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앞둔 ‘감정노동자’ 보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현실 반영 미흡해

17일 열린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현장 증언을 위해 참석한 백화점·면세점 노동자가 참석했다. / 서지민 기자

[공감신문] 서지민 기자=지난 3월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돼 오는 10월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근무현실 반영 등이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공동주최한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있어 현실 반영률을 높이고, 정부에게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당장 내일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서비스업 종사자의 신체·정신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발의됐다.

개정안을 보면 ‘고객응대업무에서 고객 등의 폭언, 폭력, 무리한 요구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에 있어서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근로시간 단축, 휴식시간의 연장’, ‘근로자에 대한 치료 및 상담 지원’, ‘해당 조치의 요구에 따른 불리한 처우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경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은 17일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 사회자로 자리에 참석해, 발표 중간 의견을 덧붙였다. / 서지민 기자

하지만 실제현장 노동자들에게 해당 내용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현장노동자로 증언을 위해 참석한 김명신 LVMH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백화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며 “최근 노동자 측에서 폭언이나 폭행을 겪으면 고객응대를 거부하고 112에 신고를 하는 내용의 매뉴얼을 만들어서 통보한 적이 있다. 하지만 기업 측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실제로 실천하기에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화점 관계자들이 왜 응대를 중단했냐고 묻고 추궁을 하면, 할 말이 없다”며 “백화점 입장에서는 고객에 항의하거나 고소한 직원을 로테이션을 돌리면 그만이다”고 덧붙였다.

정경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은 법안이 실제 현장에서 통용될 수 있게끔 기업 내규 변경이나 노동자 인식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정책국장은 “해당 법안에 따르면, 노동자가 권리를 요구하면 기업은 이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의 내규에 있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실제로 정부가 법안을 만들면 회사가 규정으로 활용하고, 노동자들에게도 교육해서 인식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법으로 규제를 한다고 해도 실제 현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실질적인 권리 증진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정 정책국장은 현실을 외면하는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부가 서비스업 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 노동부가 실태조사를 한다면서, 전수조사가 아닌 몇 군데만 진행 중이다. 설문조사를 돌리는 방식인데, 체크리스트의 내용이 ‘휴게실이 있는가’에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수준”이라면서 현장을 변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하는 태도를 취하면 국민들의 정서 뿐 아니라,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종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17일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보완을 촉구했다. / 서지민 기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명시하고 있는 ‘사업주’가 원청업체라는 점 역시 현실 반영이 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 노동자들은 대부분 매장 내 입점해있는 브랜드나 협력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 장소와 소속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현지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법 조항에 따른 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백화점 및 면세점의 본사 혹은 소속 브랜드 본사에 요구해야 하는 셈이다. 그 외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다르지 않다.

이성종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백화점에 실제 백화점 직원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개정안에 명시된 ‘기업’은 원청을 뜻한다. 원청 사업자가 소유하고 있는 유통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체 노동자의 보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고 말했다.

법안에 노동자 대응 의무조항이나 책임 소지를 명확히 구분해 놔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법의 구체성에 따른 기업의 법 준수가 기반이 될 때에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원청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업체나 간접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면 좋겠지만,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강제성을 부과하는 법안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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