 가난, 높고 낮음 등 언제나 반대편은 존재 한다. 그렇다고 내가 반대편 음지에 있다고 모두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돈을 많이 가졌든 적게 가졌든 나름대로 고민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이 많으면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가는 인생길을 굽이굽이 꺾을 때마다 꽃길만을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갖은 고난과 모진풍파와 가시밭길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처럼 비록 삶이 죽고싶도록 지치고 어렵더라도 기회는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비록 느린 걸음일지라도 천천히 그리고 쉬었다 가더라도 포기를 하지 마라는 말이다. 하지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기회는 잃어버린다.

따라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죽고 싶도록 세상이 밉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는 하지마세요!(Never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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