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인식, 엄격하게 바로 잡아야 

[공감신문 시사공감]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어떤 모임이든 간에 꼭 빠지지 않는 하나가 있다. 바로 술이다. 자리에 따라 주종이 갈리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술이 빠지는 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직장 동료들 간에 전우애(?)를 다지는 회식 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오랜만에 모이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가족들끼리 식사자리에서도 술병 하나씩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나 둘씩 늘어가는 술잔 속에 어떤 이들은 그간 못 다했던 진심을 전하기도 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어깨 위로 쌓아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삼겹살과 소주, 피자와 생맥주, 파전과 막걸리 등 맛궁합이 잘 맞는 음식에 술을 곁들이면 식사가 더 즐거워지기도 하고. 

지금 시사공감을 읽고 계시는 독자여러분 중에서도 술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애주가이거나, 자타가 공인하는 주당인 분들이 있을 것이다. 굳이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테고, 반대로 술이라면 한 방울도 싫다 하시는 분들도 있을 줄로 짐작된다. 

오늘 시사공감은 '술'에 관한 이야기다. [Created by Katemangostar - Freepik]

하지만 이런 호불호를 떠나, 술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음주는 흡연과 함께 발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개개인의 인식이나 정책적 방향을 보면 음주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한 편이니 말이다. 

오늘 공감신문 시사공감에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술에 대한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 지 짚어보도록 하자. 

 

■ 부어라, 마셔라 

모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이는 건지 모를 때도 있다. [Created by Freepik]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 성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술은 웬만해선 빠지는 법이 없다. 일반 식당이나 주점에서는 물론이고, 캠핑이나 야외 소풍에서도 캔맥주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섭하지 않은 법이다. 

그뿐인가. 산 정상에 올라 막걸리 한 잔은 기울여주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농사꾼들의 새참에는 탁주가 빠지지 않는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의 ‘치맥’(치킨+맥주)은 관람객이 누릴 수 있는 묘미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꼭 둘 이상일 필요도 없다. 1인 가구 증가로 함께 떠오른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혼술’이다. 

힘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홀로 캔맥주를 들이키는 것이 하루의 유일한 낙인 분들이 적지 않다. 울고 싶을 때, 깊은 고민이 생겼을 때 홀로 기울이는 소주 한 잔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술을 많이 마시는 나라에 속한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15세 이상 성인의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2000년 8.9ℓ에서 2015년 9.1ℓ로 0.2ℓ 늘었다. 이에 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같은 기간 9.4ℓ에서 9.0ℓ로 0.4ℓ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알코올 섭취량은 적지 않은 수준이다. [wikimedia commons]

평균 소비량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가 술을 엄청 많이 마시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음주문화와 술 종류가 다르므로 술을 적게 마신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외국에서는 대개 와인이나 맥주 등 알코올 함량이 낮은 술을 소량씩, 식사 중에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 그것도 다른 술과 섞어 마시는데다 폭음하는 음주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19세 이상 성인 남녀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음주하는 비율 역시 최근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에는 이 비율이 남녀 각각 75.2%와 46.5%로 집계됐다. 

고위험 음주 비율은 남성 20.8%, 여성 5.8%다. 여기서 고위험 음주는 남성은 1회 음주 시 7잔 이상, 여성은 5잔 이상 마시는 것을 주 2회 이상 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월간 폭음률도 남성은 54.1%, 여성은 23.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 “한 잔 정도는 괜찮아”

'한 잔' 정도는 정말 괜찮은 걸까? [wikipedia]

직장인 A씨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식 때마다 마치 전쟁을 치루는 기분이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달아오르고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빨라지지만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때문이다. 한사코 손 사레를 치는 A씨에게 부장님은 늘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한 잔은 괜찮아. 약이라고 생각하고 마셔!”

아마 독자여러분 가운데서도 적당히 마시는 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으니 말이다. 옛 어르신들도 한 잔의 술은 약으로 여겨 ‘약주’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근 국내외에서 이뤄진 다수의 연구에서는 ‘소량의 술도 위험하다’는 결과가 속속 도출되고 있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금연보다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Created by Lyashenko - Freepik]

미국 웨슬리대 연구결과 하루 소주 3잔에 해당하는 알코올을 30년 이상 꾸준히 마시면 뇌세포 파괴 속도가 빨라져 뇌의 용량이 평균 1.3% 줄고, 하루 1잔씩만 마셔도 0.5%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코올로 인한 뇌 위축은 기억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격, 감정,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대뇌피질까지 손상시켜 폭력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노인성 치매환자가 기억력 및 언어 장애만 겪는 것과 달리, 알코올성 치매환자는 감정 및 충동조절 능력까지 떨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보건당국 역시 ‘국민 암 예방 수칙’ 항목 가운데 술에 관한 내용을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만 마시기”에서 “소량의 음주도 피하기”로 변경했다. 다시 말해 암 발병을 막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알코올을 1군 발암요인, 즉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명백한 요인으로 규정했다. 음주로 인해 발생 위험도가 높아지는 암으로는 구강암, 인후암, 후두암, 식도암, 간암, 유방암, 직장·대장암이 꼽혔다. 

