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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박지나 칼럼] 자유와 불법 사이, 우리의 빼앗긴 ‘야동’에도 봄은 오는가
국내 성인용품 기업 바나나몰 전속 모델로 활동한 일본 AV 배우 츠보미.

[공감신문] 인터넷이 느렸다. 그때 그 시절은 확실히 그랬다. 전화 코드에 인터넷 모뎀을 연결하던 시절이었다. 수위 높은 로맨스 소설이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지만, 용량이 꽤 되던 야동(야한 동영상)의 경우엔 달랐다. 하나 보려고 며칠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수십 개의 압축 파일 다운이 완료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압축을 풀어본다. 압축 파일 중 하나가 빠져있다. 이런, 전화비만 날렸다. 청구서가 날아오는 월 말만 되면 죽을 맛이다. 나도 모르게 종아리를 만지작거린다.

우래도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바다 건너 태어난 야동 하나를 보기 위해 매 맞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응답하라 세기말, 응답하라 밀레니엄. 야동 하나에 열정을 건 시대였다.

그 전엔 더했다. 우리네 선배들은 비디오 구매를 위해 뛰어 다녔다. 남자 기자 선배 A는 학창 시절, 모 다리 밑에서 비싼 돈 주고 불법 비디오를 구매했단다. 집에 가서 틀어보니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녹화본이 뜨더란다.

그날, 텔레비전 화면에 손범수 아나운서의 얼굴과 사자의 포효 소리가 흐를 때,

선배 A의 눈에선 슬픔의 눈물이 흘렀다.

우리는 누구나 야동을 본다

2009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연구팀이 ‘야동을 보지 않은 자’와 ‘야동을 본 자’를 비교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는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그들은 끝끝내 ‘야동을 보지 않은 자’에 속하는 표본을 구하지 못했다.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의 생활이 된 인터넷을 한 번 보자. AV와 포르노를 취급하는 성인 사이트는 약 2400만개가 넘는다. 전체 사이트의 약 15퍼센트가 성인 사이트다. 콘텐츠로 따지면 30퍼센트에서 40퍼센트가 성인 관련 자료다. 1초마다 약 3만 명이 AV를 보고 있으며, 남성 못지 않게 여성 비율도 높은 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 최소한 야동을 볼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국가에서, 야동을 보지 않은 성인이 실재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절차를 걸쳐 발매된 야동 감상과 자신의 성욕 해소는 개인의 권리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선진국은 대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인 가치 존중의 혁명 물결이 일렁일 때, 포르노와 성문화 역시 발전했다. 안타깝다.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자유란 멀고도 먼 얘기였다.

군사 독재 시절이 길어지면서 개인의 자유는 뒷전이 됐다. 더욱이 특유의 유교적 관습과 보수성이 사회 전반에 남아 있었다. 여성은 순결해야 했고, 성문화는 저속하고 나쁜 것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사회가 변화했다. 민주화를 이뤘다. 인터넷이 발달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됐다. 문화의 흐름이 선진국을 따라 개방됐다. 성문화도 진보했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성에 대한 권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허나 야동만큼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그건 옳지 못해. 그건 나쁜 거야. 저속한 거라고!”

“훗, 자기네들도 봤으면서”

우리네 시민 운동가가 동경을 마다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 그 중에서도 덴마크의 예를 들어보자. 덴마크는 세계 최초로 야동을 합법화했다. 1969년의 일이다. 전세계가 덴마크를 주목했다. 다수의 정치인, 성직자, 시민단체는 나라가 뒤집히고 사람은 문란해질 것이며, 성범죄가 판을 칠 것이라 비난했다.

그들에게는 정말 안타깝게도, 덴마크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합법화 이후 성범죄가 줄어 들었다. 덴마크를 따라 야동을 합법화한 스웨덴,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UCLA 정신생리학 교수인 니콜 프라우스는 말한다. “이제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덴마크는 1969년 '야동'을 합법화했지만, 일각에서 우려했던 대로 성범죄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wikimedia commons]

세상의 중심에서 야동을 외치다

핸드폰 소액결제로 만원을 충전해 야동을 다운 받았다. 분명히 ‘가정 교사’라고 되어 있었건만, 지금 눈 앞에 있는 건 근육질의 빌리 헤링턴씨다. 당했다. 타격이 크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따질 수 없다. 다운 받은 사람이 바보고 천치요, 불경스런 수음을 행하려 한 죄인이다.

2015년에 나온 통계를 보면, 한국은 매달 1000만개 이상의 AV 작품을 소화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최고 규모다. AV의 천국이라는 일본과 16억 인구의 중국보다 위에 있다. 물론, 죄다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

안타깝게도 이 모든 건 은밀히, 불법적인 루트로만 소비된다. 다운로드 받아 신나게 야동을 보던 와중에,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도 제법 있다. 심지어 우리는 2010년대 초반까지 성인용품도 불법 취급을 받았다.

아이러니하다. 위 같은 통계가 나왔던 해, 우리 법원은 간통죄를 폐지했다. 법원은 ‘간통은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범죄’라는 주장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 비밀의 자유 침해’가 우선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반면 야동은 여전히 불법이다. 성인용품도 전신 리얼돌 등 일부 품목은 아직도 반입 불가다. 만국을 가도 이런 곳은 흔치 않다. 간통의 개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주는 이곳이, 혼자 방구석에 누워 야동 보며 즐길 자기 결정권은 외면하고 있다.

해외에선 성인물에 합법적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뒤로 뺀다. 문화를 뒤로 숨기니 피해자가 나온다. 원 저작권자인 해외 성인 기업들은 엄청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성인 비디오라는 합법적 분출구가 없으니, 아마추어 촬영 영상과 다수의 여성 피해자를 낳는 리벤지 포르노가 돌고 돈다. 사회 문제다.

우리도 한 번쯤은 다들 피해자가 됐다. 해외에선 성인물을 합법적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다. 속임수가 있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허나, 우린 다르다. 존재 자체가 불법이니, 저작권 문제도 사기 문제도 없다.

한 번쯤 생각해볼 때가 됐다. 관습적으로 용인되고 인정되는 문제의 다음 단계는 법적 제도화다. 낙태, 동성애 등도 논의 분위기가 한창이다. 이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자 애인이며, 취미 생활인 야동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가 됐다.

기쁨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선배 A에게는 있으니까.

우리에게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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