막걸리나 포도주를 마신다고 해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wikipedia]

막걸리에 함유돼 있는 베타시토스테롤과 포도주의 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항암 또는 항산화 작용을 해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는 각각의 술에 포함된 특정 성분이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음주를 통해 실제 암 치료나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게다가 이런 성분은 술에 극히 소량만 포함돼 있다. 다시 말해 막걸리나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암 예방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약간의 술이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 이상의 음주를 하면 오히려 해당 질환 발생 위험도가 높아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량의 음주로도 암 발생 위험이 늘어나며 섭취하는 술의 양이 많아질수록 발암 위험은 더 증가한다는 점이다. 한 잔의 술은 절대 약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 술에 관대한 나라 

지난달 경북 구미차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주취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

음주로 인한 위험은 개인의 질환 발병에서 끝나지 않는다. 폭력이나 음주운전, 사고 등 음주자 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심각한 해를 입힐 수 있는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제 지난 2011년 경찰청이 발표한 강력범죄 통계에 따르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 범죄는 약 30%로 집계됐다. 강력범죄 10건 중 3건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살인이 40%, 성폭행 34%, 절도 6.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에는 전북 익산에서 주취자를 돕던 익산소방서 소속 119 여성 구급대원이 주취자에게 폭행을 당해 뇌출혈로 숨을 거두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찰관이나 소방관, 응급실 의료진 등을 폭행하는 일은 빈번히 일어나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 방해사범 1만2883 가운데 70.2%에 해당하는 9048명이 술에 취한 상태로 경찰 등에 폭행을 가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3년간 주취자로부터 폭행피해를 입은 소방관도 564명에 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술 때문에 일어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술로 인해 완화되곤 한다. 폭행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술에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비교적 낮은 형을 선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는 점, 명심해두도록 하자. [created by freepik]

음주운전 문제도 만만치 않게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10건 가운데 1건은 음주운전 사고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연 평균 4621명에 달하며, 부상자는 35만400명에 이른다.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인명 및 재산손실 비용은 이미 지난 2012년 1조원을 넘어섰으며,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보험금 지급규모도 2015년 기준 3568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음주운전자 수는 크게 개선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인원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30만2707명에서 24만3100명으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다. 

게다가 3회 이상 적발된 상습 음주운전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같은 기간 44만307명(14.6%)에서 44만986명(18.5%)으로 그 숫자와 비중이 모두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 좀 더 엄격한 음주문화가 만들어져야

공공장소에서의 음주에 대한 규제도 전무하다.

오늘 시사공감을 준비하고 작성하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은 담배에 비해 술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관대하다는 것이었다. 질병의 위험과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피해의 규모는 담배에 뒤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개개인의 인식은 물론이고, 정부도 술과 관련한 정책에는 다소 소홀한 모습이다. 실제 올해 금연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468억 원에 달하지만, 이에 비해 음주 폐해 예방 관련 예산은 14억 원에 그쳤다. 

음주 관련 업무 담당자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 단 1명에 불과하다. 참고로 정신건강정책과는 정신질환, 자살, 마약 등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반면 금연은 정신증진과 1개과가 전담 마킹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흡연 장면이 TV에서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 전 이야기건만, 술은 여전히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적정선을 넘어선 음주에 대해서도 사회적 인식은 관대하기만 하다.

떠올려보자. 인기 연예인을 앞세운 주류 광고는 너무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안주도 없이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자주 등장해 이젠 오히려 식상할 지경이다. 

남녀가 술을 진탕 마신 채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우리 어제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말하는 장면도 생각보다 자주 접하게 된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범죄 피해 우려부터 나올 일인데도 말이다.

함께 술을 마시던 누군가가 만취 상태에서 실수나 문제를 일으키면 “취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사회 전반적으로 음주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다. 

안전한 음주문화를 만들기 위해 엄격한 잣대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wikimedia commons]

물론 적당한 수준에서의 음주가 꼭 필요한 경우도 없지 않다. 오히려 많다고 봐야 될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기호식품이니만큼 법적으로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음주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음주에 대해서도 좀 더 엄격한 잣대가 세워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이 변화할 때,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건전한 음주문화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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